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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 - 창비소설집
윤영수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집을 읽고 가슴이 뛰었다. 각박한 현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이 거칠지만 푸근하고 따뜻했다. 기법의 세련됨이나 척-하는 멋은 없어도 각각의 단편이 작가와 같은 시간-공간대에 사는 독자의 경험과 교차하면서 울림을 남긴다. 이런 기쁨을 맛보려고 우리는 한편으로는 지겹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소설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덟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단편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콩켸팥켸"였다. "콩켸팥켸"는 정신없이 뒤죽박죽인 된 상태를 일컫는 우리말이라고 한다. 오십이 다 된 중년의 주부가 친구의 말을 따라 모처럼 우아하게 혼자서 외식을 하러 나가기로 한다. 그래봤자 고른 날이라고는 남편도 아아들도 다 늦게 들어오는 그래서 혼자 빈집에서 찬밥을 먹는 날이다. 가는 곳도 무어 대단한 요리집도 못 되는 동네 한식집이다. 주부의 간이란 마음을 먹어도 좀처럼 커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막상 옷을 차려입고 나가자니, 손지갑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를 않고, 열쇠가 눈에 띄어주지를 않는다.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다가 간신히 아파트를 나와보니 이번에는 가스는 껐는지 그 다음엔 현관문은 잠갔는지 불안해서 다시 들락달락. 이젠 정말 끝이다, 라고 음식점을 향해 씩씩하게 걸음을 옮긴다 싶으니 왠걸, 소리가 이상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 원피스 아래로 발에 걸쳐진 것이 보라색 욕실 플라스틱 쓰레빠다.
소주 한 잔이나 담배 한 대에 인생무상이니 삶의 허무를 되는 대로 갖다붙이는 것이 우리네 흔한 치기이듯이, 이 단편 속 중년의 여주인공이 하루 저녁 혼자 용감하게 해보기로 한 외식에도 뭔가 야무지고 똘똘한 인간이 되어보겠다는 결의라거나 갑자기 어디에서 솟아났는지 모를 용기나 투지처럼, 거의 허황되어 보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름대로 더 절절한 오만가지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이 외식에 보라색 쓰레빠가 왠 말인가.
뒤죽박죽이 된 상황은 그러고도 한참을 더 간다. 붐비는 저녁시간에 혼자 들어가 차지한 테이블에서 주인공은 곧 세 명의 남자와 합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고, 음식을 먹으며 공상에 잠기다가, 중년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거대한 사업계획, 폐백음식 장사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벅찬 가슴으로 계산대에 서고 보니 왠걸, 자신이 열심히 먹어댄 것이 사실은 합석한 사람들이 주문한 불고기가 아니었던가. 주머니에 돈이라도 넉넉히 있으면 실수였다며 돈이라도 내주면 그만이겠는데 여유라곤 없는 주부의 지갑에 그만한 돈이 있을리 없다. "참으로 걱정이었다. ... 앞으로 다가울 하많은 삶의 순간마다 하많은 일들을 얼크러뜨리고 황황해할 이 대책없는 여자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나는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pp.152-153.) 이 단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정신없이 얼크러진 세상이며, 머릿 속이며, 대책없는 자신이며가, 어찌 비단 중년주부의 문제이기만 할쏘냐. 이 단편이 형성하는 공감대는 그래서 단순히 건망증이 심각해진 중년 여인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세상 속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어느 순간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다. 시간을 영위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쓸려 익사할까 쩔쩔매며 매일을 산다. 모두가 다 칼 루이스가 되어도 모자랄 판인데 우리의 달리기 속도는 중고등학교 때 체력장에서의 그 백미터 기록에서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나는 실소했고, 그러면서 마음이 편했고, 그러면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 다시 보였다. 이 정도면 하나의 단편을 읽고 얻을 만한 것은 다 얻은 것이 아닌가.
이 책에는 "콩켸팥켸" 이외에도 7편의 단편이 더 실려 있다. "벌판에 선 여자", "해묵은 포도주", "알몸과 누드"는 한 장소에서 우연히 지나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씩 쓴 것인데, 각각의 이야기가 긴밀하게 연결되지는 않아도 모두 읽고나면 세 단편으로 묶여 나타난 현실 속에서 독자는 역으로 시대를 보는 작가의 치밀한 눈을 엿볼 수 있다. "기사와 건달의 섬"과 "밍크코트가 된 고래"는 끝이 모호한 작품들이다. 문제적 현실은 작가의 손에 잡혔는데 다듬어진 각이 충분히 선명하지 않다고나 할까. 그러나 마지막에 실린 두 단편, "삼가 조의를 표함"과 "착한 사람 문성현"은 흔하지 않은 소재와 탄탄한 인물 설정으로, 왜 이 작가가 주목받아 마땅한 신진인지를 보여준다.
"좋은 작가 윤영수"는 문학평론가 최원식이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자신의 해설에 붙인 제목이다. 그 해설의 부제는 연옥의 탐구다. 부제의 의미는 나로서야 알 길이 없지만, 제목은 참 좋은 제목이 아닌가. 책을 읽고 난 독자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니 말이다. 이 책의 작가 윤영수는 좋은 작가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