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D] 바람의 전설
미디어마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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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선 춤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들이 희화화되어 있는데 그 점이 내심 서운하다. 십년 전 신림동 부기우기에서 내가 가장 먼저 배웠던 것도 스텝 스텝 락스텝이었다. 주인공의 경우처럼 나 역시 락스텝을 밟았을 때 발밑으로 먼지가 일면서 천지가 진동을 하였다. 난 그때 인생의 개벽이 왔음을 느꼈다. 몸의 움직임을 기록 중인 블로그 카테고리 메뉴의 rocksteps 역시 생각 없이 갖다 붙인 게 아니라, 스윙댄스에서의 락스텝이야말로 내 신체 움직임의 최초의 역사적 순간이기에 이를 기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 이 진지한 걸 죄다 웃기게 그려놨다고 이 영화가 ㅠ

희화화되어 있는 점이 씁쓸하긴 하지만 그 점 빼곤 매우 사실적인 영화라고 생각된다. 감독이 춤 경력이 있나 궁금할 정도로. 춤을 한동안 쉬다가 재개할 때면 이 영화를 찾아서 다시 보곤 했었다. 이 영화에서처럼 춤을 오래 추게 되면 결과적으로 제비나 꽃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되지 않더라도 변이의 그 모호한 경계면에 서서 그들이 지닌 일말의 진실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유혹이야말로 춤의 근본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가? 좋지 않은가? 제비와 꽃뱀으로 가득한, 유혹과 유혹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니 그 얼마나 긴장되고 짜릿하고 정신이 쏙 빠지게 재밌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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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 돈의 판도를 바꿀 디지털 화폐의 출현
김진화 지음 / 부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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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읽기 전 비트코인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 몇 가지가 있었다:

 

① 1BTC가 올초 5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가 지난 달에는 90만원까지 치솟았는데 그리고 지금은 또 폭망해서 60만원대 언저리를 찍고 있는데 이렇게 통화가치가 요동을 치고 불안정하면 이것이 과연 통화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통화로서 제 기능조차 못 한다면 이거야말로 봉이 김선달이 퍼다 판 대동강 물처럼 실체조차 모호한 투기성 상품에 불과한 거 아닌가.

 

② 만약 비트코인이 투기성 상품이라면, 비트코인이 출범한 지도 어언 7년이 흘렀는데 이쯤이면 이제 투기할 만한 시점은 지난 거 아닌지? 가격대가 안정화되는 시기가 다가온 거 아닌지? 1BTC= 50~100만원 그 사이 어디쯤에서 점근선적으로 안착하려는 거 아닌지?

 

③ 한편으로 비트코인이란 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문제적이고 야누스적인 발명품 아닌가? 이거야말로 국가를 전복하고 시장 질서를 교란시킬 만한 반정부적 시스템이 아닌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트코인은 검은 돈의 온상이 되기에 알맞고 아마도 비트코인이 활성화되면 엄청난 암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걸 과연 국가체제가 용납할까? 향후 비트코인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 국제경제기구 혹은 정부 차원에서 점차 상당한 규제와 압박이 가해지지 않을까? 만약 비트코인이 인류의 새로운 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한다면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어 금융질서를 확립하고자 노력했던 그간의 정부의 업적은 다 뭐란 말인가? @_@ 업적이고 뭐고 비트코인이 국제화폐가 된다는 것은 곧 국가체제가 전면적으로 붕괴하고 전지구적 아나키 상태가 도래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지 않나.

 

위의 의문점들에 대해 이 책이 내놓고 있는 대답은 이렇다:

 

① 맞다. 비트코인의 급격한 가격 변동은 불편과 불안의 요인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비트코인이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이다. 견조한 글로벌 차원의 유동성과 교환성 확보, 그리고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 요소를 회피할 수 있는 선물, 옵션 등 다양한 보완 상품의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완결적인 순환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굳이 국가 화폐로 바꾸지 않더라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편재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결국 비트코인이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면 자연적으로 가격 안정화가 이루어질 거라는 얘기인데 과연 비트코인이 ③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극복하고 글로벌 가상 화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② 마이닝을 통해 발행되는 비트코인은 수학적 알고리즘에 따라 계획되어 있다. 그에 따라 계산을 해보면 물가 인상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지금 정도의 보상 효과를 지니려면 30년 후 비트코인의 가치가 개당 약 2500달러는 되어야 한다. 물론 이보다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기는 하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 출신의 한 분석가는 비트코인의 적정 가격을 최대 2천 달러까지 전망하기도.

 

③ 국가 권력의 개입 우려가 비트코인이 당면한 가장 위협적인 요소인 것은 맞다. 그러나 과연 규제가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비트코인은 애당초 중앙 집중적인 권력을 배제한 채 운영되기 위해 P2P 방식의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수학적 알고리즘이 그 핵심이다. 다른 것은 정부가 다 탄압할 수 있어도 수학은 죽일 수 없다. 우리가 하이테크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기술적 상상력을 기존의 힘으로 억누르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2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비트코인의 출범 정신이랄까, 그 사회학적 뿌리가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 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소수가 지배하는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전 세계적으로 표출시키고 나아가 실업, 환경오염, 계층 구조 등 자본주의 전반의 문제점까지 이슈화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당시 운동 세력들은 현재의 문제적인 금융 시스템이 국가체제 내에서 국가 화폐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비트코인과 같이 시스템 밖에 존재하는 새로운 비국가적 화폐를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했던 것.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중앙통제적인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약탈적 금융자본주의로부터 개인의 경제적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3 비트코인에 대해 약간의 부정적인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21세기 IT기술로 재점화된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장사가 아닌가 하고. 투자종목으로서 과연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중심으로 접근하니 당연히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그러나 이 책은 비트코인의 투자가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대신 이 책은 비트코인의 창발 이념과 그것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적 가치를 비트코인의 기술적 원리 및 초창기 에피소드 등과 함께 버무려 전하고 있다. 의심과 회의 속에서 그저 투자의 적합성만을 따지며 접근했던 내 태도에 비해 이 책은 너무나 순수(!)했고 그 순수성에 감읍하였는지 어쨌는지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비트코인에 대한 시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미래의 국제적인 가상통화로 자리매김하게 될지의 여부를 떠나서 비트코인은 하나의 즐거운 게임이구나. 이 게임이 전세계적으로 융성할 수도 있고 아님 한 시절을 풍미한 소수 마니아의 놀이 문화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 놀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나. 그러나 놀이의 확대 여부를 떠나서, 투자 적합성을 떠나서 이 게임은 그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이다. 매력적이라고! 이 게임에는 자유정신이라는 철학이 있다. 그 어떤 권력의 억압과 통제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리버테리언의 결의와 염원과 이상이 담겨있다. 이 놀이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러한 자유정신의 철학을 공유하고, 이상의 실현을 향해 즐겁게 (˝즐겁게˝가 중요하다. 왜냐, 이건 말 그대로 놀이이니까!) 힘을 보탠다는 뜻이리라. 설레이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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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kdhl123 2022-11-17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 사서 갖고 있었음 빌딩 샀겠네요..

수양 2025-05-10 00:00   좋아요 0 | URL
제가 빌딩을 샀게요 못 샀게요?

- 2023-06-1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월스트리트 출신의 한 분석가는 비트코인의 적정 가격을 최대 2천 달러까지 전망하기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얼른들 사구려! 푸하하 지금이순간 25761달러다 한화 33171872.24원
 
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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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회한에 사무칠 정도로 (천천히 야금야금 읽었어야 했는데 너무 후다닥 읽어버렸어 엉엉) 재밌다. 특히 영화평. 앞으로 소설보다 영화감상문을 집필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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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 -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홍현진.강민수 지음 / 오마이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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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를 위한 마을 사용 설명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독립은 원하지만 고립은 피하고픈 독신자를 위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행 중인 여러 형태의 연대 실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나 역시 독립은 유지하되 고립은 면하고픈 1인 가구 세대로서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 책의 정치적 좌표가 다소 편향되어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실험적인 시도들이 당장 나의 현실에 응용해 보기는 다소 저어되는, 나로서는 너무도 이상적인, 먼곳의 삶의 방식들 같다. 자본주의체제에 전적으로 복종하여 살아가는 혹은 자본주의체제의 선봉을 이끌며 살아가는 1인 가구의 사례도 좀 공평하게 실어줬으면 어땠을까. 그런 사례는 코스모폴리탄을 펼쳐보면 되려나. 그렇다면 코스모폴리탄이 편파적인 만큼, 딱 그만큼 이 책도 편파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 말미에 1인 가구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아래 대목은 곱씹어 볼만 하다. 시원하게 현실 직시하도록 해준다.

 

"가족의 기능 중 하나는 구성원 사이에서 비시장적인 서비스 교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 그런데 1인가구에서는 비시장적인 서비스 교환이 불가능하다. 대신 1인가구는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생활비 증가로 이어진다. 또 가족의 경우에는 구성원들끼리 경제적 부조를 할 수 있다.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일자리를 잃으면 다른 구성원의 수입으로 생활비를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1인가구는 한 명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면 가구 전체의 경제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굉장히 위험하다. 1인가구에는 완충작용이나 보호막 같은 것이 없다. (...) 1인가구 스스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알기 시작했다. 이걸 좀 확장시켜서 자신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희생정신에 기반을 둔 연대는 곤란하다. 자신의 수준에 맞게, 자기 필요에 따른 연대를 찾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1인가구들의 연대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물질적 필요에 의한 결합이어야 한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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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즘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24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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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정치적 기도이며, 제사는 주술적 행위이고, 주연(酒宴)은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염원이다. 그러나 바타유에 따르면 단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그러한 정의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노동의 질서와 금기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세속의 세계에서 전쟁과 제사와 주연은 인간의 억눌린 잔인성과 폭력성, 탕진과 파멸에의 충동이 정당하고도 장엄하게 분출되는 실질적 효용을 갖는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경건한 절차야말로 폭력이 인간 사회의 질서에 성공적으로 통합되는 방식이다.

 

에로티즘 역시 금기와 위반이라는 테제 속에서 설명된다. 그 또한 정교하게 기획되는 위반의 게임인 것. 에로티즘은 자연으로 회귀하여 원초적인 동물성을 무한 발산하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에로티즘의 미학을 구현하기 어렵다. 위반이란 금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를 한 번 걷어 올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에로티즘은 존재론적 불균형과 불안과 긴장을 수반하는, 자극적인 즐거움과 고뇌가 공존하는 상태인 것이다.

 

금기의 위반을 통해 일시적으로 강렬하게 분출되는 왕성한 낭비(=폭력, 살해, 파괴, 생식을 초과하는 유희로서의 성욕 등등)에서 전복적 진리를 발견하는 바타이유의 사유는 흥미롭다. 춤판의 속성을 떠올려볼 때 바타유가 논하는 에로티즘은 일견 수긍할 만한 점이 있는 통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시, 금기의 위반을 통해 얻는 쾌락은 찌질한 쾌락이 아닌가 하는 의문. 그야말로 노예적인 쾌락이 아닌가. 압박으로부터의 폭발, 아름다움을 더럽히는 데서 오는 파괴적 기쁨, 공포와 고통 속에서 극대화되는 도취와 희열... 바타유의 에로티즘은 억압적 에로티즘이다. 신경증적 에로티즘이다. 죽음 충동으로 가득한, 강력한 부정의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에로티즘이 못내 협소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에고의 회로에 갇힌 신경강박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아무래도 먼저 읽은 오쇼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오쇼가 말하는 쾌락은 웅대하고 높은 차원의 쾌락이다. 노예의 쾌락이 아니야. <섹스란 무엇인가>에서 오쇼는 섹스가 단순히 생물학적 결합에서 오는 감각적인 쾌락에서 더 나아가 얼마든지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쾌락으로, 우주와 신성을 만끽하는 쾌락으로 심오하게 확장될 수 있음을 얘기한다. 이것이 바타유가 말하는 '신성의 에로티즘'이라 할지라도 오쇼가 말하는 성적 쾌락은 금기의 위반에서 얻는 쾌락과는 급이 다르다. 오쇼의 쾌락은 어떤 부정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 긍정으로 가득한, 광대한 스케일의 쾌락이다. 바타유의 에로티즘이 고뇌와 고독의 에로티즘이라면 오쇼의 에로티즘은 평화와 자유와 해방의 에로티즘이다.

 

제목과 달리 썩 에로틱한 책은 아니었다. 행간 곳곳에 스며 논지의 전제를 이루는 봉건적 여성관도 그렇고 여기저기 궤변 같아 보이는 대목들 하며. 다만 아래 옮겨 적은 대목은 곱씹어볼 만 하다. 바타유의 이론은 에로틱하지 않지만 그의 철학적 자세는 에로틱해 보인다.

 

"[헤겔 류의] 전문 작업으로서의 철학은 말하자면 하나의 노동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철학은 내가 처음에 언급한 강렬한 감동적 순간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배제한다. 따라서 그것은 가장 일차적이고도 중요한 종합 작업으로서의 가능성의 총체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가능성의 총체도, 가능한 경험의 총체도 아니며, 단지 인식을 목적으로 하는 한정된 경험의 총체에 지나지 않는 지식의 총체일 뿐이다. 전문작업으로서의 철학은 의식적으로 나아가 감정적으로 이질적인 물체를 거부하며, 아무리 강렬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더러운 것 또는 적어도 오류의 근원, 탄생, 생명의 창조 등과 결부된 것은 마치 죽음을 거부하듯이 거부한다.

 

사실 극단적 인간성, 즉 인간의 성행위와 죽음의 폭발을 외면한 채 오로지 평범한 인간성만을 설명할 뿐인 철학의 기만적인 결과에 놀라는 것은 내가 처음이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에 철학의 이러한 싸늘한 측면에 대한 반발은 키에르케고르는 말할 것도 없고, 니체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근대 철학자들의 특징을 이룬다. 당연한 일이지만 철학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은 (...) 방랑이나 탈선적 사고를 용납하지 못했다. 사실 철학은 다른 데가 아닌 거기에서 심오한 정당성을 획득하지 않던가. 그러나 철학이 규율과 조화로운 노력만을 끌어들인다면, 다시 말해 철학이 어떤 극단성에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철학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종합 작업과 가능성의 총체’로서의 철학을 진정한 철학이라고 한다면, 위의 철학은 심오한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철학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 철학은 삶의 극단과 관련된, 내가 어디에선가 ‘가능성의 극단’이라고 표현한 것, 즉 철학적 대상의 극단을 끌어안지 못한 이유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 물론 철학은 죽음에 파묻힐 때, 즉 죽음의 끝인 혼미에 자신을 내던질 때만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철학은 철학을 부정할 때에 한해서, 철학에 조소를 보낼 수 있을 때에 한해서 가능하다. 정말 철학이 철학을 비웃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한 가정은 철학적 계율을 인정하는 동시에 파기를 전제하는데 그러면 이제 철학은 모든 가능성의 총체로서의 종합 작업이 될 수 있다. 그 총체는 종합이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닌 것이 왜냐하면 그곳은 인간의 노력이 한계를 드러내며, 인간이 무기력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 나는 이처럼 밖으로 흘러넘치는 극단적 체험을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다." -p.302~303

 

바타이유는 자신이 에로티즘이라고 하는 철학적 가능성의 극단을 탐사하고는 있지만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애당초 노동과 금기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철학의 언어로 에로티즘을 규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넌센스이고 한계를 갖는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위반 자체가 위반의 담론을 대체하는 결정적인 순간" 직전까지는 접근의 길들을 묘사하는 언어가 의미를 갖는다고 하면서 철학적 불가능에 뛰어든 자신을 변호한다. 금기의 최전선까지 나아가 끊임없이 위반을 시도하고 생명을 빼앗기기 바로 직전까지 위험에 탐닉함으로써 극도의 쾌락을 얻는 것이 에로티즘적 윤리라면- 철학답지 않은 철학, 정통적 흐름으로부터 이탈해 있는 철학, 경계의 철학, 변방의 철학, 외곽에 걸쳐있는 철학, 철학의 외연을 넓히는 철학, 사이비성을 의심케 하는 비주류 철학 따위에의 천착이야말로 철학 탐구에 있어서는 진정으로 에로틱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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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6-07-29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해하는 철학도 이쪽 끝으로 갔다 저쪽 끝으로 갔다 중화시켰다 반발했다 하더라고요, 글 재밌게 읽고 갑니다-.

수양 2016-07-31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여러 부류가 있을텐데 성향 때문인지 저는 중화보단 반발 세력에 더 호감이 가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