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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eway (Paperback)
Frederik Pohl / Del Rey / 2004년 10월
평점 :
프레드릭 폴의 1977년작인 이 소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심란하다. 책 표지만 보면 인간들보다 훨씬 우월한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룩한 외계인, 히치들의 유적에 남겨진 우주선을 타고 미답사된 우주를 모험한다는 내용으로 그야말로 박진감이 넘친다 싶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런 기대는 금새 증발하고 만다.
연도가 딱히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히 미래로 설정된 소설 속의 인간들은 현재의 인간들만큼이나 고단하게 살아간다. 주인공 로비넷 브로드헤드는 별볼일 없는 식품광산 광부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식품광산의 광부로 막장인생을 살아간다. 식품광산의 광부 일이란 뭔가 조금만 잘못 되어도 자칫 굴에 갇혀 죽기 십상인 위험천만한 직종. 월급도 쥐꼬리만해서 미래라곤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운좋게 복권에 당첨된 브로드헤드. 무난하게 살면 가족을 꾸리고 배곯지 않고 평생 살 수 있을 만한 돈이지만, 출구 없는 인생이 답답하기만 한 젊은이인 그는 즉시 당첨금을 탈탈 털어 게이트웨이로 가는 표를 산다. 게이트웨이는 히치들이 오십만 년 전에 남겨둔 유적으로 일종의 우주정거장. 우주정거장엔 수백척의 히치 우주선들이 남겨져 있다. 게이트웨이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히치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우주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히치 유물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럴 듯 하지만 실은 상당히 중대한 문제가 있다.
아무도 히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사실. 나아가 아무도 히치 우주선의 작동원리를 모른다는 사실. 과학자들이 기껏 발견해낸 것이라고는 어떻게 히치 우주선에 전원을 넣고 끄는지 작동 버튼을 누르는 지가 고작이다. 우주선의 원료가 뭔지, 우주선의 항해 시스템이 무언지, 출발 버튼을 누르면 우주선은 어디로 가는지, 항해는 얼마나 걸릴지, 항해 중엔 어떻게 항로를 조정하는지 같은 것도 전부 그러니까 써프라이즈다. 서점에선 전체가 빈 종이로 채워진 <히치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라는 책이 판매대에 어엿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운이 좋아서 우주선이 도착한 곳에서 히치 유물이라도 하나 찾아서 돌아온다면 평생 편히 먹고 낡은 장기도 때 되면 갈 수 있는 총체적 의료보험도 구입해 150년쯤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가 전혀 계산불가능이라는 것이 문제다.
용감무쌍하게 목숨을 걸고 인생의 운을 시험하러 왔지만 러시아룰렛이나 다름없는 이 모험 앞에서 송장마냥 얼어붇는 브로드헤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는 5인용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간다. 우주선 안은 식량과 탐사장비와 사람으로 가득차서 발붙일 틈조차 없고 식량의 반쯤이 소모될 쯤까지도 우주선이 멈추지 않자 우주선 안은 긴장과 적의와 불안으로 가득 찬다. 항해 시간에 따라서 오 인 중의 한두명이 희생되어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건한 정체불명의 특수 금속으로 만들어진 히치 우주선은 행선지가 불타는 태양 위건 막 생성된 위험천만의 태양계건 폭발하거나 산산조각이 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출발지인 게이트웨이로 돌아간다. 우주선 속의 인간들이야 살아 있건 말건 간에.
우주선이 드디어 행선지에 도착하고 남은 식량으로 볼 때 뽑기를 해서 누군가 자살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브로드헤드와 동승한 다른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그것도 잠시 뿐. 눈을 씻고 주변을 탐사해봐도 히치 유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 목숨을 내걸고 작동원리도 전혀 알 수 없는 외계인 우주선을 타고 몇 달을 고생하며 간신히 행선지에 도착했건만 보물이라곤 찾을 수 없다. 돌아가는 길은 살아서 도착하리라는 위안을 빼면 오던 길보다도 더 비참하고, 돌아가면 다시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을 떠나야 한다.
브로드헤드는 두번째 여행에서도 살아 돌아오지만 그건 어이없이 짧고 보물 따위는 찾을 수 없는 종류였다. 게다가 성질머리 때문에 값을 따질 수 없는 일인용 히치 우주선마저 완전히 고장을 내버리는 바람에 그는 땡전 한푼 없는 신세에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신세로 전락한다.
될대로 되라는 심사가 된 브로드헤드는 거액의 급료가 지급되는 위험천만한 과학답사여행에 자원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살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상당한 보상액을 받을 수 있는 여행이지만 도착한 행선지는 그 누구도 살아 나올 수 없는 블랙홀.
이 정도 되면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지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실망이라는 블랙홀이 가득찬 우주 같다. 위안이라고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떠나서 도착하는 곳은 또다른 실망이 기다리는 친숙한 절망의 나락 뿐이다.
과학답사여행에 파견된 우주선은 두 척. 승무원 중 과학에 빠삭한 한 이가 묘안을 낸다. 어짜피 살아 나가기는 틀렸으니 모험을 해보자는 것. 두 척 중의 한 척에 전부 올라타고 다른 한 척에 각 우주선에 한 대씩 붙은 착륙선을 둘 다 부착해 가속시키면 두 우주선 중 하나는 블랙홀을 향해 돌진하고 그 반사력으로 다른 우주선은 블랙홀을 탈출하기에 충분한 속력을 얻지 않겠냐는 아이디어다.
이론은 좋지만, 문제는 어느 우주선이 블랙홀로 떨어지고 어느 우주선이 블랙홀을 탈출할 것이냐는 걸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 선택은 다시 한 번 눈먼 뽑기가 된다.
준비를 마치고 두 우주선에 타고온 승무원들이 전부 한 우주선으로 옮겨가는데, 인생이 지긋지긋한 브로드헤드는 혼자서 다른 우주선에 남는다. 우주선 중 하나에 함께 묶인 두 대의 착륙선에 가속도가 주어지고, 우주선 하나는 블랙홀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게이트웨이를 향해 되돌아간다. 브로드웨이가 몹시 사랑했다는 여자친구는 블랙홀로 한없이 천천히 떨어져간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에서는 시간이 거의 정지된 듯한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점점더 천천히 흐른다. 일 초가 일 년으로 다시 십 년으로 한없이 한없이 느려진다. 단신으로 답사여행에서 살아 돌아와 거액의 보상금을 홀로 움켜쥐고 안락하고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며 브로드헤드가 수 년의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에도 그래서 우주 저 끝 블랙홀에서는 그의 생존의 대가로 블랙홀에 남겨진 그의 여자친구와 동승했던 승무원들이 여전히 한없이 천천히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그들에게 시간은 아직도 그들이 블랙홀에 도착한 이래 겨우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
내가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직도 나는 그들을 죽이고 있다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브로드헤드는 그의 정신분석 전문의 로봇, 지그프리드를 향해 외친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이건 사는 게 아니라고.
그런 고통 같은 것을 로봇인 자신은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월등한 인공지능의 소유자, 로봇 지그프리드는 이렇게 답한다. 바로 그것이 삶이라고. 그리고 로봇인 자신은 결코 완전히 경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지그프리드 자신은 그 인생을 매우 부러워한다고.
어떻게 보면 일확천금이지만 사실은 복권 한 장으로 인생을 불살라버린 거나 마찬가지가 된 브로드헤드의 지루하고 서글픈 모험을 그린 이 작품은 단연 특별한 종류의 공상과학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