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절미 먹고 배탈 났다는 할아버지한테 약 드렸더니 좀 있다가 다 토했다. 주룩주룩 토한 것이 전부 다 맹물이었다. 인절미가 힘없이 녹아있는 맹물이었다. 속이 안 좋아서 물 밖에 못 먹었다고 주룩주룩 입을 닦아주면 또 주룩주룩 마침내 거죽만 남은 할아버지가 텅 빈 물병 같은 표정으로 잠시만 쉬어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무서웠다. 이렇게 토하고 토하다가 결국 픽 죽어버릴 것 같아서.

 

흥건해진 약국 바닥이 괜찮았던 건 결코 내가 너그럽기 때문이 아니었다. 죽음을 환기하게 된 순간 앞에서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계속 괜찮을 뻔 했는데, 할아버지가 별안간 설사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 역시 설사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여기서 누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더니 다행히 휴지를 둘둘 말아서 밖으로 나가셨다. 멀건 토사물만 남겨놓고 허깨비처럼 휘청휘청.

 

이것이 어젯밤의 일이다. 오늘 점심때 할아버지가 믿을 수 없이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서는 다 나았다고 한다. 어젯밤에 똥 어디서 누셨는지는 안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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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2012-05-2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독서리뷰를 보던 중 서재까지 와서 본의아니게(타인의 사유의 흔적들을 훔쳐보려는 의도는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ㅠㅠ) 생명연습을 읽게 되었습니다. 도둑글읽기처럼 보고만 가도 흔적은 남지 않겠지만, 아닌 밤중에 킬킬대는 재미를 주신 부분에 대해 감사의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 댓글을씁니다. 감사드려요.

수양 2014-03-21 19:1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생명연습 코너에 글쓰는 일이 뭔가 괜한 헛짓거리 같아서 언젠가부터 안 쓰고 있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지금은 정체 상태지만 나중에 다시 정성들여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