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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히 지음, 심성보 옮김 / 미토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Ⅰ. 우선, 몇 가지 용어들의 의미를 분명히 해보자.
첫째, 일리히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학교는 “특정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의무적인 커리큘럼에 풀타임 출석을 요구하는 교사가 관계하고 있는 과정”, 곧 현재의 제도화된 학교를 의미한다.
둘째,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脫학교(deschooling)”의 의미는 학교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단일종파에 의한 종교의 독점이 폐지됐던 것처럼, 학교에 의한 교육독점을 폐지하자는 것, 곧, 미국에서 교회가 탈(脫)국가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 역시 국가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학교의 탈국가화” 주장이다. 이는 학교에 독점적으로 공공재원을 쏟아 부으며 낭비하지 않는 것이고, 교회나 학교에 출석하는 이들에게 어떤 사회적 특권을 주던 시스템을 없애는 일이다.
참고로, 이후에(1995) 일리히는 자신의 주장이 학교제도를 폐지하자는 오해를 사람들에게 불러 일으켰다고 하면서 자신의 긴급한 과제는 “교육을 무료로 즐기는 선물이나 서비스라기보다 강제된 의무사항으로 고착화시키는 흐름을 역전시키는 것”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그가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이 갖는 위험성이 학교를 폐지하고 학교 밖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는데 있다고 지적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학교의 안이든 밖이든 그가 문제 삼는 것은 “교육이 전문가에 의해 감독되고, 학생은 완전히 도움을 받는 수동의 형태로 취급되는 교육”에 있다(이반 일리히, 1997:171).
Ⅱ. 그에게 “강제된 의무사항으로 고착화된 교육”이 지배적인 “학교화된 사회”는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자신의 인생지도, 세계관 형성, 합법성과 비합법성의 구분 등을 학교라는 제도에 의존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병원이라는 제도적 기관에서 치료받지 않고, 개인 스스로 치료하는 행위를 무책임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여, 병원에 치료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처럼, 학교에 가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 여기게 하여, 학교가 배움을 제공하는 하나의 특권화된 곳이라 여기게 한다. 이러한 제도에 대한 의존(특히, 학교)이 문제인 이유는, “한번 학교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은 학교 이외의 제도의 필요성도 쉽사리 받아들이게 된다. 젊은 사람이 일단 스스로의 상상력을 커리큘럼에 따른 교수활동에 의해서 형성하는 데 버릇이 들게되면 그들은 어떠한 유형의 제도적 계획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된다. 그들은 ‘교수’받음으로 해서 상상력의 발전이 억제된다.......이와 같이 책임을 자신으로부터 제도에 전가해버리게 되면 사회는 틀림없이 퇴보해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의무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둘째, 특권화된 학교가 수행하는 3중의 기능이다. 곧, “학교화된 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적 신화(소비화, 물신화)의 저장소의 기능, 그 신화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제도화하는 일, 그리고 그 신화와 현실간의 차이를 재생산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의례의 장소로 기여한다는 것이다.
셋째, 학교에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빈민층의 교육은 개선되지 못하고, 특정한 아이들에게만 공적자금이 사용된다. 곧, 학교에서 혜택을 받는 이들은 그 혜택을 누릴 준비와 조건이 갖추어진 부유한 아이들이다. 그는 이를 공적자금으로 건설된 고속도로의 혜택이 결국 자동차를 지닌 이들에게만 돌아가지, 자동차를 부릴 여유가 없는 이들에겐 거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 본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학업성적을 개선시키기 위해 투여되는 비용이 불충분하며, 투여된 자금 역시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어 빈곤층을 위해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층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학교)제도의 혜택이 아닌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자금이라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보기에 교육상의 불리함은 현재의 학교 내 교육에 의존해서는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위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을 학교로 끌어들이는 기제가 필요한데, 그 대표적인 것이 다음의 두 가지이다. 우선, 학교가 학업성취(자격)의 공인기구로 기능하면서, 개인의 자격(능력)과 (학교)이력(履歷)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할당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한 방안으로 일리히는 자격과 (학교)이력을 분리하기 위해 학력조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문제는 학업성취의 평가준거가 되는 교육과정(커리큘럼)인데, 그것이 다름 아닌 상품처럼 “패키지된 (지배)가치”라는데 있다. 곧, 현재의 패키지된 (지배)가치를 얼마나 잘 숙지했느냐가 곧 개인의 능력으로 환원된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학습은 학교수업(자격증을 지닌 교사의 가르침)의 결과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라는 신화의 조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은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고, 의도적 학습의 상당부분도 계획적 교육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
다섯째, 이러한 사회에서 학교는 기능(skill)교육에도 무능하고,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에도 무능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곧, “교육” 기능의 상실이다.
Ⅲ. 그렇다면, 일리히가 말하는 제도의존적인 삶에서 벗어난 “脫학교 사회(deschooling society)”가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일리히에게 이는 “공생(혹은 상호친화적, conviviality)”의 제도, 곧 자율적이며 창조적인 교류가 가능하고, 개인의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이다. 좀더 덧붙이면, 이 사회에서 가능한 학교를 대치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대안은 모든 사람들에게 현재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동일한 학습의욕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그 기회를 동등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 네트워크나 서비스를 갖는 것이며, “탈학교 사회”는 우발적인 교육이나 비공식적(informal) 교육에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훌륭한 교육제도는 1) 학습하고자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인생의 어느 때에도 학습에 필요한 수단이나 교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 2)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나누어가지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 그러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 3) 공중(公衆)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학습을 위한 네 가지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한데, 그것은 교육 목적 달성을 위해 참고자료를 서비스하는 것(도서관 등), 기능(skill)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교환소(일종의 역할 모델링) 설치, (학습활동을 위한)동료 맺어주기(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넓은 의미에서의 교육자에 대한 자료 서비스이다.
Ⅳ.
정리하자면, 현재의 제도화된 학교는 현 사회의 물신(物神)화, 소비화를 조장하며, 그것의 가치체계를 재생산하는 의례(儀禮)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이 계속해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개인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한데, 그 방안이 바로 “학교화된 사회”를 조장하여 그들로 하여금 학교의존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학교를 의무화하고, 그곳에 학력인정의 특권을 부여하여 학교가 사회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도록 한다. 이에, “학교이력(履歷)=개인능력”이란 공식이 조장되고, 개인들은 의례기관인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학교가 수행하는 3중의 기능에 따라 현 지배가치의 신화를 계속해서 내면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의례기관에서 어떤 기능(skills)의 효율적인 습득이나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 역시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를 떨쳐내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학교의존적인 삶에서 벗어나 교육제도를 새롭게 재편하는 일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일리히가 주장하는 “학교에서 벗어난 사회”이며, 학습을 위한 네 가지 네트워크를 통해 자유롭고 즐거운 배움이 존재하는 “공생의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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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학습이나 사회적 평등도 학교교육이라는 의례에 의해서 촉진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교육개혁을 시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 거기에서 어떤 것이 가르쳐질지라도 의무제의 공교육이 필연적으로 소비사회를 재생산한다는 것을 우선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소비자 사회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에 많은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빈민층의 교육은 개선되지 못하고, 특정한 아이들에게 공적자금이 사용된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이 “교육공공성”에 있다면, 과연 어떤 체제가 그것을 담보하기 좋은 조건인지는 한번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의 의견에 어떤 논쟁점을 제기하기보다는 일단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정리해 둔다. 200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