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정부에서는 비정규직 대책안을 내놓았다.

일당 33,360원짜리 비정규직 노동자인 나는, 첫 번째로 언급되었던 각급학교 영양사 사서 직군에 속했기 때문에 눈이 동그래졌다.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해 있긴 하지만, 실제로 교육부 앞에 가서 데모 한 번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왠 떡~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니 개악이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다른 직군, 그러니까 영양사나 과학보조, 교무보조, 위탁집배원 등등의 일은 잘 모르겠다.)

길게 쓰면 아무도 안 읽어줄 것 같으니 간단히 얘기해보자. 길게 얘기하라면 3박4일이라도 얘기할 수 있지만 -.-;;

 

5월 19일 정부 대책안의 핵심은 처우 개선신분 안정 이었다.

 

처우가 개선되었을까.

 

당장 7월부터 동종 근무자 연봉의 84%를 월급으로 계산해 주겠다고 했다. 매년 4%씩 올려주겠단다. 그러면서 내세운 동종의 근무자는 공공도서관의 9급 사서였다.
(현재 학교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사서교사가 2백여 명이 있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유령이다. 완전히 무시하고, 멀리 공공도서관에서 찾았다.)
어쨌든, 계산해보니, 토요일과 방학 중에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올해는 오른 게 없다. 오히려, 그동안엔 일용직이라 세금은 안냈는데, 월급으로 받으면 세금을 뗄 것이니, 깎일지도 모른다. 매년 임금을 조금씩 올려주었던 것까지 감안한다면, 손해다.

 

그럼 신분이라도 안정되었을까.

 

교육부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일용직 사서가 1,051명이란다(비정규직 노조에 의하면 그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을 그대로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는 없고, 그냥 그 숫자만큼 공무원 티오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니 임용시험을 봐야 한다. (몇 년 동안,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던 40이 넘은 아줌마들은 아마 연령제한에 걸려 응시도 못할 것이다.)

그럼 일거에 1,051명의 비정규직은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일까.

교육부 관계자는 아니라고, 점진적으로 티오를 늘려가는 것이므로 당장 쫓겨나는 것은 아니란다. 후훗. 그럼 사서가 발령받아 오는 학교의 일용직은 쫓겨나는 것이고, 발령이 안 나온 학교의 일용직은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2월에 재계약을 하던 것보다 더 나빠졌다. 개학 1주일 전에야 내가 계속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분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다.

 

학교도서관에 배치하려고 하는 사서가 사서교사가 아니라 행정직 사서인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의도가 불순한 건 아닌가 의!심!한다.

 

어차피 없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사서교사 자리를 만드나 행정직 자리를 만드나 어려움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럼 왜 행정직일까. 행정직 숫자를 늘림으로써 관리직 숫자를 자연스럽게 늘리기 위함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갈 자리를 늘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너무 속아만 살아왔나...ㅠㅠ

 

지금 시행되고 있는 7차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수준별 학습, 학생 중심의 자기주도적 학습(정말 훌륭한 말이다)을 하게 되어 있다.

허, 그러면서 학교도서관에 교사가 없어도 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하긴, 제대로 된 학교도서관이라는 것을 도대체 본 적이나 있었어야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금 발표된 것이 정말 처우 개선과 신분 안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발표했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몇몇의 사례를 가지고 기자라는 직종, 의사라는 직종, 검사라는 직종, 정치인이라는 직종을 몰아붙이는 것은 정말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이 대책을 발표한 공무원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정부를 믿어야 할 것인가. 조용히 살면서 세금이나 꼬박꼬박 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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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4-06-1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현 정부의 탄생에 저도 기여를 했거든요.

호랑녀 2004-06-1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기여를 했답니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상황을 알고 다시 투표하라고 해도, 또 기여를 할 것 같습니다. 윗분이야 뭘 알겠습니까. 고 아래 정책을 생각해내는 그 공무원!들이 문제라니까요.
(남편 <- 공무원, 미안해. 그 공무원만 얘기하는 거야.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야근수당도 못받는 당신 얘기하는 거 아냐.)

조선인 2004-06-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역시 현장의 눈은 다르군요. 언니가 아니었으면 이런 현실을 몰랐을 것이기에 감사의 추천 날립니다.

진/우맘 2004-06-1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어...참, 내.

starrysky 2004-06-1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는군요. 도대체 실태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의 대책안이라니, 누가 일을 그따위로 하는 겁니까?? 어후, 정말 열받네요. 지금까지는 데모 한번 안 해보셨다고 했는데, 앞으로는 다들 목소리를 좀더 높여서 단결투쟁해야 해요!!! 아악, 나쁜 놈들!!! -_-+++

호랑녀 2004-06-17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비겁하고, 늘 조용한 걸 추구하는... 우아하게 살고싶은 사람입니다. ^^ (사서들이 대체로 그래서 데모를 잘 못하고, 해봐야 쳐다보지도 않는답니다 ㅠㅠ)
그런데 왜 늘 제 주변에서 저를 투사로! 만들려고 이렇게 노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숨은아이 2004-06-17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셔서 왔는데, 학교 사서 선생님이셨군요. 노무사인 제 남편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발표를 보고,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문제는 현장에서 정책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현장의 요구에 따라 개선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밖에서 시끄럽게 떠드니까 위에선 대책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지시받은 공무원들이 탁상에서 쓱싹쓱싹 대충...

호랑녀 2004-06-1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숨은아이님, 좋은 서재를 알게 되어서 참 좋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현장의 목소리... 사실은 낸답니다. 사서들의 경우(그나마 제일 조직이 작고 목소리도 작다고 하는데),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노조에서 안을 만들고, 매월 광화문에 가서 구호도 외치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깡그리 무시하고 자기들 맘대로랍니다. 협상을 하시는 분들이, 만나면 거의 얘기도 안 들어둔다고 하시더라구요.
다만 사서들의 경우엔, 사서교사가 먼저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먼저냐...그것 때문에 내분이 좀 있습니다 ㅠㅠ

숨은아이 2004-06-1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말이 그 말씀입니다.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도록 면피만 한다는.../아, 그리고 사서교사가 먼저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먼저냐는 건 어떤 문제인지요?

호랑녀 2004-06-1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읽어보니 그렇군요 ^^ 제가 독해에 좀 문제가 있어서....ㅠㅠ
사서교사냐 사서냐... 긴 설명이 필요한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와 협상할 때, 그 티오를 사서교사로 할 것이냐 행정직 사서로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서교사로 하면, 지금 현장에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사서들이 교사자격증이 없어서 내몰릴 위기구요, 그냥 행정직 사서로 하자고 하면, 교사가 아니라 행정실 직원이 되는 거지요.
그럼, 도서실 수업을 진행할 때 그냥 보조만 해야 할 것이고, 도서반 학생들을 꾸려서 운영하는 것도 어렵고... 이런 교육적인 측면이 무시되겠지요. (교사와 행정실 직원간의 대접도 다르구요.)
제 맘대로만 된다면, 그동안 비정규직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간단한 연수를 통해서 교사자격을 주었음 좋겠는데, 그래서 사서교사로 티오가 났음 좋겠는데, 그런 건 요구하기도 어렵다네요 ㅠㅠ 제가 협상당사자가 아니니 분위기도 모르고...

숨은아이 2004-06-1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문제겠네요. 꼭 그렇게 교사냐 행정직이냐 갈라야 하나... 사서의 독특한 위치를 감안해서 제3의 대우를 해주면 안 되나... 왜 꼭 기존의 틀에만 맞춰야 하는지...

호랑녀 2004-06-1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세상일이 쉬우면... 그만큼 재미가 없을 거예요..
숨은아이님,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