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적 같은 일어났다. 푸시업에 성공했다. 그것도 열 번이나.

처음에 팔굽혀 펴기를 시도했을 때는 웃기지도 않았다. 그냥 폭삭 주저앉았다.
그래서 무릎 아래로는 그냥 땅에다 대고 상체만 조금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래도 죽을 맛이었다.

가끔씩 하다가 말다가 했는데.
요즘 가을 날씨가 도래함에 따라 식욕이 동했는지 또 과식주의보가 내리는 바람에.
그래서 며칠 전부터 좀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글쎄 오늘 글쎄 진짜 팔굽혀 펴기를 한 것이다.
흥분해서 삼돌이한테도 시범을 보였는데 코멘트가 뭐, "굽힐려면 확실하게 굽혀야지".
이런 식으로 시시하다.

이거 하는 데 몇 달이 걸렸구만은 노력을 몰라줘도 정말 몰라주는군.

사실 팔굽혀펴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고 며칠 전에 하진의 뒷이야기를 쓴 이래로 안방 책꽂이에 가서 하진 섹션을 살펴봤다. 안 읽고 사두기만 한 단편집이 눈에 띄어서 목차를 보니까 "미스 지"라는 아주 캐치한 제목이 가운데 등장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스 지는 19살 고아인 중공군 군인 지준의 별명이다. 피와 목숨을 다 바쳐 러시아 제국주의자들에게서 조국을 지키겠다는 철저한 애국 공산주의자 지준은 그 굳은 신념에도 불구하고 영 신체적으로 군바리 노릇하는데 결함이 많다. 

비상 점호에 바지 앞뒤를 거꾸로 입고 신고를 하지를 않나, 수류탄을 던진다고 코 앞에 떨어드려 죽을 뻔 하지를 않나, 식당 국수 통 엎지른데 빠져 옷을 다 적시지를 않나, 남 먹는만큼 안 먹고 행군 나갔다가 기절을 안 하나, 술 시합 내기를 했다가 맛이 가서 응급실로 실려가지를 않나.  혁명적 지준의 인생이 군바리로서는 쑤나미급 재난이다.

심심한 동료 군바리들은 지준을 미스 지라 명명하고는 그의 사건사고를 기록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낸다.

미스 지 국경을 순찰했네
바지 지퍼 새로 엉덩이 내보이며

미스 지 수류탄을 던졌네
얼굴만 새로 곱게 단장하려고

미스 지 국수에 넋이 나가
단숨에 국수 솥 안으로 잠수를 했네

미스 지, 소식가
전투 중에는 밀빵 하나에 울었지

미스 지 고래처럼 폭음을 했지만
여전히 사내임을 증명하지를 못했네


겨우 열아홉의 혁명전사가 참 불쌍하게도 됐다.  단편 자체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읽었는데 읽고 나니 대학 동기 하나가 생각이 났다. 지준 만큼이나 열혈적인  혁명전사 후보였다. 그러고보니 나이도 소설 속의 지준과 비슷하군.  지준처럼 빼빼 마르고 눈이 번쩍번쩍 하는 이였다. 혁명, 계급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흥분한 어조에 경상도 사투리가 더해져  내용이 열배는 덩달아 과격하게 들리곤 했다.

우리 대다수는 농활을 대략 일해야 술마실 수 있는 엠티 정도로 이해했지만, 그 친구는 분명 농활이 현장학습의 기회라고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충청도에 도착해서 마을 회관 앞에선가 이장님 집 앞 마당에선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무슨 기억도 안나는 진짜 시시한 게임을 했다.  불행히도 자꾸만 그 친구가 걸렸다. 우리는 재미있어서 그 때마다 깔깔거렸다. 한 열번쯤 걸렸을까 그 친구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일어나 뛰어나갔다.

아아 우리의 소심한 열혈 전사여.
기껏해야 한 살 많은 선배들은 상황 수습한다고 덩달아 뛰어나가고.

그 외에도 보신탕 먹는 문제와 반바지 착용 문제로 침 튀는 이념 논쟁을 벌이는 등 그 해 농활에선 참 재미있는 일이 많았었다.

그 친구는 마지막 봤을 때 무슨 노동문제 연구소던가 하는 데서 실무적인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려서는 좀 쪼잔했지만 나는 그 친구의 열받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날좋은 따스한 봄날 산업혁명과 노동운동 강의시간에 꾸벅꾸벅 강의실에서 조는 나를 사정없이 볼펜심으로 찔러대던 그 얄미움을 잊지 못하겠다. 아이구 강의도 꼭 그렇게 혁명적으로 들어야 하냐.  혁명도 좀 살살 해야지.

육백원하던 사식당 짜장면 생각이 그리워진다.
방금 푸시업 했는데 먹으면 안되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8-23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3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