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대
토마스 빈터베르크 감독, 울리히 톰센 외 출연 / 인조인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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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68혁명의 자유분방한 기운이 감돌던 시절, 덴마크의 어느 대저택을 상속받은 에릭과 안나 부부가 지인들을 불러모아 주거생활공동체를 꾸린다. 오랫동안 폐허였던 공간은 어느덧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따듯한 온기로 가득 차고 저녁마다 파티 같은 나날이 이어진다, 공동체는 이상적으로 운영되어가는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릭의 불륜이 드러나고, 안나는 남편의 내연녀까지 공동체 안에 흡수하려 하지만, 평화롭던 공동체는 내연녀의 등장으로 술렁이기 시작하는데 쩜쩜쩜.

 

얼마 전에 본 프랑스 영화 <5 to 7>도 그렇고, 유럽 쪽에선 배우자의 정부와도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것을 소탈하면서도 이성적인 태도로, 박애주의를 실천하는 대인배적 자질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삼각관계의 해법에 있어서 우리나라 일일드라마가 얼굴에 물 뿌리고 머리끄댕이 잡아가며 욕망의 쟁투를 창자까지 꺼내 보일 듯 노골적으로 묘사한다면, 내가 본 유럽영화 속 주인공들은 속으로는 비록 피눈물이 흐를망정 겉으로는 공손한 대화를 주고 받는 일요일 아침 교회당의 크리스천 무리 같달까.

 

배우자에 대해 일말의 소유욕도 이성애적 감정도 없다면, 더 이상 섹스하고 싶지도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가족애와 동료애만 남았다면- 넓은 아량과 용기 그리고 약간의 무관심을 발휘하여 상대의 정부까지 포용하려는 시도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뭇 관용적이고도 획기적으로 보이는 그러한 관계의 이면은 기실 불안과 혼돈, 긴장과 갈등의 연속일 것이며 무의식의 밑바닥에 서로에 대한 미련과 애증이 조금이라도 고여 있다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안나가 점차 밑도끝도 없이 망가지다가 마침내 공동체를 떠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걸 보면 역시.

 

계기야 어찌되었든 한 번 신뢰가 깨어져버린 사이라면 복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관계에 앙금이 쌓인 경우라면야 걸러내고 털어낼 수 있지만, 금이 가버린 경우라면, 애써 부인하거나 은폐할 것도 아니고 관대하게 포용하고 인내할 것도 아니라, 그만 초연하게 돌아서는 편이 지혜로울지 모른다. 그리고 그럴 땐 도마뱀이 제 꼬리를 잘라내듯이 단호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으며 사랑은 세계의 실존을 낭만적으로 체감하는 유일한 방도로서 일생에 걸쳐 계속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는 만큼, 딱 그만큼 실로 아름답다고, 공동체를 떠나는 안나의 쓸쓸한 뒷모습을 향해 외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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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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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아름다운 무늬, 인문학. 코앞에 펼쳐진 생활의 과제들을 처리하느라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지만, 그래, 인문학이 있었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인문학적 사고가 가능하려면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독립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한 구체적인 훈련법으로 글쓰기, 운동, 낭송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셋 다 자신의 신체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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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서울시지도 행정 (한글표기) - 110-SE-PL
나우맵 편집부 엮음, (주)나우맵소프트 그림 / 나우맵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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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곳을 뒤져보면 어떻게든 나 살 데도 있겠지. 신문 활짝 펼쳐놓았을 때의 1.5배 정도 된다. 네 귀퉁이 끝에는 각각 부천, 일산, 위례, 별내까지 나옴. 지도가 담겨있던 통은 반으로 잘라서 부츠 심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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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에 반대한다 -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아르노 그륀 지음, 김현정 옮김 / 더숲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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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부제)서는 공감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예컨대 밀그램의 실험에서 실험설계자의 명령에 따라 고문을 수행하던 피험자들이 자신들의 조작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을 지켜보며 겪는 심리적 불안과 긴장, 바로 그러한 정서적 동요야말로 맹목적 피지배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체 반응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고도 단순평범한 얘기지만 이 이상의 결론을 제시하기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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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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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 <하나 뿐인 지구> ‘물건 다이어트‘ 편을 보고 저자를 알게 되어 이 책까지 읽어봤다. 읽고서 나 역시 큰 영향을 받아 알라딘 중고매장에 캐리어 2번 끌고가 안 보는 책 내다 파는 것을 시작으로 옷장, 창고, 냉장고까지 일거에 대청소를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안에 물건이 넘쳐나는 현실이다. 다른 건 별 미련이 없는데 화장품, 옷, 책 만큼은 어떤 이유라도 달아 끝내 저장을 하고야 마는 걸 보면 나의 궁극의 허영과 향락의 방향을 알 수가 있다. 비록 이 책 한 권 읽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지는 못할 지라도 적어도 한 번 쯤 집안 대청소는 하게 된다는 점에서 적극 추천할 만 하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대목들. 역시 책에 관한 내용이 관심을 끈다.

 

*

 

"물건의 쓰임새보다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는 목적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물건을 자신의 내면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물건은 점점 늘어만 간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내면을 쉽게 알릴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물건은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둔갑해버리기 때문이다. 즉, 물건이 자기 자신이 된다. 물건이 곧 ‘나’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물건은 한층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본래 기능으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도 아닌 물건은 서서히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물건 = 나’이므로 ‘물건을 늘리는 일 = 나를 늘리는 일’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 사들인 물건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한다. 물건 자체가 자신의 가치, 나아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건을 사서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것이다."

"나는 거실 복도의 한쪽 벽면을 전부 책장으로 메우고 그 안에 책을 가득 채워 넣었다. 책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정작 제대로 읽은 것은 별로 없다. 읽은 책조차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대학 시절에는 현대사상 등 일단 어려워 보이는 책을 골랐고, 20세기 최고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장편소설들도 열심히 사 모았으나 읽지 않고 훌훌 넘겨보기만 한 것도 많다. 몇 년이나 방치해두었기 때문에 책을 사 모으는 취미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읽은 책을 버리지 못하거나 읽을 예정도 없는 책을 계속 쌓아둔 이유를 지금은 확실히 안다. 나는 책장을 통해 나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어요. 책장을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모든 분야에 폭넓은 관심이 있고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죠. 이렇게나 많이 갖고 있으니까요. 이해하지 못할망정 어려운 책도 읽고 있다니까요. 나는 특별난 것 없이 평범하고 말도 별로 없는 편이지만 내면에는 이만큼 풍부한 지식이 들어 있어요. 나는 지적이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에요.’

읽은 책을 유익하게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책을 계속 늘려갔다. 나는 나의 가치를 책장에 진열된 책의 분량으로 드러내려고 했고, 마침내는 읽지도 않은 책을 나 자신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책은 내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DVD, CD도 마찬가지다. 나는 앤티크 소품이나 화려한 식기, 비싼 카메라로 내 가치를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나처럼 갖고 있는 물건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람은 좋아하는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그렇게 소중한 물건을 버리는 건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좋아하기에 자신의 일부로 여겨지는 물건. 그런 물건을 버리는 일은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자기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라는 미래에 필요한 물건과 ‘예전에’라는 과거에 필요했던 물건을 버려라. 그러면 현재만이 남는다. 물건을 버림으로써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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