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분명하고도 정당하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 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나의 현존이 몸으로부터 떠나 갈 때, 나는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하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목수들의 일터에서 놀다 중

 
   

생각해보면 일을 하지 않는 지금의 나는 나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며, 내가 판단하는 대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일에 얽메여 있지 않기 때문에 일과 관련 된 것에 정신을 쏟아 부어 나 자신으로 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없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과 나의 앞날과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를 생각하며 온전히 나로 존재한다. 지금 이 시간만큼 온전하게 나를 위해, 나만을 생각하며 지낼 시간이 있었는가. 할 일이 없는 지금의 시간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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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 있는 한, 고통이 여전히 지속되는 한, 그건 과거가 아니라 그들에게 엄연한 현재야.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컴퓨터 자판의 삭제키를 눌러 버리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지워버리라고?

 천만에. 너희들은 정작 그 사람들을 삭제하고 싶은 거겠지.

어쨌거나 너와 동시대인임에 분명한 그들의 삶, 아니 존재 자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거겠지. 왜냐면 지겨운 그들의 삶은 실상 바로 너희 어미와 아비, 할아비와 할미가 살아온 시간들이고, 그러므로 너하고도 결코 무관할 수 없을 테니까. 그 고약한 인분 덩이를 눈앞에 빤히 놓아두고서야 아무 일도 없다는 양 훌쩍 뛰어넘어, 저 현란한 너희들의 미래 속으로 홀가분하게 내달려가기란 아무래도 거북스럽고 기분 찜찜할 테니까. 안그래?
 
   

100년 전을 생각해본다. 딱 백년 전이다. 1905년 그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가 배운 국사 시간을 더듬거려 생각해보면 막 개화가 시작되었던 시기이고, 일제의 침략을 받은 시기라는 것이다. 자 그럼 그 때부터 우리 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짝 더듬어 보자.

1913년에는 3.1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 나갔고, 1932년에는 역시 대한의 독립을 위해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의 의거가 있었고, 1945년에는 그렇게 원하던 해방이 이루어 졌다. 그러나  1948년에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죄없이 죽어간 제주 4.3사건이 일어났고, 1950년에는 6.25 즉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며, 1953년에 휴전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다 1960년 4.19로 인해 하야를 선언하였으며, 그 이후 1961년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독재정치 아래에서 경제개발을 추진하다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죽었으며 그 뒤를 이어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1980년 광주에서 5.18이 일어났다.

살짝쿵만 들여다 봐도 우리나라의 100년사는 정말 다사다난 했다. 한 사람이 1905년에 태어나 지금껏 살았다면 이 모든 역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많은 아픔을 겪어 왔는지...

옛날 이야기 꺼내면 사람들은 또 그 이야기냐고 한다. 맞다. 이제 잊을때도 되었는데, 아니 너는 겪어보지도 못한 일들이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1980년 5.18에 나는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자라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땅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땅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아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지금의 자유로운 세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준 것은 아니니까. 짧은 역사 속에서 자유를 가져다 준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절하지 못할 망정, 그들을 잊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유없이 죽어간 억울하고 쓸쓸한 영혼들에게 연민의 정이라도 느껴줘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지.

백년의 역사는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몸으로 마음으로 모두 잊혀지지 않는 역사이다. 이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과 죽은 인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바로 백년여관이다. 제주 4.3항쟁에서 살아남은 복수와 5.18에서 살아남은 진우, 6.25 전쟁 이후 고아가 되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요안, 베트남 전쟁에서 팔을 하나 잃고, 고엽제에 시달리는 문태, 그리고 일본식 목제 건물인 백년여관의 전 주인 하야시의 열다섯살 난 어린 조선인 첩.  인물들을 두고만 봐도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살아남은 인물들만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서 영혼이 된 자들이 바다를 떠돌며 손형태의 푸른 빛으로 발하는 모습. 그것들이 천년만에 온다는 개기일식날 백년여관에 모두 모인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참 읽기가 힘들었다. 부분적인 2인칭 서술의 기법도 낯설기도 했지만 무언가 어둡고 끈적하며 습한 느낌. 더디게 더디게 읽혀지는 그 내용들. 지루한 서술 때문이 아니라 내용에 담겨진 비릿하며 끈적거리는 것들이 읽는 동안을 힘들게 했는 듯 하다.

화려한 듯 하지만 정말 피와 눈물로 얼룩진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는 100년의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푸른 멍들과 피빛 생채기들을 우리는 잊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잊으려고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고, 잊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더 기억해내고 밝혀 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0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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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일요일. 신랑이 쉬어서 간만에 아가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가랑 동생이랑 밥 같이 먹고, 책 반납할 겸 도서관에도 들렸다. 울 아가 처음 간 도서관을 낯설어 하지 않고 좋아라 했다. 글을 아직 읽지 못해서 그냥 뛰어다니기 바빴지만 나중에 나가자고 하니 가기 싫다며 울었다. 엄마처럼 도서관을 즐겨찾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도서관에서 '만화 박정희 1,2권과 오윤 전집 2권,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빌렸다. 아직 몇 권의 책들을 읽다가 그만 두었는데 한 권 진득하게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이것저것 사놓은 책도 많은데 언제쯤 다 읽으려나? 

그제 포럼에서 적은 필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보았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 중에 참 인상적이었던 것이 두 강연자 분 들이 개념어를 확실하게 알고 있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많은 사람들의 이론을 잘 알고, 그것을 발언에 적절히 인용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아.... 나는 읽고 나면 다 까먹는데 역시... 뭔가 다르다. 

- 관계, 공동체를 강조하면서도 자율적, 주체적 인간을 강조한다. 공부는 고독한 과정이라고 배우고 버릇되다 보니 팀 프로젝트가 잘 수행되지 못한다. 이것이 곧 근대교육의 모습이다. 자율적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외로운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얇고 위태로운 관계. 

- 언어라는 것은 불완전한 것임을 알면서도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말하기와 글쓰기가 고통스럽다. -> 말에 대한 불신. 말로 인한 상처의 경험을 통해 소통은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게 함. 혼자 있을 때 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가장 진실된다고 생각한다 : 일기쓰기 , 페르소나(가면) :1. 정치(공적), 2,극장: 연기 -> 솔직함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사실을 따져나가거나 연기를 하는 것.  

- 감정의 정도로 소통하는 것이 아이들이라면 교사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다. 소통의 방법이 무엇인가 : 감정, 정서의 정도로 모인 공통체 

- 동감 : 감정이입. 공감 : 사건을 보았을 때 나의 운명을 보게 되고 직감하게 되는 것(공포감 발생)  예 -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 동감한 사람은 '아 안됐다', 공감한 사람은 '고리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한가?'  -> 당대인을 만드는 것, 공감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공감하게 가르칠 것인가 => 경험을 통해 ; 내 주변 사람의 삶, 인생을 듣고, 알았기 때문에 당대의 일로 끄집어져 나와야 한다.  

- 경험과 체험의 차이 : 경험은 희박함, 체험은 넘쳐남, 잘 가꾸어진 것  

- 증언으로서의 글쓰기 ->당대인의 포지션에서 당대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학교, 교실에서 경험이 있을 수 있는 공간 ; 장소 

 언제나 부족한 걸 느낀다. 부족한 걸 채우려고 노력하면서도 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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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내린다. 올해는 유독 장마가 긴 것 같다. 

어제 늦게 부산에서 돌아와 소파에 푹 쓰러져 잤다. 아침 늦게 일어나 대충 정리하고 책 좀 읽다 또 자고, 책 읽다 또 자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지난 주 김해 도서관에서 까사마미식 수납법, 세로토닌 하라, 인간의 대지,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지식의 미술관을 빌렸고, 지식의 미술관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다 읽었다. 이 중에서 세로토닌 하라는 뇌의 현상과 관련하여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은 고만고만 했고,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책을 사서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제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했다. 7월 생일 아이들 선물과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구입했는데 오늘 도착 예정이라던 문자와 달리 도착하지 않아 조금 아쉽다.  

천성이 게을러 생활도 공부도 많이 부족하다. 좀 부지런해져서 공부를 좀 부지런히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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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08 오후 6시 30분 전교조 부산지부 

 이 시대 교육 포럼 

엄기호, 이계삼 

  

야자 감독을 바꿔가며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김해에서 부산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찾아간 전교조 부산지부 사무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간 보람을 느낄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교육공동체 벗의 직원들과 전교조 부산 지부 선생님들, 국어교사 모임의 선생님들, 부산여고 학생들과 독서회 어머니들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셨다. 

'오늘날 학교 현장의 '교육불가능'에 대한 사유'라는 제목으로 이계삼 선생님께서 강연 해주셨고, 학생들과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고백에서 증언으로의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엄기호 고수(!)께서 강연 해주셨다. 

두 분의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해주셨는데 요즘 내가 학교 교사로서 느끼는 어떤 무기력함, 부조리에 대응하는 나와 동료 교사들의 자세, 관리자의 태도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특히 빡빡하고 피곤한 일상 가운데 '틈'이 되어 줄 수 있는 교사, 사막 가운데 '오아시스'같은 존재로서 아이들과 함께 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지금 내가 느끼는 교사로서의 무기력함을 조금은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엄기호 선생님의 '성장'의 의미, 고백이 아니라 '증언'하라는 말, 감정이입으로서의 '동감'이 아니라 나의 운명을 보게 하는 '공감'으로서의 교육, '경험'을 통한 글쓰기 '영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짧은 시간이라 너무 아쉬워서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뒷풀이까지 따라가서 존경하는 이계삼 선생님 옆에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이계삼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결국 나 자신의 문제다' 라는 말이 화두가 되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합리한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거부하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나 자신의 문제이고, 나태하고 안일한 마음을 극복해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조금 전 교육 공동체 벗의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작은 힘이지만 좋은 책이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그리고 어제 포럼에 참여해 오늘의 교육 창간 준비호와 3호를 샀다. 방학 동안 꼼꼼히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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