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냐 아우로라의 역할을 충실히 연기했다.
그것은 배에 약간 힘을 주고 소리를 내서 도냐의 대사를 읽어 내려가는 것인데,
길고 달디단 문장을 더듬거리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면 다니엘이 ᄐ처럼
도냐 아우로라에게 새로운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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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5-06-11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해볼까요?
충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도냐 아우로라의 역할을 한번 해보고 싶어지네요...
단숨에.. 읽어 내려가면.. 새로운 질문도 만날 수 있을지..

새로운 질문.. 새로운 해석.. 새로운 답안을 만나고 싶다..
고.. 술이 모자라게 취한 밤에.. 생각해 봅니다..
^___^

rainer 2005-06-1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로라는 예순살이예요.. ^^
 

 

 

 

 

 

느리게 가는 경기 북부 행 기차 안, 옆자리의 호전적인 할아버지가 건너의 아가씨에게 말을 건넨다. 아가씨,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다가 정말, ‘이번에 내려요’ 같은 말을 하고 기차에서 내린다.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내게 아가씨 어디 사나? 나는 읽다만 책을 덮고 할아버지를 마주 본다. 아가씨는 예쁘니까 교회 다녀. 예쁜 사람은 교회에 다녀 야 돼! 나는 하하 웃고, 할아버지는 그러는 내가 못마땅하다는 듯 눈을 흘긴다. 나는 그 때 마침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고 있었는데, 33 쪽, 고독 때문에 몸집이 준 포주의 이야기를 읽다가 소설 속의 <나> 가 옆자리의 할아버지 같을 거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런 생각은 소설을 읽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아서 일주일째 같은 책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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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5-1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예쁘시군요.

rainer 2005-05-1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게.. 그렇지 않아요. ^_^;
 

p에게 거짓말처럼 행복하다고 말한다. p는 믿지 않는 것 같다. 봄 뱀을 만나 잔뜩 움츠러든 나는 p의 옷소매를 놓지 못한다. 괜히 나는 C에게서 우울을 읽는다.  C는 한 번도 소리내 웃지 않고, 나만 햇살 앞에 맨 얼굴을 드러내고 깔깔 소리내 웃는다. 가끔 나는  몰래 웃을 때 오른쪽으로 약간씩 기우는 C의 부드러운 얼굴을 훔쳐본다. 햇살에 당당한 그를 질투한다. 그에게 닿으면 내 손에도 밝은 물이 스밀 것 같아 손등을 스치고 어깨를 부딪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나는 여전히 잘 감추고 겁을 내며 그늘에 몸을 숨기다가도 그가 빛나게 웃으면 따라 웃는다. 나는 내일만 살고 싶어서, 매일매일 내일만 살고 싶어서 일찍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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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6집 - 눈썹달
이소라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경기 북부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다 서점에서 ‘이소라’를 샀다. Y와 나는 역의 대합실에서 시간을 메우며 이어폰을 나누어 들었는데 손끝으로 짚어가며 노랫말을 읽기도 했다. 나는 화장수 냄새가 Y에게서 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까이서 귀를 맞대고 술자리에서 못 다한 몇 마디를 더 나누는 중이었다. - 지나간 기억을 되돌리는 향기가 있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냄새.  나를 떨리게 하는 누가 내 곁에 성큼 다가섰을 때 바람이 일면서 내 코끝으로 훅 끼치던 열정의 냄새다. 노랫말을 넘길 때마다 더 강렬해져서 나는 잠깐씩 Y에게 고개를 돌려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Y, 네게서 섹시한 냄새가 나. Y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하하 웃는다. 두 개의 의자 건너 낯선 여자가 우리의 얘기를 엿듣는다. 나는 Y가 사다준 빳빳한 기차표를 들고 시간을 확인하고 Y를 먼저 보낸다. Y의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에서 온기와 먹먹함이 전해진다. Y는 힘껏 악수를 하고 다정한 연인처럼 잠깐 내 허리에 손을 얹고 가볍게 포옹을 한다. Y는 가고 나는 여전히 이소라의 CD에서 나던 어떤 냄새가 Y의 것 인 것처럼 오래 기억한다. 미치게 사람이 그리운 찬 봄날의 저녁, 나는 취한 눈으로 소설을 읽고 나를 못 견디게 하는 서글픔의 원인을 캔다. 기차가 심하게 요동치며 놀라운 소리를 낸다. 이소라는 약간 어눌한 목소리로 웅얼웅얼, 슬퍼서 그런가보다, 슬퍼서 노래를 하면 얼마동안은 소리로 그 슬픔이 증발되고, 그래서 얼마간 견뎌지고, 또  슬퍼지면 노래를 하는 고독한 가수. 모자를 눌러 쓴 역무원 아저씨가 표를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다. 아하하, 아저씨, 그러지 마세요. 나도 따라 웃지만 나는 오래 전에 봄처럼 웃는 법을 잊어서 노래도 할 줄 모르는 나는 소라씨 보다 약간 더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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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서른 일곱이 된 순자 언니의 어린 언니는 열 살이 되던 해에 훈련을 하던 미군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미결상태로 남은 살인사건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발가벗겨진 채 논둑에서 발견 된 아이의 성기에는  자갈과 콜라 병 같은 게 십 키로는 더 들어 있었다고 했다. 눈썹에 문신을 한 S 씨가 그 때 내 친구였던 그 애가 죽어서 우리는 매일 먼길을 돌아다녔어, 라고 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순자 언니, 우리언니예요, 한다. 벌써 두 번째 S 씨는 우리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그으래? 하면서 흥미롭게 듣고 있던 나는 미안하고 놀라서 얼굴색이 변하고 S씨는 한참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후로 우리는 순자 언니가 조금 어려웠다. 착한 순자 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내 같은 목소리를 하고서 내 목을 조르는 장난을 즐겨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벌겠다고 취직을 했다. Y씨는 갠 힘이 세서 세제를 잘도 들 꺼야 하고 농담을 했지만 나는 Y씨가 미웠다. 오 년도 더 돼서 색이 변한 흰 운동화를 어디든 신고 다니던 사내 같은 순자 언니. 자주색 양말이 촌스러운, 팔십 사 만 원을  몰래 모아두었다고 자랑을 하던 사실은 정말 힘이 센 순자 언니를 보러 무궁화 유지 앞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야아, 산본아아, 하고 언니는 내 이름을 힘차게 부른다. 바람이 차고 눈도 내린 삼월의 봄날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순자 언니를 떠올리게 된 건, 순전히 레이먼드 카버의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를 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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