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파괴하기
우디 앨런 감독, 리차드 벤자민 외 출연 / 무비&무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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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반영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는 전작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도 같지만 수준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정신적 긴장도(?)가 많이 떨어져 보인다. 자신이 만들어낸 작중 인물들에게 우디 앨런이 감사를 표하고 이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장면이 영화 막바지에 나오는데 자기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야 알겠지만 뭐랄까 너무 자족적이잖아.

이 영화에선 유독 우디 앨런의 자기 비하가 심하다. 원래 그런 게 특기라지만 이번엔 거의 자기 학대 수준이다. 문제는 이게 너스레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앓는 소리 같다. 자기고백에 진정성이 부족해 보이는 까닭은 정작 이 영화의 대단원이 상당히 자족적이고 일견 자기도취적으로 완결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이 영화의 커다란, 어쩌면 문제적인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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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의 대니 로즈
우디 앨런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마루엔터테인먼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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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의 소극 같은 정도의 작품이지만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다. 이야기에 담긴 페이소스 때문에. 뭉클한 온기 때문에. 이 영화엔 그 어떤 비관주의나 냉소주의의 기미도 안 보이고, 단지 애틋함과 다정함만 배어있다. 어디선가 이 영화를 우디 앨런이 자신의 매니저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고 읽은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정말이라면 마땅히 매니저에게 바치는 헌정작이라 할 만 하겠다. A를 배신하면서까지 B에게 정성을 다 바쳤으나 결국 B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이 버린 A와 똑같은 신세로 전락한 주인공, 그제야 비로소 A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그동안 괄시했던 삶의 어떤 진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러고 보니 맨하탄과 비슷한 플롯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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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우디 앨런 감독, 다이앤 키튼 외 출연 / 마루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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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 앵글은 주로 눈높이에 머물고 그마저도 정적이다. 춤추는 장면에서 실제로 흘러나오는 음악 외에는 어떤 배경 음악도 삽입되지 않았고. 마치 건조한 사실주의 연극처럼. 등장인물 각각에 대한 캐릭터 구축, 심리 묘사, 인물 간 갈등 양상, 기승전결의 구성, 그리고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집안의 '인테리어'까지 다 좋다. 몰입감 있다. 확실히 7-80년대가 우디 앨런의 전성기였구나. 패기와 야망이 느껴진다. 도전적인 시도를 해보겠다는. 다양한 장르를 넘보겠다는.

2 가족만큼 안락하고 끈끈하고 애정 넘치는 집단이 어디 있을 것이며 동시에 가족만큼 온갖 심리적 문제가 산적해 있는 위태로운 집단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무수한 배면을 품은 이 아슬한 관계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구성원 저마다 애써 감내해야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차마 말 못 할 그 모든 비밀들을 집 앞 잿빛 바다에 파묻고 살아가야 하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가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까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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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그
우디 앨런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조이앤무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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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하나 앞세워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만만한 코미디려니 하고 방바닥에 널브러져서 봤다가는 기습 당하고야 말 것이다. 훅 치고 들어온다. 무려 '주체적인 인간이 될 것'을 이 영화가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무슨 도덕군자의 진부한 훈교 같지만 영화에서 이 메시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소름 돋는다. 놀랍고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웃기는 건 기본이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탁월한데 이 영화는 비범하게도 한 발 더 나아가-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모방과 재현에만 특화된 인간이 보여주는 의외의 잠재력과 또 다른 가능성, 어떤 희귀한 인간 유형이 지닌 고유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명암이 갈리는 갖가지 사건들과 그에 대한 대중의 극단적이고도 피상적인 조삼모사식 가치평가까지도 사려 깊게 주목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를 촉구하면서도 그저 주체적인 인간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는 문제적이라는 일차원적 결론에 머무는 게 아니라, 왜 인간사는 모 아니면 도로 단순하게 나누어떨어지는 산수가 아닌지, 왜 사회는 예측불허의 우연과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지 그 필연적인 복잡성에 대해서마저도 숙고하게 만든다.

아울러 영화는 극단적으로 주체성을 상실해버린 이 '젤리그'라고 하는 인간이 어떤 연유로 사회에 출현하게 되었는지 그 심리적 내지는 사회적 기원에 대해서도 청산유수의 허풍을 떨어가며 다각도의 심층적인 진단을 해보이고 있는데, 꽤나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우디 앨런 자신에 관한 자기분석이기도 할 것이다.

엄격한 자기객관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이해와 철학적 통찰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 와중에,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무슨 고리타분한 현대사회학 강좌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웃기다. 코미디 장르라는 본분에 지극히 충실하다. 세상에 코미디물은 많지만 비범한 코미디는 드물다. 드문 것은 귀하다. 이 영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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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음이 싱그러운 한여름의 초원을 배경으로 청춘남녀의 엇갈린 애정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애니홀> 이후 우디 앨런에게 무슨 신이라도 강림했나. 기량이 만개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작두 위에 올라탔다. 삽입곡인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이나 마찬가지인데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85년도 빈필 녹음이 명반으로 꼽히는가 보다. 앙드레 프레빈이라면 82년작인 이 영화를 찍으며 우디 앨런과 연인 사이가 되었던 미아 패로의 두 번째 남편이자 동시에 우디 앨런의 현 장인어른 아닌가. 재미있는 우연이다. (포스터는 프랑스판이 더 나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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