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2부(4,5권) 민중의 불꽃을 마쳤다. 여순사건 이후의 10개월 동안을 그린 것으로
6.25 직전까지 주로 농지개혁 관련된 소작인들의 애환과 분노를 그리고 있다. 춘궁기의 그 처절한 기아와 허덕임,
남의 논을 붙여 먹고 사는 이들의 그 어쩔 수 없는 비굴함, 끊임없이 가진 자들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그 숙명 같은 나날들.
그 추상성을 구체화 하는 날실과 씨실에 매달려 있는 작가의 눈물이 나의 눈자위를 축이는 것 같다.  

일제에서 해방되고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바로 농지개혁 문제였다. 그 농지를 어떻게 몰수하고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에서 좌우익을 막론하고 결론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였으나 기존의 지주계층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귀결되었으며, 이에도 지주계층들이 불법의 명의 이전을 통한 빼돌리기 등으로 가엾은 소작농들의 꿈은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항시 박탈당해 온 그네들의 절망감은 집단 반발로 가시화된다.  

태백산맥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서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군데군데 민족주의자, 주로 극좌나 극우가 아닌 중도 노선을 걷는 인물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역사의 개관은 조정래 자신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분단의 전후 배경인 듯하다. 물론 작가의 주관이 투영되어 있는 한계는 짚고 넘어가야겠으나, 단순히 북한의 일요일 새벽 삼팔선 남침으로 정의되어 온 6.25 전쟁(나는 이렇게 배웠다)이 얼마나 많은 요인을 품고 있는 지를, 그리고 우리가 왜 아직도 극좌나 극우니 하는 구획 안에
편의대로 사람들을 몰아 넣기를 즐기는 지를 적어도 우리 민족의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게 된다. 요는 친일파의 청산에 관련된
오늘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에서 출발한다. 친일파는 청산되지 않았다. 미군정의 편의하에 그들은 다시 각종 관직에 등용되었고, 그들의 콤플렉스는 이념 문제를 이용하여 반대파를 처단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조정래는 이념 그 자체에 대한 회의의 가운데에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애정, 민중에 대한 경외를 두고 있다. 공산주의도 또 그것의 반대개념으로 차용되어 이용되어 온 민주주의도 그 이념만으로 인간 세계를 재편하고 행복이라는 지향을 실현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사랑, 신뢰이다. 그 본질에 대한 간과가 결국 치달은 곳은 반대파에 대한 극도의 증오와 처단이 아닐런지. 

계엄사령관 심재모가 갈렸다. 마을 주민의 대를 잇게 해주려고 해방구에 여자를 들여보내는 것을 용인한 죄목이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부분. 지주들의 악독함에 대한 희화화는 아주 익살스럽다. 소작인들이 머슴방에서 냄새 피워올리며 옛날 야그하는 장면은 백미이다. 나도 그 따땃한 방에서 발냄새 피우며 두부 김치 먹으며 옛날 야그를 듣고 싶다. 

대하소설은 섣불리 잡으면 안될 것 같다. 완전 폐인되는 분위기. 매일 졸립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고 살림이고 모고
다 집어치고 산 속에 들어가 <아리랑>, <한강>, <토지>까지 다 읽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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