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는 일도 사는 일도 고단하고 허덕일 무렵 이 이야기가 왔다. 정미경은 이 작품을 미완의 유작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차마 그녀가 온몸을 삭아내리며 써내려 간 이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쓰는 일을 때로 부수적인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여겼던 나의 오만이 수만 가지 결 속에 웅크린 그 결코 스러지지 않을 엄중한 실재 앞에서 무너졌다. 그녀 앞에서 이야기는 장치에 불과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곁가지였다. 그 이야기를 지탱하고 그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은 그녀의 명징한 처절한 언어였고 그것은 쉽게 치기로 호기로 쓰여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를 삭아내리게 하고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흘러가는 건 시간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것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시간의 눈금 위를 걸어가는 건가.

-p.7


시작의 문장에서 나는 흠씬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결국 이미 짜여진 시간의 날줄과 씨줄 위를 걷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처연하고 허무한 것인가 하고. 이 문장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긍하는 지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신의 아주 먼 섬>은 그렇게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저 운명에 몸을 내맡기고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그러한 사람들의 절대 숙명의 엘레지가 아니다.


거의 매일 이곳으로 오지만 풍경은 매번 달라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오지 않았던 또다른 풍경이 보인다. 애잔하게 나부끼는 삘기, 하늘, 바다, 섬과 섬, 섬 뒤의 섬. 정모에게 이것들은 풍경도 색채도 아닌 시간이다. 언젠가 이 시간은 멈출 것이다. 그때도 바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p.58


돌아보면 항상 그렇다. 결국 시간. 모든 사람, 공간, 사물은 결국 그 시간의 풍화로 해체된다. 시간의 결은 예리하고 엄혹하다. 그것이 남길 것에 항상 회의했다. 바람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마치 예언 같다. 무겁지도 대단치도 않은 바람이 남아 그 존재가 살아냈던 시간을 증언해 줄 것이라는 예언은 저릿하게 아름답다. 


섬으로 돌아온 정모가 꿈꾸었던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금도서관은 과연 시간의 풍화에 견뎌낼 수 있을까. 삶이 그러했듯 확실한 것은 없다. 전적으로 옳은 것도 언제나 빛나는 것도 없는 게 삶이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그게 생이었을 것이다.


"속 끓일 것 없다. 지나고 보니 아픈 것도 낙이고 힘든 것도 낙이야."

-p.176


팔십 년을 넘게 산 할미가 이십 년을 채 살지 않은 소녀에게 하는 이야기는 사십 년을 산 나에게 들어와 박힌다. 이제야 이 할미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나이에 상실이 없는 삶이란 꿈꾸어서도 안 된다는 뒤늦은 체감의 지점에서 나는 오늘도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앞으로도 경험해야 할 수많은 상실과 고통의 진동이 파르르 전해져 온다. 견딜 수 있을거야. 그래야 비로소 늙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늙어 죽는 자는 전사다. 


작가의 남편이 말미에 붙인 발문이 비로소 미완의 작품의 마침표를 찍는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아내이자 작가를 잃은 그가 다시 덧붙인 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는 그의 아픈 상실을 대변한다.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답답한 감정이 시인의 언어를 만나 마침내 흘러나온다. 


<중략>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중략>

-정현종 <견딜 수 없네> 중



나도 사실은 견딜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