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적 자아를 지탱하는 것은 공허다. 그들은 거대한 무(無)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마치 신기루처럼 혹은 투명인간처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 자체가 부조리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어쩌면 유일하게 '없음'을 눈치채버린 사람들인지 모른다. 히스테리는 그것에 대한 형벌인지도.

 

그들은 끊임없이 몰두할 만한 ‘어떤 것’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무’라고 하는 자기를 덮어 씌워버림으로써 간신히 윤곽을 만들어 낸다. 오로지 그 윤곽을 통해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안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은 무엇보다도 원대하고 강력해야 한다. 거대한 공허를 완벽하게 덮어 씌워버리기 위해서.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튼튼해야 한다. 쉽게 구멍이 뚫려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그리로 모든 게 다 빨려들어가 버릴 테니까.

 

원대하고 강력하고 견고하고 튼튼한 것. 실로 막강한 것. 그런 게 사랑, 부, 권력, 명예 따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테리적 자아한테 그런 것들은 너무 약하다. 그런 것들은 모두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인데 관계라는 건 허물어지기가 너무도 쉬우니까. 그렇다면 히스테리적 자아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택할까. 그는 진리를 택할 것이다. 진리는 결코 허물어지지 않으니까. 아니,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리니까. 그는 아마도 진리 중에서도 가장 형이상학적인 진리- 철학이나 신학에 목 매달게 될 것이다. 사제의 학문에 목 매다는 것이 그가 생을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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