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준의 시사SF 연재가 끝났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아쉽다.



[한겨레21] 2004년09월23일 제5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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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2-21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람들의 몸매가 말해주듯, 한국에는 20의 수구꼴통이 80의 진보세력보다 뚱뚱한 나라인 것 같애요. 국보법 먹고 살찐 저놈이 조금씩 날씬해 지겠지만...^^

bildung 2004-12-2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살빠질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린듯 싶네요...^^
 
학교를 넘어선 학교 - 세상과 소통하는 학교, 메트스쿨 이야기
엘리엇 레빈 지음, 서울시대안교육센터 옮김 / 민들레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메트스쿨의 “목표는 모든 학생들이 평생학습자이자 선량한 시민이 되는 것”으로, 그 방법은 “한번에 한 아이씩(One kid at a Time)” 교육하는 데 있다. 그리고, “한번에 한 아이씩” 교육하기 위해, 학교는 작아야 한다. 이에, 대형 학교라면 ‘한 학교안의 여러 개 작은 학교’(이를 테면, 학교 하나를 네 개의 작은 학교로 나누는 형식)를 두는 것이 필요하며, 메트스쿨은 14명이 하나의 그룹이 되는 “어드바이저리advisory”와 “어드바이저advisor”라는 담임교사제를 운영한다. 이러한 작은 학교라야 진정한 배움인 학생개개인의 요구를 고려한 “맞춤식 교육(personalized education)”이 가능하다. 그 외, 학교구성원 사이의 관계형성과 상호작용에 유리하다는 등 작은 학교에 대한 여타의 이점들을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새로운 학교의 이념이나 지향하는 바가 제법 소개되었다면, 고민은 그것을 어떤 형식에 담을 것인가일텐데(참고로, 부록에서 조한혜정교수는 21세기의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아는 것 아닌가라고 하며 그것을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메트스쿨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드바이저리” 외 멘토를 활용한 “인턴쉽을 통해 배운다”는 것과 “공개 프리젠테이션”을 통한 평가의 방식들은 하나의 참조가 될 것이다. 실제 이 책을 옮긴 서울시대안교육센터에서는 메트스쿨의 이러한 방식들에 주목하여, 현재 실천에 옮기고 있다. 문제는 인턴쉽(인턴쉽의 목적은 특정 직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일반적인 능력을 익히게 하기 위함이다)을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적 인프라와 협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구축되어 있는가일 것이다. 사실, 학교와 사회의 벽을 허물고 인턴쉽의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것은 20세기 초엽의 교육개혁가들이 중요한 교육원리들로 삼았던 것이다.

3.
메크스쿨의 방법을 진보(주의)적 교육이라 보고, 이로 인해 제기되는 몇 가지 질문들에 메트스쿨이 어떻게 답하는지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우선, “‘이 학생은 사회적 사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에는 학생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 프로젝트나 워크숍이라해도 진행시켜야 한다”는 단서를 달긴 하지만, 메트스쿨의 방향은 “관심(interests)에 따라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러면서 학습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에 있다. 곧,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배우도록 함으로써, 배움은 즐거운 것이 되고, 삶도 고양되고, 평생학습자로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가르쳐야할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이 아이들의 “관심”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학습을 강조하는 학교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의 학습이 너무 협소해질 위험이 있다”는 일반적인 비판 역시 메트스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의 출발이 “아동으로부터”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교과로부터(배워야할 것)”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양자간의 접근은 아주 다른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는 듀이가 [아동과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논의한 바 있으니, 이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듯싶다.
둘째, 평가의 기준을 주(州) 정부에서 정해야 계층간의 학력차이를 줄일 수 있고, 교육 경쟁력 또한 올라간다는 의견에 대해, 메트스쿨은 주 단위로 치러지는 “시험제도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으며, 진정한 실력보다는 “시험 보는 실력”만을 향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모든 주 정부가 학생들이 훌륭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시민이 되길 바란다고 하지만, 주에서 제공하는 시험은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항을 학생들이 실제로 성취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각 학교가 나름대로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메트스쿨의 프리젠테이션과 포트폴리오를 통한 평가는 아주 뛰어난 방식”이다(그렇다고 매트스쿨이 주 정부의 표준화된 평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곧 “저소득층 출신 학생들이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매트스쿨은 그 자체로 결함이 많은 주 또는 국가기준에 따르기보다 자체 평가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공교육 현장에서 교육 불평등에 투쟁하는 대안적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진보적인 학교가 흔히 받는 비판중의 하나인 “교사가 학생의 학습을 충분히 지도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메트스쿨은 “학생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학습 재량권을 충분히 누리는 동시에 학교에서 필수로 지정한 부분은 반드시 학습해야하고 학기마다 열리는 공개 프리젠테이션에서 그에 대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메트스쿨은 이런 체제를 통해 학생을 지도하고 학생에게 책임도 지우면서 맞춤식 학습의 접근 방식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답한다. 학생들의 학습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졸업장 받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학생들이 평생 동안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대부분 박탈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라는 엘리엇 교장의 말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4.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지적하면, 우선 “기업논리를 매트스쿨에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기업재단의 지원금에 의존하고,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복제(전파)하려고 하는 것(나름대로, 기업논리는 아니라고 변론하긴 하지만), 둘째, 학교의 업무일정이나 고용을 자유롭게 하는 등의 특별 계약 조항 등의 제정을 위해 교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기로 한 것(“직원채용이 자유롭지 못한 기업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셋째, “대학 진학률 100%라는 성과는 메트스쿨이 무언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라는 말과 같은 학교의 성공을 대학진학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이다(이는 조한혜정교수도 부록의 글에서 얼핏 지적한 바 있다). 소위 대안학교 설명회나 강연회에서 가장 먼저 질문하고,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인 “ 그 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은 얼마나 되나요?”라는 말이 주는 씁쓸함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에게 대학진학이 사회적 이동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부분 동의할 수 있겠으나(이 역시 하나의 신화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성공한 학교의 조건은 아니란 생각이다. 
끝으로, 이 학교를 비롯한 새로운 학교들에서 시도된 여러 가지 방식들이 옳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복제하며 확장하려 들거나, 정책적으로 끌어들여 강제하기보다는 학교구성원들이 각자 서있는 조건에서, 다양한 실험과 실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학교 운영의 융통성을 트여주는 것이 우리에겐 우선 필요한 것이 아닌가한다. 큰 그림(Big picture)은 위에서 그려주고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그리며 확산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왜 이리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는지. 모를일이다.<200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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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치는 매우 보수적인 이념적 범위 안에서 기존의 정치행태를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치계급(political class)의 쟁투장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말았다."  "이들 사이의 쟁투가 한국사회의 중심적 문제를 둘러싼 이념적,정책적 함의를 갖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누가보더라도 그것은 국가권력의 장악 그 자체에 몰두하는, 사회의 근본적 이슈와 괴리된 권력투쟁 이상은 아니다."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은 전국화,사회화되지 못하고 배제된 채 정당간 경쟁은 권력획득을 둘러싼 생사투쟁처럼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정치 엘리트들간에 보이지 않는 이익의 공모가 존재한다."

여기서 정치계급은 "대의민주주의하에서도 당원과 지지자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통치하는 소수 정치 엘리트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정치사회학자 모스카(G.Mosca)가 사용한 개념이라 한다.

"한 사회가 이념적으로 자유롭지 못할 때, 냉전반공주의가 여전히 지배적인 정치언어로 기능하고 있을 때, 민주주의는 그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합의 형성의 기제가 되기는커녕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사회의 기득구조와 특권체제를 정당화는 정치적 기제에 머무르게 된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내용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퇴보하게 된 원인을 들라면 나는 민주화 이후 15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전반공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으로 지속되고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제에서 보수독점의 정치구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냉전반공주의가 지배하는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결과는 무수히 많다. 직접적으로 그것은 서민과 노동계급의 이익 및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지속시킨다."  "따라서 노동의 이익과 관점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곧 한 사회가 사회통합, 사회복지, 정의의 실현 등의 공공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경쟁적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세력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혁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득권 세력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제나 민주화에 격렬하게 저항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문제는 변화에 저항하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민주 세력이 보여준 무능력에 있다."

"민주주의의 정치적 틀에 조응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없다면 한 사회에서 시장의 부정적 역할을 제어할 힘은 없다. 효율성을 중심 원리로 하는 시장은 "한 사회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하위 체제의 하나일 뿐이며, 그것이 전 사회의 운영원리가 될 수는 없다."

"시민사회의 보수적 부문에서 말하는 자유주의는 권위주의 하에서 성장한 자신들의 특수 이익을 보장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다른 가치와 이념의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냉전반공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가치와 병립하기 어렵다."

"요컨대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보수세력에 의해 오염되고 비판적 운동 세력에 의해 버림받았다."

자유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내용들을 세 측면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이해, p. 225

"사적 자유와 권리로부터 국가의 기능을 도출하고 공적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자유주의라고 한다면, 공화주의는 공익을 우선시하면서 사익이 공적 영역을 침해하면 정치가 부패하고 공공선이 훼손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주의가 경쟁의 논리를 강조한다면, 공화주의는 참여의 윤리를 강조한다. 경쟁과 참여는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축이라 할 수 있다. "p. 227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분명한 제도적 함의와 실천적 의미를 갖는다......또한 공화주의의 원리는 사회의 특수 이익들이 사회에서 큰 역할과 영향력을 갖는 만큼 책임성과 공공성을 가져야할 것을 요구한다.......다시말해 사익은 공익을 대표하는 국가의 제약하에 놓이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에서 운동이 추구했던 평등하고 사회정의가 실현된 공동체의 건설은 루소적 '일반의지'에 상응하는 공화주의적 이념과 상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운동과정에서 강하게 작용했던 로맨티시즘, 집단주의적 충동, 도덕주의, 정서, 열정 또한 공화주의와 상응하는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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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프랑스는 그들 역사 속의 순수한 공화주의적 개념도, 미국에서 유입된 신자유주의적 개념도 원치 않는다. 국민의 교육 수준의 향상을 위한 노력은 평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학교의 전통질, 효율성, 다양성과 같은 '경제위기'로 유입된 새로운 가치의 종합을 위한 것이다. 이는 평등의 목적이던 동질성은 이제 끝이 나고 민주화만 남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가 동질화의 동의어가 더 이상 아니며, 민주주의의 목적은 새로운 형태, 즉 다양화로 이야기된다./ 이러한 통합을 위한 시도들은 최근 프랑스 교육담론과 구조 속에서 보여진다. 우선 질적 향상을 중시하며, 개개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도들이 담론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프랑스 전통에는 상반되는 것이었으나, '똑같은' 학교에 반대했던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양성을 존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신자유주의적 논리, 즉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의 '시장 논리에 맞춘 교육'이라기보다는 대다수 젊은이에게 고등교육을 개방하고, 모두에 대한 효율성, 즉 학생들의 평등과 학업성취를 위한 것이다." p. 39.

"오늘날 프랑스 학교는 평등의 이상과 질, 효율성, 다양성의 현대적 가치 사이의 종합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는 국가의 학교 혹은 국가와 연계된 학교, 또한 국가가 조정하는 학교로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 망 자체가 등급화되고 내부 경쟁이 양산 확산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모호하다.......하지만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판명될 듯 싶다. 세계무역기구 내에서 무역과 서비스업에 대한 일반협정을 적용하기만 한다면 분명해질 것이니까 말이다." p. 41.

참고로, 프랑스 교육의 공화주의적 모델은 "국가적인 교육이며 동시에 국민의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담당하고(프랑스 국민으로서의 동질성 형성을 위한, 곧 '사적이해'가 아닌 '일반이해'에 근거를 둔) 또한 종교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교육"이다. 그리고 "학교는 대중(peuple)을 위한 학교"로 여기서 프랑스어 '대중'이라는 단어는 "국가의 시민 전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국민 중 민중 계층(농민, 노동자, 소부르주아)" 모두를 의미한다. 이에 공화주의적 논리가 공공성 개념, 국가적 동질성, 보편적인 준거(이성, 천부적 도덕성, 인간의 권리 등)에 근거해있다면,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사적인 이해, 차이, 국가의 축소에 가치를 두고 있다. pp. 35-36참조.

베르나르 샤를로. "공화주의적 전통, 현대화, 신자유주의의 압력 사이에 놓인 프랑스 공교육". [중등우리교육] 200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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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사’ 책임자 위고니에
“학교간 격차 줄여야 한국학생 우수하나 행복하지는 않다”

“학교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비슷한 학습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학교간 재원의 격차가 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한국 학생들이 문제해결력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상위권에 오른 ‘2003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피사 2003)의 실무책임자인 베르나르 위고니에(57) 경제협력개발기구 교육국 부국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평준화 정책이 효과적이었다고 강조하면서도 “한국의 학교는 학교 안의 성취도 격차는 높지 않지만 학교들 사이의 학력 격차가 큰 편”이라고 지적했다.

위고니에 부국장은 “한 학교에 다양한 배경의 변인을 가진 학생들을 함께 입학시켜 공부시킬 때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면서 한국의 평준화 정책인 통합교육을 적극 지지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 때 성적이 더 올라갔다는 증거는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학교 안의 학력차가 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학교간 격차는 교육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위고니에 부국장은 “학교 안의 성취도 격차가 다소 높더라도 학교들 사이의 격차가 적은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수학 영역의 경우, 한국의 학교간 성취도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 28개 회원국 가운데 10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학업성취도 평가 전반에서 유일하게 한국보다 좋은 점수를 보인 핀란드는 학교간 격차가 아이슬랜드에 이어 두번째로 낮았다. 그는 “독일과 덴마크가 학교간 학력차를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며 “학교별로 교육과정 채택 등에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나름의 해법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 학생들이 수학에서 세계 3위를 기록했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 등은 하위권이다”면서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을 보유하고 있으나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고니에 부국장은 한국 학생의 성적이 사교육 때문이라는 물음에 “멕시코나 터키, 그리스, 헝가리 등은 사교육에 쏟아붓는 시간이 더 길다”면서도 “한국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에서 6~15살 사이 학생의 공교육비 평균이 5만2천달러이지만 한국은 4만2천달러에 불과하다”며 “한국의 교육이 굉장히 효과적이었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위고니에 부국장은 프랑스 파리9대학 교수를 역임한 뒤 지난 87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일하며 현재 피사 연구 전반을 관할하고 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편집 2004.12.08(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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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4-12-21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교육이 굉장히 효과적? 저 인간 교육이 뭔지나 고민하는 인간입니까?

결과만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관리자들의 주특기라는 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