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 있는 한, 고통이 여전히 지속되는 한, 그건 과거가 아니라 그들에게 엄연한 현재야.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컴퓨터 자판의 삭제키를 눌러 버리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지워버리라고?

 천만에. 너희들은 정작 그 사람들을 삭제하고 싶은 거겠지.

어쨌거나 너와 동시대인임에 분명한 그들의 삶, 아니 존재 자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거겠지. 왜냐면 지겨운 그들의 삶은 실상 바로 너희 어미와 아비, 할아비와 할미가 살아온 시간들이고, 그러므로 너하고도 결코 무관할 수 없을 테니까. 그 고약한 인분 덩이를 눈앞에 빤히 놓아두고서야 아무 일도 없다는 양 훌쩍 뛰어넘어, 저 현란한 너희들의 미래 속으로 홀가분하게 내달려가기란 아무래도 거북스럽고 기분 찜찜할 테니까. 안그래?
 
   

100년 전을 생각해본다. 딱 백년 전이다. 1905년 그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가 배운 국사 시간을 더듬거려 생각해보면 막 개화가 시작되었던 시기이고, 일제의 침략을 받은 시기라는 것이다. 자 그럼 그 때부터 우리 나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짝 더듬어 보자.

1913년에는 3.1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 나갔고, 1932년에는 역시 대한의 독립을 위해 윤봉길, 이봉창 의사들의 의거가 있었고, 1945년에는 그렇게 원하던 해방이 이루어 졌다. 그러나  1948년에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죄없이 죽어간 제주 4.3사건이 일어났고, 1950년에는 6.25 즉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며, 1953년에 휴전이 이루어졌고, 그 이후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다 1960년 4.19로 인해 하야를 선언하였으며, 그 이후 1961년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독재정치 아래에서 경제개발을 추진하다 1979년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죽었으며 그 뒤를 이어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1980년 광주에서 5.18이 일어났다.

살짝쿵만 들여다 봐도 우리나라의 100년사는 정말 다사다난 했다. 한 사람이 1905년에 태어나 지금껏 살았다면 이 모든 역사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많은 아픔을 겪어 왔는지...

옛날 이야기 꺼내면 사람들은 또 그 이야기냐고 한다. 맞다. 이제 잊을때도 되었는데, 아니 너는 겪어보지도 못한 일들이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1980년 5.18에 나는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자라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땅에 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땅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아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지금의 자유로운 세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준 것은 아니니까. 짧은 역사 속에서 자유를 가져다 준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절하지 못할 망정, 그들을 잊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유없이 죽어간 억울하고 쓸쓸한 영혼들에게 연민의 정이라도 느껴줘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지.

백년의 역사는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몸으로 마음으로 모두 잊혀지지 않는 역사이다. 이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들과 죽은 인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바로 백년여관이다. 제주 4.3항쟁에서 살아남은 복수와 5.18에서 살아남은 진우, 6.25 전쟁 이후 고아가 되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요안, 베트남 전쟁에서 팔을 하나 잃고, 고엽제에 시달리는 문태, 그리고 일본식 목제 건물인 백년여관의 전 주인 하야시의 열다섯살 난 어린 조선인 첩.  인물들을 두고만 봐도 우리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살아남은 인물들만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어서 영혼이 된 자들이 바다를 떠돌며 손형태의 푸른 빛으로 발하는 모습. 그것들이 천년만에 온다는 개기일식날 백년여관에 모두 모인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참 읽기가 힘들었다. 부분적인 2인칭 서술의 기법도 낯설기도 했지만 무언가 어둡고 끈적하며 습한 느낌. 더디게 더디게 읽혀지는 그 내용들. 지루한 서술 때문이 아니라 내용에 담겨진 비릿하며 끈적거리는 것들이 읽는 동안을 힘들게 했는 듯 하다.

화려한 듯 하지만 정말 피와 눈물로 얼룩진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는 100년의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푸른 멍들과 피빛 생채기들을 우리는 잊으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잊으려고 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고, 잊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더 기억해내고 밝혀 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0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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