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가난과 체면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난과 체면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왜 친구가 가진 것을 나는 갖지 못하나, 왜 우리 집에 뭐가 뭐가 없다는 것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게 되나, 왜 너와 내가 이건 있고 저건 없다고 속을 다 까발리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는 거다. 그 때는 가난과 체면이 한 발짝 한 걸음 내딛는 곳에서마다 인간의 인생을 자빠뜨리는 그렇게 골치아픈 문제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저 얼른 커서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갖고 싶은 것은 다 사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리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 야심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아서 세상은 불만족 상태의 어른들로 가득차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이 있고, 먹고는 살아도 영 시원찮은 사람이 있고, 웬만하긴 하지만 원하는 바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이에서 바둥거리면서 나는 어디쯤에 낑겨 있나 생각해본다.  

함민복의 이 책, <눈물은 왜 짠가>를 읽으면서 어쩌다가 가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것은 딱히 이 책 속에 시인이 겪은 가난의 경험이 미어지게 들이차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아, 이 시인이 참 힘들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허나 정작 시인은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작정한 태세가 전혀 아니다. 그냥 붓 가는대로 자기 사는 이야기, 고향 이야기, 식구 이야기, 가축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속으로는 그 마음이 참으로 쓰리겠다 싶은 이야기를 해놓고서는 그래도 사는 게 배부르고 슬픔도 배부르다고 이야기한다.  시장통엘 가면 패자에게도 삶에의 의지지분이 있다고 귀뜸한다. 부도가 나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가족을 추억하면서 이렇게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가족과 피붙이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든다. 서로에게 향긋한 냄새를 풍겨주는 것만이 아닌, 시큰한 냄새가 나는 김칫국물 자국을 서로에게 남겨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는 형의 가슴에, 형은 내 가슴에 엎질러진 김칫국물이 아닌가. 어머니는 내게,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내게, 나는 아버지에게, 누나는 ..."

여기다 대고 마음이 가난해도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물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 정말 들이대고 물으면 시인은 뭐라고 답할까, 엉뚱하게 심술궂은 마음이 잠깐 들기도 하고. 돼지새끼도 살리고, 뻘밭에서 구멍을 후벼 낙지도 잡고, 보신탕집에 팔려갈 개를 키우면서 마음고생도 하는 시인의 이야기는 빨리 읽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덮어놓을 수도 없어 머리가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어느 날은 지갑이 부도가 나고 어느 날은 마음이 부도가 나고, 어느 날은 그 둘이 한꺼번에 터지기도 한다. 부도가 줄줄이 나면 어쩔 것인가, 나는 대로 산다고. 장사꾼이 그러면 영 성공을 못할 위인이라 하겠지만, 시인이 그러면 듣는 사람 마음에는 시큼한 김칫국물이 번지리라. 본인 말대로 유하씨 시집에 나오는 시인과 이름이 같다는 시인 함민복이 그렇게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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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1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2-2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날은 지갑이 부도 나고 마음이 부도 나고
어느 날은 그게 한꺼번에 터지기도 한다.

명문입니다.^^

검둥개 2006-02-21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답글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책을 읽고 저는 이것이 정말 궁금합니다. 본인 왈, "지금까지 살아온 한 단면을 베어넘겨보는 소설 ... 사랑과 성과 어머니와 글쓰기에 대한...... 뭐, 그냥 삼십사 년을 살아온 현 상태를 되짚어보자는 식의."(107) 그 소설은 정말 나왔는가요? ;)

로드무비님 진짜요? ^ .^ 에헤헤,감사합니다.

blowup 2006-02-22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이 시큼한 김칫국물을 훌훌 마시지 못해요. 김칫국물 흐른다고, 도시락에도 절대 안 싸가지고 다니던 새침떼기였어요.
네가 내 가슴에 엎질러진 김칫국물인 것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지...

검둥개 2006-02-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그러셨군요 ^^ 전 도시락을 엄청나게 싫어했어요. 도시락 때문에 감출 수 없는 그 속사정의 모양새를요.

산사춘 2006-02-23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복 시인 책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는데, 꼭 봐야 겄어요.

검둥개 2006-02-2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꼭 보셔요. 읽어서 맘 편한 책은 아니지마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