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지혜로운 철학자가 천명하였듯이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 침묵은 어쩌면 최소한의 양심이나 예의 같은 게 아닐까. 삶에도 뼈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의 성분은 오로지 말할 수 없는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을 것이리라. 말이라는 것은 대저 얼마나 본질로부터 먼 곳에 있는가. 그것은 얼마나 남루하고 곤궁한가. 우리는 묵직한 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사막을 횡단하는 한 마리 낙타처럼 육중한 말들 속에 파묻혀 끝끝내 고독하리라. 무수한 말들은 모조리 실패할 운명이다. 세계의 모든 비밀은 말 속에서 더욱 더 견고하게 은폐될 것이므로. 말이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체념 속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쓰고 그냥 살았다.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은 결국 내 삶의 언저리에서 변죽만 울려댈 것이었다. 그러나 말문이 막혀버린 세헤라자데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임을 이제는 알겠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끊임없이 자맥질을 하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굴러 떨어질 바위를 열심히 밀어올리는 시지푸스처럼, 절망적이고도 힘차게 무슨 말이든 지껄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쓴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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