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치료 때문에 찾은 이비인후과는 전에 한번 갔다가 의사가 굉장히 친절해서 기억에 남아 부러 다시 찾아간 곳이다. 단순히 친절하다는 것 뿐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또 존중하는 느낌.
난 거의 몇 주째 코 안이 말라서 피딱지가 앉고 염증이 생겨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와 화농이 엉겨서 말라 붙어 딱지로 붙어 있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 코안에서 제거되어야 마땅한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쉽게 말해서 코를 팠다는 이야기다. -_-;; 손톱이 길어서 이럴땐 요긴했다. 휴지를 적셔서 살짝 대었다가 뜯어내면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끔찍하게 아팠지만 딱지가 떨어져 나가 후련하고 시원했다.
오늘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이 상태를 덧나게 하고 안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의사는 면봉으로 연고를 코 안에 정성스레 골고루 발라주었다. 그리고 불편해도 좀 참고 절대 뜯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고를 발라주고 기다려주는 것 만으로 다 나을 증상이라는거다.
나는 그걸 못참고 뜯어내고 또 생기고 뜯어내고를 반복했으니..
내 코가 이런 증상을 보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봄에도 이랬다. 그때도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찔끔 거리면서도 기어이 딱지를 뜯어내고 피를 보곤 했다. 그때 찾아갔던 병원의 의사는 오늘 그 의사보다 수십배쯤 잘생겼는데 태도는 정말 영 아니올시다였다.
약간의 조롱이 섞인 어투로. 코 파셨죠? 보면 알아요. 코파시지 마세요. 라고 씨익 웃기까지 했다. 거기다 우월함을 바탕으로 한 그 태도. 이 무식한 것아 이걸 왜 자꾸 건드려서 안낫게 하냐. 쯧쯧.. 하는 속내가 표정에 다 드러나는 것이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어쩜 저렇게 비교하기 좋게 다르냐 싶을만큼 참 그러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의사의 잘생긴 비주얼이 순식간에 역겨워졌음은 물론이다.
내가 오늘 깨달은 것은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딱지가 앉고 그 딱지가 충분한 시간을 거쳐 저절로 떨어져 나갈때 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어쩌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가렵고 불편하다고 확 뜯어내봤자 흉터가 남거나, 상처가 덧나거나, 더디 아물게 될 뿐이다.
나는 이런 물리적인 상처 뿐 아니라 내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아무렇지 않게 탁탁 털고 일어나 웃으며 달리고 달렸다. 그럴수록 속이 더 아파서 문드러질 것 같은 것은 자명한 이치. 아프다 보면 별별 원망이 다 생겨나고 끝내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고 좌절하곤 했었다.
이제는 상처를 덮고 있는 딱지에게 미움보다는 고마움을 느끼며 그것이 내 살과 섞여 잘 지내다가 알아서 떠나갈 그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련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불편할 것이고 빨리 뜯어내려는 마음을 억누르느라 이를 악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참아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