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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는 사라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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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난곡 재개발 이주민 최정순 씨 이야기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0823091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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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관악구 난곡.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인권오름 |
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유명했던 난곡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지 1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난곡이 가난한 동네가 아니라 한다. 달동네가 없어졌으니 가난도 없어진 걸까?
난곡에서 재개발 전 가옥주 가운데 새 아파트에 들어간 사람은 9%가 채 되지 않는다. 세입자 중 일부는 임대아파트에 들어갔지만, 다섯 가운데 하나는 결국 임대료에 밀려 나오고 말았다. 그나마 천만 원이 넘는 임대 보증금을 구하지 못한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인근 지하방이나 옥탑에 월세를 얻었다.
최정순 씨(49, 가명)도 달동네에서 월세 방으로 옮겨온 세입자이다. 그는 난곡에서 자란 토박이인데, 결혼하면서 떠났다가 95년에 다시 어린 딸과 들어왔다. 3백만 원 보증금으로 둘이 살 방을 구하기엔 이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되지 않아 재개발 소식이 전해졌고, 2000년부터 마을은 철거에 들어갔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졌어요
지금 정순 씨는 옛 달동네에서 멀지 않은 주택에 두 칸짜리 방을 얻어 살고 있다. 산자락에 있어 한참을 올라가야 하지만 창밖으로 산이 마당처럼 펼쳐져 있는 집이다. 집이 참 좋다고 하자, 정순 씨는 "주거 조건은 좋아져도, 먹고 사는 게 힘들어졌다."고 했다.
"내려와서는 안에 화장실도 있고 주거 환경은 좋아졌어요. 그 대신에 여기에서 우리가 얼마를 가지고 한 달 생활을 해야 하나 계산을 해 봤어요. 겨울에는 딸이 지내는 방을 잠그고 안방만 써요. 가스를 약하게 틀어놓고. 그렇게 절약을 해도 겨울에는 아무리 아껴도 가스비가 10만 원씩 나오니까, 백만 원을 넘게 가져야지 생활이 가능하더라고요. 먹어야죠, 떨어진 옷 입고 다닐 순 없죠, 또 겨울에 여름 신발 신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쉽게 말해서 재개발하기 전에는 이틀에 한 번씩 고기 먹었다면,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먹기도 힘들어요."
정순 씨는 재개발 후 월세 부담으로 더해진 생활고를 가장 큰 어려움이라 했다.
"산동네 살 때는 대부분 전세 값 3백만 원이나 많으면 5백만 원에 살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사비용 20만 원 받아가지고 나온 세입자가 그 돈 가지고 내려와서 어디로 가겠어요."
" 지금 사는 집이 보증금 5백에 월 25만 원씩 해요. 그러면 산동네에서 살 때 안 들어가던 돈이 평균적으로 25만 원씩 집 세로만 들어가는 거예요. 25만 원이면 두 사람 한 달 생활비예요. 산동네에서는 둘이서 공과금 내고 그 걸로도 살았는데 여기에서는 살 수가 없어요."
정순 씨는 자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있을 거라고 했다. 더군다나 많은 세입자들이 단기간에 목돈을 구하지 못해 빚더미에 올랐다. 재개발을 빨리 진척시키기 위해서인지, 지금은 해 주지 않는 무담보 대출도 당시에는 신용불량자만 아니면 쉽게 해 주었단다.
"산동네에서 3백만 원 전세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내려와서 집을 구하려고 하면, 예를 들어 보증금이 5백 만 원짜리 집에서 살아야 하면 2백만 원을 어디서 급하게 구해야 하니까 빚을 지지요. 거기다가 이사 가려면 차를 불러야 가지요, 잔손질 하고 이것저것 하고 나면 최소 못 들어도 이사 비용이 50만 원에서 백만 원이예요. 그러면 3백만 원을 빚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자가 안 늘어나겠어요? 그러다 보면 또 생활비가 없으니까 빚내서 살아야 하고."
빚을 갚지 못해서 신용불량이 된 사람들에게는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정순 씨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라도 주고 여기 들어가서 살라고만 했어도 여기 사람들 이렇게 엉망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했다. 사람들을 급하게 내몰지만 않았어도 목돈을 구하느라 빚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불어나는 이자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테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일을 구하지 못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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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곡 재개발 공사 현장 ⓒ인권오름 |
허울 좋은 임대아파트
물론 이주 대책이라는 것은 있었다. 재건축 할 때부터 지낼 수 있는 임대아파트를 마련하는 순환식 재개발이 난곡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격렬했던 난곡의 철거민 투쟁이 얻어낸 성과이긴 하지만, 혜택을 받은 사람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3백에서 5백만 원 전세로 살던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1350만 원과 월 16만 5천 원의 임대료는 턱도 없이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대료는 해마다 올랐다. 당시 세입자 1501가구 가운데 44%인 666가구가 임대아파트에 들어갔지만, 이 가운데 20%인 142가구는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해 결국 임대아파트를 떠나고 말았다.
" 임대 아파트 들어간 사람들이 데모 하는 걸 내가 뉴스에서 봤는데, 그럴 수밖에 없어요. 비새는 집에 앉아 있다가 아파트에 가면 처음에야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임대 아파트 들어가면 1년에 한 번씩 임대료 올려, 또 보증금 올려. 그거 못 내서 임대아파트에서 쫓겨 난 사람들 허다해요. 그 사람들이 이 동네 와서 지하실 간다니까. 100만 원에 10만 원 하는 단칸방 같은 데로요. 임대료가 17만 원으로 책정 되었으면 17만 원으로 가만 놔둬야지 다달이 왜 올려요?"
공인된 폭력, 재개발
"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10원짜리 하나도 함부로 안 쓰거든. 양말도 500원짜리 사다 신고, 그것도 똑같은 걸 두 개 사는 거야 같은 색깔로. 왜냐면 한 짝 떨어지면 나머지 짝 맞춰서 신어야 되니까. 그렇게 사는 실정을 지네가 아느냐 이거예요? 허울 좋은 재개발, 주민들을 위한 재개발, 주거환경 개선하기 위한 재개발? 절대 아니에요."
정순 씨는 재개발이 없는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한 것뿐임을 지적했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면 동네 무너진 담장을 고치든지, 화장실을 짓든지, 부서진 길을 내 주는 게 옳지 않느냐는 것이다.
" 산동네는 주거 환경이 나빴어도 살기 좋았어요. 일 나갈 때 이웃 사람한테 아이 좀 봐 달라고 부탁하면 애들 밥 주고 씻겨서 재워놔요. 그러면 나도 콩나물 사 무쳐서 같이 나눠 먹어요. 그 집에서 된장국 끓이고, 난 콩나물 무치니 반찬도 두 배가 되어 좋고. 이렇게 살았어요."
"그때 제가 불 지를 때 까지 있었으니까, 거의 마지막 까지 있었어요. 일을 갔다 오니까 옆집까지 싹 다 부수어 놓았어요. 길 잘못 밟으면 무너지는 거야, 낭떠러지예요. 그래서 집에 올라갈 때 기어서 올라갔어요. 그 때 사람들 알게 모르게 많이 죽었어요. 아파서 간 사람들도 있고, 술에 폐인이 되어서 간 사람도 있고."
용역 깡패, 철거반이 동원되어 물리적인 폭력이 자행되던 때를 기억한다. 그들이 집을 두들겨 부수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러나 재개발로 인한 고통은 아주 오래 간다.
" 거기에선 식당이나 여기 저기 나가는 사람이 많았어요. 보통 노동 일 하는 사람이 많았고. 직장 생활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거기서 내려오고 나서 빚을 많이 지고, 신용불량 된 사람들은 직장 생활 못할 거 아니에요? 그럼 그런 사람들이 할 게 뭐가 있겠어요. 먹을 게 술 밖에 더 있겠어요? 그럼 몸 나빠지죠. 그래서 결근해. 그럼 또 일 떨어지고 그런다고요. 생활에 무슨 낙이 있어요. 애들은 커가지, 들어갈 돈은 많지, 먹고 살 길은 막막하지. 그러니 술에 자꾸 의존하죠. 폐인 된 사람들 많아요. 그러면 병들고 일 못해 수급자 돼. 그러다가 '아, 이제 정신을 차려야 되겠다, 일을 해야겠다.'해서 취로 사업을 나가요. 그 걸로는 생활이 나아질 수 없으니까 토요일 일요일에 따로 나가서 일을 하려고 하면, 또 그걸 못하게 한다고요."
자활을 막는 생활보호제도
정순 씨도 공공 근로를 나간다.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30만 원과 공공근로로 받는 26만 원을 합친 약 60만 원이 모녀의 한 달 생활비. 공공근로는 일주일 5일, 한 달에 많아야 13번 밖에 할 수 없다. 이렇게 버는 돈으로는 근근이 먹고살기도 힘들다. 그러나 수급을 받기 위해서는 일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 수입이 일정액을 넘으면 수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정순 씨에게는 의료비를 비롯한 수급혜택이 절실하다.
"나는 진짜 몸만 안 아프면 정부에서 주는 돈 안 받아요. 이건 일을 하지 말라는 거죠. 그럼 수급자들은 주는 일만 하다가 가난에 쩔어서 죽고, 이게 우리 자식한테 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대물림 되는 거거든. 토요일 일요일 수급자들이 일을 나가면 놔둬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야 얼른 벌어서 월세 벗어나서 전세라도 가지. 애도 대학도 보내야겠고. 그런데 거기서 주는 돈만 가지고 살라 하면, '너네는 주는 일만 하고 가난에 찌들려 살아라.' 이거 아니에요? 지금 정책이."
정순 씨는 저소득층에게 창업 자금을 저리로 대출해준다는 공고를 보고 가슴이 설레었다. 분식집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급권자라 안 된다'는 답을 듣고 실망했다.
"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뭐를 만들어 놨다, 뭐를 만들어 놨다하는데, 가서 해 보면 문턱이 너무 높은 거야. 가게를 내기 위한 자금을 대출을 해 준다기에 갔어요. 가보니까 연대 보증을 두 사람 세우라는 거야. 우리 같은 수급자한테 연대 보증을 누가 서 줘요? 그게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 준다는 거면 자기네들이 보증을 서 주던가. 연대 보증만 세우면 되냐고 물었더니 또 등본 가지고 오래요. 그래서 가지고 갔더니 수급자는 안 된다는 거야."
"현실이 안 따라주니까, 희망이 없다, 그런 말 하는 것"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세상'이라며 가슴을 치기도, 분노하기도 한 그에게 정말 희망이 없냐고 물었다. '너무 칙칙한 얘기만 했나 보네.'라며 웃는 그에게 우스운 질문이었나 보다.
" 얼른 얼른 돈 벌어서 예쁜 집도 갖고 싶고, 우리 딸내미 예쁜 집에서 살게 해 주고 싶고. 꿈이야 많죠. 근데 현실이 안 따라주니까 희망이 없다,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좌절도 안 해요, 무덤덤하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감사하게 살아요."
힘겨운 삶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부조리함에 분노할 줄 아는 정순 씨. "우리 같이 없는 놈 열 명이 가서 백 마디를 지껄이는 것보다 있는 놈이 가서 한 마디를 지껄이는 게 먹힌다니까. 그 사람들 데려다가 석 달 열흘 굶겨봤으면 좋겠다는 말 꼭 써주세요. 허허."
흔히 재개발에 대한 관심은 철거 시점까지만 그치고 만다. 그러나 오늘 정순 씨는 재개발이 얼마나 오랫동안, 원 주민들을 더욱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했다. 지금도 여전히 서울 곳곳에서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난곡 재개발 문제는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니다.
달동네가 사라지고 도시 겉면은 화려해지고 있다. 그러나 열악해진 삶의 조건은 지하방 구석구석으로 숨어들고 있다. 재개발이 변화시킨 원 주민의 삶은 지금 재개발에 직면한 이들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재개발은 그저 새 아파트를 짓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빼앗는 폭력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