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쟁과 타도만이 성장의 유일한 방식은 아닐 것 같다. 성장이 좋음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면, 좋은 무리와 어울림으로써 그들에게 영향 받아 나 자신도 덩달아 좋아지는 것, 이것도 성장의 한 가지 방식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무리 안에 들어가 그들과 공통개념을 분유하기 시작하는 것,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그 안의 리듬을 타는 것. 감응(정서모방)을 일으키는 것.

 

2 니체는 힘을 주고, 스피노자는 기쁨을 준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은, 올라타서 바라본 세상이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3 "아버지가 그랬다, 시란 쓸모없는 짓이라고. 어느날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기왕이면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해보라고. 쓸모없는 짓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게 나의 슬픔이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다." 시집 <목련전차>에 들어있는 손택수 시인의 말. 쓸모없는 짓이 비단 시 뿐일까. 허망한 줄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 허무에의 긍정.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사명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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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절미 먹고 배탈 났다는 할아버지한테 약 드렸더니 좀 있다가 다 토했다. 주룩주룩 토한 것이 전부 다 맹물이었다. 인절미가 힘없이 녹아있는 맹물이었다. 속이 안 좋아서 물 밖에 못 먹었다고 주룩주룩 입을 닦아주면 또 주룩주룩 마침내 거죽만 남은 할아버지가 텅 빈 물병 같은 표정으로 잠시만 쉬어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무서웠다. 이렇게 토하고 토하다가 결국 픽 죽어버릴 것 같아서.

 

흥건해진 약국 바닥이 괜찮았던 건 결코 내가 너그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죽음을 환기하게 된 순간 앞에서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계속 괜찮을 뻔 했는데, 할아버지가 별안간 설사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 역시 설사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여기서 누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더니 다행히 휴지를 둘둘 말아서 밖으로 나가셨다. 멀건 토사물만 남겨놓고 허깨비처럼 휘청휘청.

 

이것이 어젯밤의 일이다. 오늘 점심때 할아버지가 믿을 수 없이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서는 다 나았다고 한다. 어젯밤에 똥 어디서 누셨는지는 안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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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2012-05-2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독서리뷰를 보던 중 서재까지 와서 본의아니게(타인의 사유의 흔적들을 훔쳐보려는 의도는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ㅠㅠ) 생명연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도둑글읽기처럼 보고만 가도 흔적은 남지 않겠지만, 아닌 밤중에 킬킬대는 재미를 주신 부분에 대해 감사의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 댓글을씁니다. 감사드려요.

수양 2014-03-21 19:1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생명연습 코너에 글쓰는 일이 뭔가 괜한 헛짓거리 같아서 언젠가부터 안 쓰고 있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지금은 정체 상태지만 나중에 다시 정성들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슬픔과 원망, 공포와 두려움 따위에 질려 딱딱하게 굳어지지 말 것. 왜냐하면 딱딱하게 굳어져버리는 것이야말로 전 우주적 댄스에 동참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니까. 아니, 그것은 실존하면서도 실존하지 못하는 자기 모순에 다름 아니니까. 딱딱해지지 말고 대신 고통을 멀리서 조감할 것. 그리하여 그 고통이 나와 함께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있음을 알 것. 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 고통에 아름답게 화답하고 있다는 뜻. 아름답게 조응하고 있다는 뜻. 그렇게 무엇에든 화답할 것. 조응할 것.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대로 표현할 것. 그리하여 우리 각자가 분유하고 있는 실체의 부분들을 마음껏 펼칠 것. 웃고 뛰고 구르고 만세 부르고 춤 출 것. 전 우주에 흘러 넘치는 리듬에 몸을 맡길 것. 만물과 함께 약동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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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엑스트라바간자 [한글자막] - 베르비에 음악제 10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
키신 (Evgeny Kissin) 외 / 소니뮤직(DVD)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탄성과 환희, 황홀한 웃음을 안겨주는 이런 DVD야말로 '소장각'이다. Happy Birthday 변주곡은 너무나 즐거워서 듣다보면 절로 깔깔거리게 된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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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적 자아를 지탱하는 것은 공허다. 그들은 거대한 무(無)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마치 신기루처럼 혹은 투명인간처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 자체가 부조리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어쩌면 유일하게 '없음'을 눈치채버린 사람들인지 모른다. 히스테리는 그것에 대한 형벌인지도.

 

그들은 끊임없이 몰두할 만한 ‘어떤 것’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무’라고 하는 자기를 덮어 씌워버림으로써 간신히 윤곽을 만들어 낸다. 오로지 그 윤곽을 통해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안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은 무엇보다도 원대하고 강력해야 한다. 거대한 공허를 완벽하게 덮어 씌워버리기 위해서.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튼튼해야 한다. 쉽게 구멍이 뚫려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그리로 모든 게 다 빨려들어가 버릴 테니까.

 

원대하고 강력하고 견고하고 튼튼한 것. 실로 막강한 것. 그런 게 사랑, 부, 권력, 명예 따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테리적 자아한테 그런 것들은 너무 약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인데 관계라는 건 허물어지기가 너무도 쉬우니까. 그렇다면 히스테리적 자아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택할까. 그는 진리를 택할 것이다. 진리는 결코 허물어지지 않으니까. 아니,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리니까. 그는 아마도 진리 중에서도 가장 형이상학적인 진리- 철학이나 신학에 목 매달게 될 것이다. 사제의 학문에 목 매다는 것이 그가 생을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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