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카또오 노리히로 / 창비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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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토는 전후책임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와 ‘망언’을 반복하는 일본의 인격 분열의 원인을 사죄할 주체가 제대로 구축되어있지 않는 데서 찾고 있다. 그는 사죄해야 할 타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라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주체를 구축하는 것과 관련해서 “자국의 3백만의 무의미한 사망자들을 바로 그 무의미함 때문에 깊이 애도한다는 것이 그대로 타자인 2천만 아시아의 죽은 자들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즉, 전쟁으로 희생된 2천만 아시아인에게 사죄하기에 앞서 먼저 3백만의 자국 희생자들을 추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토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일본에 때 아닌 역사주체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이 가열되면서 가토는 자유주의사관파와 혁신파 진영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혁신파 진영의 지식인들은 가토의 주장이 어디까지나 자국의 사망자만을 감싸는 내향적인 논리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논리는 피해자인 아시아인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망각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통합된 주체를 구축하자는 가토의 논의는 특히 다카하시로부터 내셔널리즘적 책략이라는 이유로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논쟁의 포문을 연 가토가 애초에 꺼낸 논의의 취지는 결코 내셔널리즘의 복권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토의 주장이 내셔널리즘적으로 해석될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셔널리즘이라는 혐의가 발화 자체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토가 언급한 '주체'는 다카하시가 비난하는 류의 '내셔널리즘적 주체'보다도 다케우치 요시미가 말한 ‘근거지’에 해당하는 주체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다케우치 요시미에게 있어서도 내셔널리즘은 ‘회심’과 ‘근거지’를 위해 불가피한 요소였다.  

   
  근거지는 일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범주다. 그것은 절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고정적이지 않으며 동적이다. 고수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다. (...) 근거지란 불균형한, 패배로 이를지 모르는 조건에서 가치의 전환을 이루어내는 자기 개조를 뜻한다. 이것은 전향과 다르며, 차라리 반대이다. 전향이 바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자신을 버린 것이라면, ‘근거지이론’의 자기개조는 바깥의 불균형한 조건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 자기변화에 이른 것이다. 전향에서 바깥의 환경은 전향을 해봐도 그대로 남지만, 자기개조에서 바깥의 환경은 주체 갱신의 축을 따라 변화한다. -다케우치 요시미, <내재하는 중국> 中에서  
   

사회적 상황의 모순에 대한 천착과 해부, 그리고 이를 통한 반성과 갱신. 이것이 애초의 가토의 발화에 담긴 취지가 아니었을까. 나는 가토의 글에서 자신의 언설이 비난 받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끝내 사회의 모순점을 물고 늘어지는 사고의 핍진함을 읽는다. 그리고 거기서 다케우치가 강조하는 ‘회심’의 가능성을 본다. 물론 사상의 폭과 깊이가 루쉰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가토의 발화가 복잡한 현실의 토양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는 점 하나 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반면, 가토를 비난하는 다카하시의 주장에는 모든 전후 상황을 굉장히 쉽고 당위적이고 명료하게 정리해버리는 ‘전향’의 태도만이 있을 뿐이라고 비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통일된 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가토의 주장 역시 '내셔널리즘의 복권'으로서의 의도를 갖는다기보다는 모순투성이의 자신을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의지로 읽힌다. 물론 그가 구상해낸, 자국의 삼백만을 먼저 추도하자는 그 구체적 방법이 다소 엉성하고 문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화하는 내부를 성찰하려는 시도 자체는 그 가치를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시도를 가리켜 피해국과의 관계를 절연하고 과거 청산 문제를 교묘히 회피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수작이라고 힐난한다면, 그것은 가토에 대한 너무나 가혹한 평가일 뿐만 아니라, 가토의 발화의 핵심을 전혀 못 건드리고 있는 비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역사주체논쟁을 둘러싼 일본 내부의 논의는 피해자의 입장에 놓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조약 체결 이후 전후보상문제에 대해서 한국 공론장에서는 일본의 경우만큼의 큰 논의가 별달리 불거진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전후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한국과 일본이 보여주는 대조적인 모습은 자못 인상적이다.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는 속담이 실감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맞은 놈이라는 게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니, 맞았다는 사실이 과연 도덕적 우위를 증명해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애당초 우리가 정말 맞은 놈이긴 한 것인가? 전후세대인 우리 역시 전쟁에 대한 기억도 없고, ‘논 모랄’이고, 딱히 응어리진 것도 없는데, 사죄 받을 권리를 마치 상속 받은 재산 마냥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상속받은 그 재산이 정말로 불로소득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책임이 대가로 따르는 재산인 것인지 한번쯤 재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섣불리 확실한 답안을 마련하기 어려워 잔뜩 의문만 쏟아내 놓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역사주체논쟁을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어떤 새로운 ‘고민의 연대’라는 것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하나의 사건인지 모른다. 이 글에서 나는 가토를 옹호했지만, ‘고민의 연대’라는 것이 결코 무작정 일본인의 입장이 되어 가토의 논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서 불거진 이 논쟁을 매개로 하여 우리가 처한 장소에서 가토의 고민에 값하는 새로운 고민꺼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고민의 연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무수한 의문들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출발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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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0-09-04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에 대한 태도가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했던 태도보다 합리적이었다거나 온건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해석하기에 따라 반대였을 수도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일본은 2차대전 때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는데, 저는 일본의 그런 정책에서 제국주의적 흐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동아시아 국가로서 가질 법한 자긍심과 함께 동아시아민족 전체에 대한 모종의 책임의식 같은 것도 느끼게 되거든요.

단순히 성을 바꾸게 한다거나 풍습을 금지하는 행위만으로 식민국에 대한 착취의 강도를 비교한다는 건 너무나 단순화된 논리인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침략국으로서의 일본의 태도를 유럽국가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그것은 개별적이고 특수적인 상황과 조건에 대한 선이해 없이 몇 가지 드러난 결과만을 가지고 단순비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전후 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일본이 독일과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까닭이 단순히 일본의 윤리적 무감각 때문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 특유의 문화나 국민성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한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를 규정하는 열쇳말로 온(恩), 기무(義務), 기리(義理)를 언급하고 있는데, 거기서 확인하게 되는 거는 타인이 베푼 은혜에 대해 과도한 부채감과 의무감을 지니는 일본 특유의 정서입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은혜를 입거나 신세 지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거기서 오는 부채감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일본인들로서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과오를 떳떳하게 시인하고 인정하는 게 독일인의 경우처럼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독일인에게는 청산과 새출발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일본인의 경우에는 평생 헤어나올 수 없는 형벌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전후 책임 문제에 미온적인 일본의 입장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단순비교에 의한 맹목적인 비난보다도 이같은 일본 특유의 정서와 국민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러한 고려가 일본이 져야 할 책임을 가볍게 해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2010-09-06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양 2013-04-30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에 이 책의 저자 카토 노리히로가 "전쟁으로 희생된 2천만 아시아인에게 사죄하기에 앞서 먼저 3백만의 자국 희생자들을 추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진보진영 지식인들이 카토를 강도 높게 비난했죠. 솔직히 이 책에서 카토는 굉장히 많은 고민과 성찰을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교활한 보수우익의 교언영색 같다는 인상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수유너머에서 이 책 가지고 토론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은 카토를 반대하는 쪽이었지요. 저는 토론에서 카토를 지지하는 입장에 섰었어요. 이 독후감은 그때 쓴 발제문을 약간 수정하여 올린 것이고요.

제가 카토를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까닭은 카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그의 논리에 감화되어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처지에서는 카토를 비난하는 것보다 지지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 토론에서 제가 카토를 지지하는 쪽에 섰던 진짜 이유는 아마도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엔 약간의 객기도 없진 않았을 겁니다.

사실 카토를 비판하기는 참 쉽지요. 그래서 더 객기를 부리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요. 카토를 비판하는 이들이 진을 치고 있는 사유의 장소- 그 장소는 대단히 쉽게 구축되는 장소니까요. 저는 운신이 쉬운 장소에 자신의 입지를 마련해 놓고 쉽게 비판적 태도를 보임으로서 쉽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해요. 우리는 카토를 비판함으로써 쉽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선 대단히 나이브한 태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수양 2010-09-0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어떤 맥락에서 '관행'이라는 용어를 꺼내신 것인지 그 부분은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다만 님이 2010-09-06 02:19에 달았던 댓글 중에, "(1)그들이 실제로는 그들의 과오를 인정하나 사죄의 내용을 말로 표현한다면 괴롭기 때문에 표현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2)실제로 자신들의 과오가 아닌 대동아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겠죠" 라는 대목은 저로서도 궁금한 점입니다. (1)과 (2) 사이를 왕복하는 복잡한 심리구조 속에서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는 게 어쩌면 카토의 입장 같기도 하고요.

수양 2010-09-07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이성적으로는 혹은 대외적으로는 전쟁 도발에 대해 피해국에게 사죄하는 게 지당하다고 여기고 있으면서도, 그 내면의 심리구조는 여전히 복잡다단한 마음으로 얽혀있다는 사실입니다.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는 일은 곧 자기를 철저히 부정해야만 하는 일인데, 그게 누구나 그렇듯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카토가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끊임없이 불러들이는 것이 문학적인 감수성입니다. 카토를 비난했던 일본 진보진영 지식인들은 그가 정치적인 사안에 문학적 감수성을 끌어들여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저는 오히려 카토가 문학의 영토에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키는 데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한번쯤은 우리도 카토가 내는 그런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후에 30대로 보이는 남자 손님과 대판 싸웠다. 싸우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런 싸움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를. 나랑 싸웠던 그 남자는 처음에 나에게 '씨발년'이라 했고, 그 다음에는 '법대로 하라'고 했으며, 좀더 지나서는 '법이면 다냐'고 하다가, 그 다음에는 '새파란 것이 어디서 반말이냐'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로 감정 상하지 말고 좋게 끝내자'며 나를 타일렀다. 그는 감정의 제어가 서툴고 말에는 어떠한 논리도 없는, 한마디로 단순하고 과격한 유형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성품은 유순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 싸움이 너무나 재미없게 끝나버린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가 좀 더 지능적이고 광포했더라면, 아니 말을 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논리력이라도 갖추었더라면, 싸움은 훨씬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나는 솔직히 그가 내 뺨이라도 때려주었으면 싶었다. 만약 내가 뺨을 맞았다면 나는 그 즉시 테이블을 뛰어 넘어가 그에게 덤벼들어 목덜미를 갈기갈기 물어 뜯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순간 실로 혼신을 다해 싸울 태세였던 것이다. 싸움이 불러일으키는 흥분과 긴장, 그것이 주는 쾌감은 그만큼 엄청났다. 싸움은 그동안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모르게 몽롱한 상태로 늘어져 있던 온몸의 세포들을 하나 하나 흔들어 깨워 주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외치는 순간, 나는 극도의 쾌감 속에서 마치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싸움이 싱겁게 끝나버리자 말할 수 없이 허탈했다. 정말이지 오늘보다 훨씬 더 악랄한 손님을 만나고 싶다. 씨발년 따위보다 몇십 배는 더 강력한 욕을 얻어듣고 싶다. 나의 호전적 본능을 일깨워줄 인간 말종을 만나서 경찰한테 붙잡혀갈 때까지 피 튀기는 육탄전을 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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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본적으로 성품은 유순한 사람이었다' 요게 싸움을 참으로 허무하게 만들죠--;
스트레스가 많으신가봅니다^^;

수양 2010-08-0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로 인해 나날이 전투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허허
 

일찍이 지혜로운 철학자가 천명하였듯이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침묵은 어쩌면 최소한의 양심이나 예의 같은 게 아닐까. 삶에도 뼈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성분은 오로지 말할 수 없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을 것이리라. 말이라는 것은 대저 얼마나 본질로부터 먼 곳에 있는가. 그것은 얼마나 남루하고 곤궁한가. 우리는 묵직한 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막을 횡단하는 한 마리 낙타처럼 육중한 말들 속에 파묻혀 끝끝내 고독하리라. 무수한 말들은 모조리 실패할 운명이다. 세계의 모든 비밀은 말 속에서 더욱 더 견고하게 은폐될 것이므로. 말이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체념 속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쓰고 그냥 살았다.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은 결국 내 삶의 언저리에서 변죽만 울려댈 것이었다. 그러나 말문이 막혀버린 세헤라자데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임을 이제는 알겠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끊임없이 자맥질을 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굴러 떨어질 바위를 열심히 밀어올리는 시지푸스처럼, 절망적이고도 힘차게 무슨 말이든 지껄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쓴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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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진화 - 2010 제17회 김준성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62
이근화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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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를 사랑한 개가 있고 나를 몰라보는 개가 있어
하얗게 비듬을 떨어뜨리며 먼저 죽어가는 개를 위해
뜨거운 수프를 끓이기, 안녕 겨울
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
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
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
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
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
아직도 취해 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中에서 

 
   

시인은 자기 인생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지만, 이 말이 마냥 명랑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과 "기울어진 어깨"로 선언하는 긍정이기에. 결코 쉽지 않은 긍정일 테다. 비감을 품었지만 그렇다고 자조적이지도 않은, 수굿한 자세로 담담하게 선언하는 이런 긍정이 어떻게 쉬울 수 있을까. 쉽지 않지만 나도 따라서 말해볼까. 나도 내 인생이 마음에 든다고. 늘어나는 체중과 변변찮은 통장 잔고와 못 갚은 이자처럼 불어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 인생이 마음에 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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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6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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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흔히 악으로 규정된다. 박애정신과 시민의식을 갖춘 사람들은 비폭력 평화주의만이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말한다. 이런 와중에 폭력을 선동하는 무리들은 언제나 극단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경계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모든 도덕 판단이 그러하듯 폭력이 악이라는 테제 역시 특정한 계보 속에서 산출된 명제일 뿐이다. 그리고 이 계보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폭력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중에는 분명 ‘옹호해야 할 폭력’이 있다. 폭력이 악이라는 테제는 이런 폭력의 가치마저 폄하하고 부정하게 만든다. 

옹호해야 할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억압받는 소수자가 행하는 폭력이다. 소수자가 저지르는 폭력은 강자가 자기 보존과 확장을 위해 수행하는 폭력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강자의 폭력이 생명욕동에서 비롯하는 유기체적 성장의 수단이라면, 소수자의 그것은 온통 죽음욕동으로 들끓는 폭력이다. 소수자의 폭력은 목숨을 걸었으되 아무런 승산도 전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이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 분투하는, 처절한 자멸의 폭력인 것이다.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을 이끌었던 프란츠 파농은 착취당하는 원주민이 식민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 극단적인 폭력투쟁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폭력의 행사가 다양한 부족의 원주민을 한 덩어리로 묶어주며, 각 개인의 의식에 공통의 대의와 민족의 운명, 집단의 역사 같은 관념들을 싹트게 한다고 말한다. 결집된 민중의 폭력을 식민지 해방을 위한 결정적 수단으로 여겼던 파농에게 비폭력 평화주의, 점진적 개혁, 지배국가와의 타협을 외치는 식민 치하의 민족주의 정당은 어디까지나 ‘자유를 누린다고 착각하는 노예계급’에 불과했다. 민족주의 정당은 겉으로는 평화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착취국의 정치 세력과 은밀하게 결탁하여 식민 체제를 영속화했기 때문이다. 

1961년 이 책의 서문을 쓴 사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을 지지했던 프랑스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식민 치하에서 착취당하는 소수자 계급의 극단적 폭력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 부드러움으로 폭력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는 없다. 오직 폭력 자체만이 폭력을 부술 수 있는 것이다. 원주민은 무력으로 이주민을 몰아냄으로써 자신의 식민지 노이로제를 치료한다. 분노가 들끓을 때 그는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으며,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자아를 스스로 창조한다. (...) 반역의 무기는[즉, 폭력은] 그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거다. -p.36 <1961년판 서문 中에서>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알제리 원주민들이 보여준 극단적인 무력투쟁은 정당방위로서의 폭력도 아니고, 정당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폭력도 아니었다. 그들의 폭력은 도덕이나 정의의 범주를 초월한 영역에 있었다. 그들의 폭력은 ‘존재론적’이었다. 그들은 폭력을 통해 실존하는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궁지에 몰린 인간이 보여주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폭력, 그것은 일종의 자해다. 자해는 자기를 파괴하는 행동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욕동의 분출 속에서 자기의 실존을 확인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실존하게 하는 폭력,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폭력, 자멸 속에서 생의 감각을 느끼는 데 소용되는 폭력. 과연 이러한 폭력을 ‘악’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 만약 이것이 '악'이라면,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러한 '악'을 타도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교묘한 정치적 제스처는 어떠한가. 그것이야말로 더 끔찍한 ‘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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