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리는 베이징에서 태어나 면역학자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 왔으나 우연히 아이오와대학 작가 워크숍을 통해 작가가 된 특별한 이력을 지녔다. 




"살아가는 일은 독창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 에세이는 상당히 어둡다. 자식을 학대했던, 독선적이고 감정적인 친정 어머니에 대한 기억, 두 차례에 걸친 자살 시도와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명징한 언어들로 감침질되어 있지만, 처절할 정도로 삶의 그 잔혹한 속살을 드러낸다. "생명이 있는 한, 삶에 면역이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이윽고 다음 이야기의 복선이 된 것만 같다.


작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과거형이다. 두 아들중 한 명은 십대에, 다른 한 명은 대학생이 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이야기는 이 에세이를 쓰고 난 다음 벌어진 일이다. 그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다.
















감정적으로 힘들어 몇 번이나 멈추며 읽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명민하고 건강하게 키워낸 아들 둘이 스스로 삶을 포기한 이후,  그 상실을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감당해 내고 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윤 리의 형언하기 힘든 고통의 자장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이 시련에는 이 상실이 주는 슬픔만이 다가 아니었다. 위로랍시고 응원이라며 무심코 던지는 주변인들의 상처 주는 말들,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쓴다는 걸 일종의 모국에 대한 배신이라고까지 비난했던 모국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선정적이고 잔인한 기사들. 타인들의 아무 의도 없이 지나가듯 묻는 안부. 그 모든 것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려와 아이를 잃은 어미의 상처를 짓이겼다. 인간은 때로 얼마나 오만한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위로와 도움이 결국 나의 안위와 우월감을 재확인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우리는 삶의 뜻밖의 시련에 처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가?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은 이 책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는 저류다. 이윤 리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이다. 아들에게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도 이윤 리는 섣불리 낙관하거나 희망적인 답을 내어놓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일을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은 없다. 기만과 포장, 눈속임을 기꺼이 포기하고 나면, 우리는 결국 돌아설 수 없는 심연을 마주하게 된다. 


쓰고 읽는 일은 그래서 때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예리한 통찰과 깊이가 있는 글을 읽는 일이 언제나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이야기인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득해진다. 시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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