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노하우 아우또노미아총서 21
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박충식.유권종 옮김 / 갈무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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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더 많이 생각하고 나의 의식의 흐름에 더 집중할수록 더 이기적으로 변해 간다.
타인과 나 중심의 소통을 원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역설적으로 나는 더 불행해진다.
나에게 집중하는 삶이 아닌, 타인의 삶에 연대하는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는 것은 새로울게 없는 얘기다.
 

인지생물학자인 칠레태생의 프란시스코 J. 바렐라가 이탈리아 볼로냐대학 초청되어 윤리학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실은 이 책은 본문이 백페이지가량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얇은 책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인지학, 구성주의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상당부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은 불친절한 책이다. 그러니 나 같은 독자는 두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해제도 잘 되어 있고 번역자들도 기본적으로 인접학문을 전공하여 충실한 번역을 하려 애쓴 노고가 돋보이지만
평범한 독자들이 철학과 컴퓨터과학, 뇌과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 눈부시도록 놀라운 바렐라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빛나지만 따올 수는 없는 별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할까. 
조금이라도 쉽게 읽으려면 말미에 실린 역자의 해제와 바렐라의 생애를 역으로 먼저 읽어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바렐라의 이론을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윤리의 노하우는 점진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아의 가상성과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바렐라는 자아는 허구의 참조점이라고 본다. 바렐라만의 독창적인 이론은 아니지만 자아는 허구의 개념임을
체화하면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자비와 연대가 생겨난다는 주장의 독창성은 놀랍다.
'나'는 없다. 타인과 관계하기 위한 언어, 여러 사회적 활동 사이의 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타인에 대한 동정은 욕망의 광기로 전염되어 있기 쉽다.
그 어떤 욕망도 끼어들지 않은 공의 상태에서 자비는 충동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가 거론한 맹자의 성선설도 이 부분에서 재조명된다. 나는 여즉까지 맹자의 성선설을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이 머나먼 이국의 학자는 맹자의 성선설을 더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선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의 만개
라고. 그러니 반드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은 보통 자아의 느낌과 뒤섞여 있기 때문인정받고 평가받으려는
열망을 충족하려는 욕구와 혼동
되기 쉽다. p.106 

결국 나를 비울 일이다. 도교, 불교, 유교와 서구과학의 접점에서 타인에 대한 연대의 지도의 참조점을 설명해 준
그는 결국 도덕적 행위란 공리적 윤리체계나 실천적인 강령이 아닌 허구의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외치고 있다. 비어있는 나의 허전함은 타인에 대한 참된 돌봄으로 채워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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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1-2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타인에 대한 동정은 욕망의 광기로 전염되어 있기 쉽다..그리고 '나'는 없다..

문득 '자아는 만들어진 자기방어의 정체성'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블랑카님.나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音과 音사이,사물과 사물사이,나와 너 사이의 여백쯤일까요?)

blanca 2010-01-26 22:26   좋아요 0 | URL
자아라는 개념에 집착할수록 더 불행해진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좀 그런 경향이 있어요--; 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사실은 에파타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는 것들이 마냥 나인 것처럼 오해하고 집착하고 속단하고. 정말 만들어진 자기방어의 정체성이라는 표현이 맞네요. 그런데 또 심리학 정신분석에서는 자아를 강화하는게 치료의 첫걸음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서 참 헷갈립니다. 개념 자체가 서로 다른 건지.

저절로 2010-01-2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신분석' 아주 순하게 표현하자면 회의적입니다. 조작된 개념으로서의 '정신'은 결코 보편화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강화'라니요(천만에 말씀 만만에 꼬딱지!). 요즘 저는 '無'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blanca 2010-01-27 14:0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요즘들어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프로이트씨도 좀 그렇고. 솔직히 잘 알지는 못해요.^^;; 공부가 더 필요한 분야지요. 마음이 약해질 때는 또 솔깃해지고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