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아들놈... 지금 한창 시험을 보고 있겠다. 오늘 기말고사란다.


엄마가 이제 전업주부의 대열에 들어선 바, 시험이라는데 아들놈 공부 좀 시켜봐야겠다 싶어서 아이를 불렀다.


야, 솔직히 말해서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네 과목 다 하기는 좀 어렵고, 딱 하나만 찍어라. 그거 문제집 사줄께.


했더니 과학문제집을 고른다. 그래서 과학공부를 하기로 했다.


첫단원, 식물의 잎과 줄기... 잎이 나는 모양에 따라 마주나기 뭉쳐나기 어긋나기 뭐 어쩌고 하더니 패랭이꽃은 마주나기고 민들레는 뭉쳐나기고... 뭐라고 한참 외운다. 그러다 묻는다.


아들 : 엄마, 내가 패랭이꽃을 알아? 어떻게 생겼어?


엄마 : 그거? 음... 잠깐만, 우리 식물도감 찾아보자... 아, 이거란다. 야, 이거 이쁘다. 카네이션같이 생겼네?


아들 : 엄마, 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건 마주나기야. 그걸 봐야지.


엄마 : 어? 아, 그렇구나. 어, 진짜 이런 게 마주나기네?


아들 : 엄마, 시골에서 보면 칡이 그냥 쭉 산 타고 올라갔던데, 왜 칡하고 담쟁이하고 따로 분류해?


엄마 : (긴장)응? 뭔 소리야?


아들 : 칡하고 나팔꽃은 다른 식물을 타고 올라가고, 담쟁이랑 오이는 붙어서 올라간다는데?


엄마 : (얼버무리며)그게 그거지, 뭐.


아들 : 아니야, 서로 다르대.


엄마 : 그래? 나중에 아빠 오면 물어보자. 아빠는 시골에서 자라셨으니까 잘 아실 거야. 엄만 잘 모르니까 다른 거 해, 다른 거. 야, 지구와 달. 이거 엄마한테 물어 봐. 엄마가 또 한때는 밤하늘을 보면서 천문학도를 꿈꿨잖냐.


아들 : 정말? 나 거기 진짜 잘 모르는데... 엄마, 계절이 왜 생겨? 지구가 자전을 하는 것도 알고, 공전을 하는 것도 알거든? 그런데 왜 밤낮의 길이가 달라져? 그리고, 지구-달-태양 이 순서로 서면 달이 삭 이고, 달-지구-태양 순서로 서면 보름달이지? 그런데 그럼 왜 맨날 일식 월식 이런 게 안 일어나? 엄마 그리고, 달이 왜 맨날 50분씩 늦게 떠?


엄마 : (헉)잠깐!!! 그런 거 배워?


아들 : 응, 그런데 왜 그러는지는 안 나와있어. 그냥 그렇다고만 나와있어.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지식을 총 동원하여(난 지구과학 시험도 안봐서 거의 지식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는 23도 기울고 뭐는 5도 기울고 또 뭐는 13도씩 차이가 나고... 그러다 지구본을 들고 날짜변경선을 설명하고, 그러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이야기가 나오고, 또 그러나 남극과 북극 이야기가 나오고, 빙하 이야기가 나오고, 환경문제가 나오다가 영화 투모루우가 나오고...


그랬더니 시험날이 되었다.


결국... 5단원까지 시험보는데 3단원 하나도 다 못하고 갔다. 엄마탓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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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2-0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경악임다. 애 키우는거 갈수록 어렵군요....그나저나 님은 뭐 23도, 5도 이런 걸 다 기억하고 계신단 말임까..^^

호랑녀 2004-12-0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한때는 천문학도를 꿈꿨다니까요....그런데 진짜 가물가물하고 생각이 안 나더만요. 머릿속으로는 아는 것 같은데 입으로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로드무비 2004-12-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정도만 해도 님을 억수로 존경합니다.

일곱 살짜리 수학 덧셈 문제도 헷갈리는 저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숨은아이 2004-12-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집 풀면서 달달 외게 시키신 것보다 그렇게 해주시는 게 더 좋아요. 백배는 더 좋아요.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잘 알았을 거예요.

깍두기 2004-12-0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성적 하나도 안 중요하니 너무 걱정 마시고...^^

반딧불,, 2004-12-0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셨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확신하옵니다.

그런 것들은요..실은 과학도감보다 좀 길고, 힘들지만 전집으로 접해주는 것이 좋을거에요. 과학동화 말이에요. 거기에는 그냥 편하게 나와 있거든요.



그리고, 이런저런 아이들 책 읽으며 제가 참 많이 배우는 듯 해요.

예전에 요만큼만 했으면 정말정말 공부 잘했을텐데 했답니다ㅠㅠㅠ

진/우맘 2004-12-0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질문에서 배후에 진을 친 넓디 넓은 사고가 엿보여요. 대성하겠네, 고 놈.^^

진/우맘 2004-12-0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호랑녀님! 이거, 눈물을 가장한 아들 자랑이죠!!!!!^^

호랑녀 2004-12-0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달은 하루에 50분씩 늦게 뜬다! 딱 이거만 알면 되는 게 3학년 과학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왜? 를 붙이면 거기서부터는... 거의 중학교3학년까지 진도 나가야 하더라구요.

뭐 당장은 시험 못봐도 괜찮다... 애써 위안하면서도 그래도 시험 보고 성적 나오면 무지 기분 나빠지더만요. 그리고 시험이란 거는 어쨌든 잘 봐야 한다, 좋은 점수 맞아놓고 봐야 한다(나쁜 짓만 안 한다면) 이런 교육도 필요할텐데... 싶기도 하구요. 뭐... 우리나라에서 살아야 하니까...


아영엄마 2004-12-0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요즘은 정말 엄마가 공부를 해야 하는군요.. 우리 아그도 내년에 3학년이 되는디 걱정이다... 제가 믿는 것 인터넷 검색뿐이어요..@@;

sooninara 2004-12-0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안되는데..왜이리 웃긴지...정말 호랑녀님은 좋은엄마세요..

대부분.."그거 지금 몰라도 되..빨리 외워서 문제 풀어" 할텐데요..^^

세실 2004-12-0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가 어려운 질문하면 '그냥 외워' 할텐데...대단하시네요.

과목별로 찍는거 보다는 총정리 문제집 한권말 풀어도 될텐데요....1주일이면 똑 떨어지던데...

비로그인 2004-12-1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이 하루에 50분씩 늦게 떠요? 헉... 난 왜 몰랐지..;; 배운 기억도 전혀 없고. -_-;;

호랑녀 2004-12-1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는 50분씩 늦게 뜬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48분 48초씩 늦게 뜬다나봐요... 아이 시험 결과가 좀 충격적이어서... 이런 식의 공부는 아니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ㅠㅠ 아영엄마님, 저처럼 공부시키지 마세요. 당장 시험 결과는 암흑이여요...

가을산 2004-12-22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는 우리 애 어렸을 때, 문제집 풀다가 너무 어렵다 싶은게 나오면 " 이런거 몰라도 돼! 나오면 까짓거 틀려버려!" 그러기도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