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 개정판
남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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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열하는 젊음의 열사를 건너 신라와 질마재라는 영원으로 통하는 가상의 시공간에 이른 뒤에도 그의 시가 일깨우는 삶에 대한 열렬한 애모는 변함이 없다. 그의 시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꽃과 여인은 바로 시인이 추구하는 궁극의 대상, 삶을 삶답게 해주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가치 있는 증거물이다. 삶, 그 자체를 위한 삶 - 여기에 서정주 시의 토대와 성과와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삶은 그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그 무엇을 위해 희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 오직 삶을 진작시키고 그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삶의 모든 순간을 바쳐야 한다는 것, 이것이 서정주 시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아무리 그가 신라를 이상화하고 풍류와 영원을 읊조리더라도 - 시인이 실제 현실에서 노정한 정치적 오류와 일상에서의 주책스러운 면모까지 포함해서 - 그는 어디까지나 소박한 현실주의자요 쾌락주의자의 틀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서정주의 시에서 고도의 형이상학이나 윤리적 강건함을 찾으려드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의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미학적 구조물이라는 점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이토록 완벽에 가깝게 달성될 수 있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시라는 주술을 통해 우리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삶의 열락에 젖게 만드는 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p19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들은 엄청난 양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에 둘러싸인 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책이, 세상이란 미로에 갇힌 사람들을 출구로 이는 표지판 구실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미로의 내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미로 역할을 하기에 이른 듯하다. 한 권의 책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무수한 책들이 저마다 현란한 주장과 수사로 무장/치장한 채 스스로를 과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듣는 사람의 가슴에 내밀한 속삭임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귓전을 스쳐지나가는 소음으로 여겨지고 있다. 책은 많아도 진정 읽는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고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결정적인 단 한 권의 책은 발견하기 힘든 시대, 풍요 속의 궁핍을 강요하는 이런 시대에 우리는,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책을 앞에 두고 그랬듯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굶주림을 주시옵고"라고 기쁜 마음으로 기도드릴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p28~29

 장정일의 경우 그는 열심히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실존의 근거로 삼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서의 잡식성이 곧 독서의 풍요로움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거의 숨 돌릴 틈도 없이 읽고 씌어진 때문인지 그의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앎에의 의지'라기 보다는 '문자에 대한 허기'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 강박적으로 여겨지는 그이 독서중독증이 과연 어떤 콤플렉스의 발현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한편, 그토록 부지런히 읽어댄 그가 과연 정확히 읽긴 한 것인지, 그 책의 내용을 충분히 저작했으며 핵심을 짚어 낸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p123

 이처럼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공명 작용을 일으키는 정서적 감응력 밑에 김훈 특유의 탐미적 허무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의 글을 채색하고 있는 온갖 수사와 지식의 허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삶의 정처없음과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그의 글을 읽을 때 받게 되는 하염없는 쓸쓸함은 바로 이 탐미적 허무주의에서 연유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나는 이 자리에서 그가 들려준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비(靜飛)라는 낯선 단어에 관한 것이다. 고요한 비상, 정지한 듯 날아가는 비행, 이 말은 무슨 뜻을 ㅎ마축하고 있는가. 저 먼 북쪽 나라에 사는 새들은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한 철을 깃들일 따뜻한 곳을 찾아 아래로 아래로 남하한다. 그중 한 무리는 시베리아에서 동쪽 해안을 타고 우리나라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내려가고 다른 한 무리는 중앙아시아를 거치고 희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 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 철새 무리가 높은 산이나 광막한 바다를 만날 때 취하는 비행법이 바로 '정비'이다. 새눈 보통 죽지에 연결된 가슴 뼈의 움직임으로 비상하지만 아주 먼 거리를 여행할 때에는 가만히 날개를 펴고 기류에 몸을 맡긴 채 예정된 공간을 통과한다. 사실 조그만 새가 근육이나 뼈의 힘으로 그 높은 산맥을 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대한 장벽과 맞닥뜨린 새는 경망스런 날개짓 대신 광대무변한 우주의 섭리에 몸을 의탁함으로써 목적을 성취한다.

 이 에피소드는 탐욕스러운 독서가인 그가 분명 어느 책에선가 보고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들려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엔 인간 김훈이 동경하는 삶의 방식, 나아가 글쓰기의 형식이 암시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글엔 거대한 기류에 온 몸을 맡기고 '지금 이곳'이라는 허허로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한 존재의 긴장과 열정 그리고 지혜가 숨어 있다. 조금만 자세를 흐트려도 수천 미터 아래의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를 위험을 안고 그는 날고 있다. 그의 글 표면을 관류하는 유유자적함 이면엔 실은 세상에 대한 원초적 허무와 절망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p169~170

 뒤라스의 거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작품의 주제 또한 '사랑의 불가능성'이다. 뒤라스는 일체의 분장이나 가식 없이 작품 속에 직접 출연하여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녀는 앙드레아를 향해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요. 그게 다예요."라고 말하다가도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중의 제로"라고 회한에 잠겨 되뇐다. 뒤라스의 언어에는 이처럼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대상을 휩싸고 돌며, 부재를 현존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삶에 대한 정열로 뒤바꾸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p237

 소설의 주요 갈등은 "인간을 가축으로 개조하는 일을 질리지도 않고 열심히 수행"하는 학교 당국 및 기성세대와 여기에 반항하는 주인공과 그 동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p243

 어쨌든 작가는 말한다.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인 권력의 앞잡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복수는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라고.    -p244 : 무라카미 류 <69>

"어렸을 때 나는 사치라고 하면 모피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자택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생각되었다. 지금은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 대해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게 사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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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랑은, 그것이 진정한 것인 한 '사치'이다. 그것은 감히 인간이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 저편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오직 사랑에 빠져 있는 두 당사자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아니, 사랑이 사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늙은 것인지 모른다.
-268~269 :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남진우의 <숲으로된 성벽>을 사면서 같이 산 책이다. 제목이 심상치 않다. 부제로는 <남진우의 문학수첩>이라는 말이 달려 있다. 80~90년대까지 그가 부지런히 읽은 책들에 대한 서평 모음이라고 보면 되겠다. 대부분의 작품이 모르는 것들이지만 서평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은 책의 내용과, 서평 안에 '과연 그렇구나;라고 감탄할 수 있는 표현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름 관심을 갖게 하는 작품들도 생겨나 메모지 구석에 '김화영'이나 '장 그르니에','미셀 투르니에' 등의 작가 이름을 적기도 하였다.
 한 권을 다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 책, 저 책 여러 권에 동시에 손 대서 읽다 보니 그랬다. 요즘 사실 책이 잘 안 읽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다시 읽었고, 녹색평론에 실린 글과 함께 정리해보려다 미뤄둔 상태이다. 그리고 이책 저책 사기는 많이 사두고 질 읽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눈이 나빠져 안경을 새로이 맞춰야 하는 것도 있고 이래저래 시간이 잘 나지도 않았다. 한 편으로는 쌓여가는 신문과 주간지, 월간지 등과 더불어 넘쳐나는 활자들 속에 질려 읽기가 지리해진 탓도 있으리라.

  위에 글들은 읽으면서 내 입장에서 '그렇구나!' 라고 감탄한 것들이다. 글들을 대할 때 나는 그 글들에서 내 이야기를 찾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숨은 모습을 글을 통해 찾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행위가 단순히 '문자에 대한 허기'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찾는' 일이 되었음 한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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