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주인공처럼 큰 눈에, 분명 성형했을 거라고 수군대며 깎아내렸던 오똑한 코를 뽐내던 도덕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어보면 그 스프 건더기 하나 더 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말이야~" 

그 뒷부분에 어떤 얘기가 이어졌는지, 아니 왜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도덕시간에 호사스러워뵈는
외모를 지닌 그 샘으로부터 나왔는지를 나는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중2였나 그 때쯤 그 도덕샘이 하라는 대로
모조리 다 했던 우리 반 아이들은 너도나도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그 왜곡된 기억의 편린들을 조합해 보면 도덕샘은 산다는 것의 신산함과 그 구차함에도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일상을 꾸려나가는 그 생의 의지를 얘기하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얇은 대작가의 명작은 고전답지 않게 더없이 재미있고 익살스러웠다. 실제 솔제니친의 유형생활에 기반한 그 작품은 건더기가 더 많은 스프그릇쪽을 교묘하게 자기 쪽으로 돌려 놓는 장면이 전체를 압도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어떤 기억은 특정한 감각 하나로 편집되는데 그것은 경험하지도 경험할 리도 없는 바로 그 희화화된 바로 그 장면이 풍기는 비릿하고 시척지근한 살의 냄새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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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소설책을 줄치면서 읽어 본 적 있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은 정말 한 줄 한 줄 줄치면서
읽게 된다." 안경 뒤로 느끼하다고 폄하했던 노총각 문학샘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을 때 나는 단정지었다.
 

<카라마조프네 형제들> 되게 재미없겠다! 그럼에도 무슨 부책감처럼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을 꼭 다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후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었다면, 적어도 픽션을 단순한 상상력의 구획이 아닌 기억해 두고 싶은 삶의 전언으로 간직할 정도의 독서를 한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존경을 바치게 된다. 아직 가보지 않은 그 세계에서 찬란히 빛나는
그 작품을 나는 쉽지 않은 독서가 되리라는 짐작과 줄을 좍좍 그어대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의 모습을 조금 미루어 두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당분간도 시작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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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 여러 번의 투옥을 거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창립, 고문을 역임한 함세웅 신부님
만난 것은 종교적 회의론에 빠져 있으면서도 끝내 다른 프리즘 안에서 나를, 나의 신에 대한 사랑을, 복원해 보고 싶은
그 관성 같은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았을 때였다.  

첫영세를 받는 그 6개월의 예비자 교리 막바지 즈음하여 신부님의 강론을 듣게 되었고 당시 둔중한 울림이 나의 몸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느낌에 전율했다. 함신부님은 성직자 이전에 치열한 학자였고 삶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각성으로 말 하나 하나에 실은 그 진실의 추가 작은 성당 전체를 드리우는 듯했다.  

종교 안으로 사람과 인간사 전체를 가두려 하지 않았고 말장난으로 공허한 메아리를 매듭지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강론을 듣고 있으면 나는 다시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있는 듯 했다. 강론을 메모하고 정리하고
또 되새김질하는 것은 모처럼 생경하지만 찬란한 경험이었다.
 

부활절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함신부님은 톨스토이의 <부활>을 통해 강론을 열고 닫았다.
어린 시절 분명 치기로 일역에서 다시 한역으로 오독된 그 엉망의 번역서를 다 읽은 것도 같은데 그 어떤 기억도 담지 못한
나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톨스토이의 <부활>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그 분의 그 빛나던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부활은, 인생의 고난을 겪고 난 후에 그것의 의미를 알고 거기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다고 깨닫는 순간 이루어집니다.
그 곳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이 지나가고 난 그 자리. 훗날 그 자리는 분명 다시 피어난다. 비로소 그것의 의미를 깨달으며 그 고난도 남기고 간 것이
있음을, 그 고난 덕택에 지금 이자리에 내가 있음을 안도했을 때 뿌듯하게 차오르던 그 미지의 느낌 속에 꼭 나의 하느님을
모시고 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멋진 얘기였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그렇게 나의 기억 속에 드디어
아퀴를 짓게 되었다. 

 

 

 

 

 

 

 

 

정작 냉담으로 불편하고 자신없는 마음과 러시아로 떠났던 예쁜 친구의 귀향이 우정의 복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 추억들에 얽힌 나의 슬픈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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