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른 살까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죽어 버릴꺼야!
작달만한, 한 때 정말 친했던 그 아이는 꼭 소설 속 명대사를 그럴 듯하게 읊듯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자취방이었고 동아리 뒷풀이 후였던 것 같다. 여러 명이 술에 취해 있었고 각자 횡설수설 그닥
대단치도 아름답지도 않은 자신들의 사연을 풀어내고 있던 와중에(아무도 안 듣고) 그 아이는 절규하듯 그렇게 말했고,
아무도 그 아이의 그런 도발을 도발로 받아들이지 않고 심드렁하게 그러냐? 정도의 무덤덤함으로 정리하려 했다.
사실 그 나이는 누구나 더 불행한 척했다. 더 많은 사연을 숨긴 척 하고 싶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동조했었다.
왜냐하면 그 때 스무 살에는 서른 살까지 살 거라고 그 끔찍한 나이 언저리에 도달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눈부신 처절한 스무 살 그 언저리에서 맴돌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무 살이 싫었지만 서른 살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나이였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 중
김연수가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 같은 독자는 그의 소설일지라도 그 속에는 그가, 혹은 그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엉켜 있다고 가정한다. 그도 주변에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퍽 많다고 얘기한다. 이거 너얘기지? 이런 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솔직히 상당 부분 누군가의 관음증을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에 후달리게 된다. 작가는 더 많이 벗어 수치감을 달래면서 함께 독자를 더 충족시킬 수 있는 그 위태위태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물론 이런 한계에서 일찌감치 저멀리 날아가 버릴 수 있는 이도 있다. 아주 대단한 상상력을 지녔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주변에 두어서 더이상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소설가는 자신의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 고갈 지점에 맞닦뜨리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도 어느 순간 또 자기 얘기를 풀어내고 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청춘의 문장들'은 김연수가 자기 얘기를 소설적 장치를 집어 던지고 솔직히 내 얘기야! 하고 고백하고 시작하는 얘기다. 그가 상당히 가난했고, 전도가 전혀 유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마다 하꼬방 같은 곳에서 시를 써대는 얘기는 결국 작가는 결핍을 먹고 태어나는 존재인 것만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그가 김천의 뉴욕제과 아들이었다는 얘기는 몇 번 접했지만, 원래 시인을 지망했고, 대학 졸업후 상당기간 백수였으며, 노숙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처없이 떠돌다 숙박을 힘들게 해결하기도 했던 얘기는 지금 그가 쓰는 소설의 그 쿨한 분위기와는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거칠고 단단하기보다는 말랑말랑하고 향기가 나는 조금 여성스러운 호흡을 내뱉는 그의 문장이 그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한때 대중음악평론가였단다! 이 부분은 이제서야 왜 그렇게 그의 소설 속에 음악이 많이 등장하고 심지어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는 제목이 일본 밴드의 노래에서 왔는지 드디어 의문부호가 풀리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내뱉는 얘기들이 시구 같이 들리는 것 그것도. 솔직히 이 부분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다. 저기 밀려오는 파도를 보세요, 저 파도는~ 이런 식의 대화는 현실에서 넘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것보다는 차라리 김치 이쪽을 잡아라, 내가 찢을께 같은 김훈식의 대화가 더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나는 김연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전체가 싫은게 아니라 이 부분이 조금 곤란하다는 정도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애잔해진다. 자꾸 자꾸 김연수의 청춘이 아닌 나의 청춘이 나의 스무 살이, 나의 유년이 걸어들어 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듯. 많이 울었다는 리뷰들이 많았다. 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나 기억들이 덧대어 지는 부분에서 감흥이 컸을 터인데 나는 그가 딸 열무(실명일까? 너무 이쁘다!)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려가는 장면이 너무 예뻐서 주머니에 집어넣고 싶었다. 내 딸아이도 함께.
정말 아름다운 여름이었다.(중략)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면서 나는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이다"라고 혼자 말해봤다. 첫번째 여름은 열무는 누워서 보냈고 두번째 여름에는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초록색 그늘 아래를 달린다. 세번째 여름을 또 어떨 것인가? 지금 내가 가진 기대 중 가장 큰 기대는 그런 모습이었다.(p.26)
또 정릉의 달동네에서 자취하던 그가 비 오던 날 어느 시인의 방문을 회상하는 장면.
아무도 뜯어주지 않는 선물 포장 속의 곰돌이가 된 심정으로 잇따라 붙은 도합 세개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p.169)
곰돌이. 곰돌이. 그만 포복절도하고 말았다. 이런 앙콤하고 귀여운 표현은 권장되어야 한다. 암. 사실 생각해 보면 아주 슬픈 정경인데도 불구하고 김연수식의 위트가 그만 그런 풍경을 조금은 덜 초라한 것으로 업시킨다. 그건 그만의 장기일지도.
아주 가볍지만 조금 슬프고 많이 웃긴 책이다. 나의 스무 살. 나의 청춘을 덜 아프게 회고할 수 있다면, 이제는 나의 스무 살을 누군가에게 주저리 주저리 거짓말 조금 보태고 과장 몽창 쒸워 할 수 있다면. 그 지점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시인 등단 소식이 오던 날 구내식당에서 큰 소리로 웃어대었다는 그의 목소리를 빌리면 그 희미하던 것들이, 흩어져 있던 것들이 조금 더 명료해지고 아픈 그 부위들이 조금씩 치유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