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난곡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이들을 몇 알았었다. 나는 게을러빠져서 가끔씩 놀러만 갔지만 헌신적인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의 한 선배는 강남에서 곱게 자랐지만 야무지고 깡다구가 있는 멋진 여인네였다. 아이들 다루는 재주가 가히 뛰어나 유아원을 차렸으면 재벌이 될 만 했다. 하지만 유아원 재벌이 되는 대신에 선배는 난곡 달동네에서 아기방을 운영하는데 헌신했다. 노가다만 한솥이고 활동가들 사이에 내놓아도 폼도 별로 안 서는 그런 일이었다.

애기들만 보면 기가 죽어서 설설 기어다니는 나는 그 선배가 대장인 아기방에 가서 대타로 애들도 얼러주고 놀아주고 하는 일을 하루 했다. 아이들은 선배가 짠  활동계획에 따라 여러가지 공부 겸 놀이를 하고 놀다가 선배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드디어 아기방 활동가들이 한숨 돌리는 낮잠 시간이 왔다.

나는 아기들 옆에 누워서 자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아기들이 프랑크푸르트 쏘세지를 점심으로 먹는다고 부러워했다.
정말이다.
나는 참 유치찬란했다.
그  쏘세지가 나온 점심을 강남에서 곱게 자란 선배가 아기방을 운영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기방을 운영했으면 도대체 아기들에게 뭘 먹였을까?
콩나물? 된장국? 소금 찍은 삶은 달걀?
쏘세지에 투사된 나의 열등의식!

동네서점에서 재고로 파는 걸 사온 조이스 캐롤 오츠의 에세이집에는 남편 테드 휴즈의 편집삭제 없이 새로 원문 그대로 출판된 실비아 플라쓰의 일기에 대해 그녀가 논평한 글이 있다.

거기서 오츠는 플라쓰에 대해 말하기를,  "조숙함이 성숙함은 아니다."

오금이 다 저렸다.





낮잠을 다 자고 난 애들은 더욱 에너지가 넘쳐서 용수철처럼 튀어오르고 작은 사자들 마냥 이모 삼촌들의 무릎을 잡아당겼다.  시끄럽기는 또 얼마나 시끄러운지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한참 놀아주고 있는데, 아니 놀아주고 있다기보다는 놀음을 당하고 있는데, 아기 중의 한 명이 내 양말을 보더니 이렇게 코멘트를 하는 게 아닌가.

"에, 이모 양말이 온통 씨꺼매, 얼레리 꼴레리"

비오는 날 검은 신발에서 물이 빠졌는지 내 보라색 양말 바닥은 정말 시꺼멓게 발가락 있는 데가 물이 들어 있었다.

아니 이넘의 자식이 쪼만한 게 오늘 첨 보는 이모 쪽팔리게 하는 말은 쏙쏙 잘도 골라서 한다.

갑자기 얼마나 내 초라한 양말에 온통 신경이 쏠린 나는 다른 데 구멍이라도 혹여 없는지 재빨리 확인하고 얼른 발바닥을 장판에 딱 붙여 양말 바닥을  안 보이게 했다.
그리곤  말까지 더듬어가며 변명을 했다.
비가 오는 날 검정 신발을 신으면 양말에 물이 들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얼굴도 시뻘갰을 게 분명하다.

오늘 온라인 신문에 난 난곡 관련 기사를 읽다가 그 옛생각이 났다.
왠지 그렇게 내게 톡톡한 창피를 준 그 아기의 씩씩함이 자꾸 떠오른다.
남의 양말 검은 걸 검다고 할 줄 아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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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3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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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4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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