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년 씨리즈 - 슈퍼스타 조선쌍놈과 우주대도 방숙이 이말년 씨리즈 1
이말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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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이말년 씨리즈. 종이책 편집도 아름답다. 얼마 전 서울 어느 유수의 만화방에 놀러가서 이걸 보는데 표지가 어찌나 뜯어지기 일보직전으로 너덜너덜하던지 가히 새로운 유형의 젠가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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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장애의 이해와 치료
콜비 피어스 지음, 이민희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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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은 자기 자신을 내심 보살핌 받아야 할 어린아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상한 퇴행적 나르시시즘이 아닐까 부끄럽고 민망하면서도 이 책에 기대어 판단을 해보면 확실히 내 심리적 기질은 회피애착 장애아동의 그것에 가까워 보인다. “애착장애아를 (...) 칭찬하는 것은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이런 반응에 아동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며, 심지어 아동은 적극적으로 저항할 것입니다(예: 당신이 나를 좋은 아이로 생각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아동은 당신의 긍정적 관점을 수용할 것이며, 이는 아동 스스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라는 마지막 문구는 씁쓸하다. 아동의 심리가 너무나 잘 이해되므로. 책을 다 읽고 나서 책표지의 아이 손에 가만히 내 손을 포개어 봤다. 세 살 아기 쯤 되려나.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참 조그마한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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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세계 - 유배지에서 성스러움이 가능할까?
이종영 지음 / 울력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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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걸 처음 접했던 게 수유너머가 해체되기 전 해방촌에서 수업 들으면서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삶에 대한 의문과 배우려는 의지와 열망으로 가득했던, 뇌가 가장 순수하고도 말랑말랑하던 시절이었다. 들뢰즈의 영향을 받은 선생님들로부터 니체와 스피노자를 배웠고 딱히 어떤 신앙이나 사상도 아는 게 없던 순수 백지 상태였던 나에게는 그게 일종의 최초의 철학적 각인이었다. 눈 뜨고 처음 받아들인 것이 내재성의 철학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재성의 철학에 대한 (가히 모태신앙에 가까운) 어찌할 수 없는 믿음이 있다. 만일 그때 해방촌에서 불교 철학을, 바울 신학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허풍을 좀 떨면 아마 거기서 도둑질을 가르쳐줬어도 나는 철썩 같이 믿어버렸을 것이다. 뭐 그런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 개인적인 이력 때문에, 자아와 영혼(=영성)을 분리하고, 이 생을 유배로, 환각으로, 영혼의 소외 속에서 자아의 환상에 사로잡힌 이들이 벌이는 무지의 아수라로, 환상적 관념이 만들어낸 세계로, 궁극적으로는 빠져나와야 할 비실재로 여기는 저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조하기는 어려웠다. 내재성 철학의 각인을 당한 나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 모든 초월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설령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무명(無明)의 아수라 속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기 안에 스스로 그에 버금가는 가치를 창안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 말미에 저자가 인용한 <레 미제라블>의 비엥느뷔 주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성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예외이다. 그러나 의인이 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방황하라, 죄를 지으라, 무너지라, 그러나 의인이 되라, 죄를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법률이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 그것은 천사의 꿈이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죄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죄라는 것은 일종의 중력이다.” -295쪽

 

이 책은 불교 철학과 교차하면서 라캉의 실재계 개념을 좀 더 종교적으로 육박해 들어가고 있고 그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마음의 성질에 대한 통찰 역시. 그러나 내게 기독교 신앙이 없어서인가. 이 삶을 순례나 유배로 보는 관점 자체에 대해서는 글쎄. 내 생각에,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순례나 유배를) 떠나 온 게 아니다. 그저 여기, 이 "허무의 왕국"이 우리의 근거지일 뿐이다. 여기서 났고 여기서 소멸할 것이다. 전인권 말대로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도덕적 자세는 영성을 추구하기보다 투철하게 지옥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테뉴와 사르트르와 루쉰의 자세를 존경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역시 퍽이나 답답한 듯. 성스러움에 다가가기 위해 자아 및 자아가 쌓은 관념을 버려야 한다면서도 끝내 결론부에 이를 때까지 선악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기독교 진리 안에 머무는 이 책의 저자한테서 답답함을 느낀 것 만큼이나.

 

하지만 여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종교적 수련을 통해서든 최면과학의 도움에 의해서든 일시적으로 실재계적 상태를 체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적인 관조, 자아를 놓아버리고 몸을 초월한 경험 -그 또한 역설적이게도 몸을 통해 경험해야 하겠지만- 이후에는 모종의 각성과 회심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어쩔 것인가? 높은 고도를 비행하고 돌아오면 우리 앞엔 여전히 치열하게 헤쳐나가야할 상징계적 현실이 주어져 있다. 우리가 걸려든 이 그물망 안에서 우리는 그저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적극적으로 이 기만적인 세계에 빠져들어서 이토록 감각적인 지옥을 사랑하고 지옥을 한결 더 끔찍한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며 더욱 더 지옥 같이 된 지옥을 다시금 열렬히 사랑하고 지옥에서 춤추고 지옥의 대지에 눈물의 입맞춤을 하는 것. 이 안에서 기꺼이 치욕스런 겁간을 당하는 것. 다시는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온갖 능욕을 다 겪고 싶다. 이것이 회로 안에 갇힌 자의 윤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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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해질 무렵 길을 걷다가 어느 아파트 단지 쪽으로 긴 꼬리를 드리운 무지개를 봤다. 기이하고 아름다웠다. 감탄을 연발하던 중에 또 무지개를 봤다. 뒤로 연한 무지개가 하나 숨어있었던 것. 이후 가던 길을 재촉하다 한 번 더 무지개를 만났다(사진). 예전에 이사할 때,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던가, 텅 빈 마룻바닥 구석으로 평행사변형의 무지개가 연하게 스며든 적이 있었다. 이 모든 무지개를 똑같은 한 사람이랑 같이 봤다. 계속 이렇게 둘이서 길을 걸으며 무지개를 볼 수 있을까. 같은 사람이랑 연달아 계속해서 무지개를 함께 볼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까. 어젯밤에는 공중 부양하는 꿈을 꿨다. 어떤 요가 사파에 들어가서 일정 기간 수련을 하면 그걸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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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0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30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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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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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에서 저자는 철학자와 하녀 사이의 교통을 얘기하지만 글쎄 내 얄팍한 경험으로는 ‘순수한 철학자들’ 속에서 피어나는 진리가 있고 ‘순수한 하녀들’ 속에서 피어나는 진리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섞이지 않는, 질적으로 상이한 차원의 진리인 것 같다. 냉탕과 전혀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온탕이 비로소 온탕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갖고 또 냉탕은 냉탕대로 그렇듯이. 교통에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보다 온탕과 냉탕에 번갈아 몸담그면서 감각의 저릿한 분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회의와 번복 속에서의 진자운동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질까.

 

2 앞서 읽은 <상류의 탄생>이 미국의 밝고 훌륭한 면을 보여준다면 이 책에 나오는 미국은 자못 음산하다(아래). 신문도 그렇겠지만 책도 마찬가지로 기저에 깔린 정치적 논조가 상반되는 책을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양쪽 모두 끄덕이며 감탄할 만한 꺼리가 있다.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대체로 탈규제를 통한 시장의 자유화, 공적인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 등을 추진한다. 다만 정부의 역할을 최소로 한정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과 달리 신자유주의 정부는 매우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시장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지만, 시장을 위한 개입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이때 정부가 빈번히 표방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질서를 지키자고 말하는 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문제는 법질서에 대한 강조가 시장 자체의 실패(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公安)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맞물려 위와 같은 이유로] 수형인구가 폭증하면서 미국의 교정시설은 크게 부족해졌다. 정부는 이 문제를 민영교도소를 세워서 해결하려고 했다. 민영교도소 설립은 공공 부문의 지출을 줄이려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이념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 1983년에 세워져 미국 최대의 민영교도소가 된 미국교정기업(CCA, 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은 1990년대 후반에는 뉴욕증권시장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미국 5대기업에 3년 연속 선정될 정도였다고 한다. (...) 공적인 것의 민영화, 시장의 효율성, 모든 것을 상업화하는 정신의 극한에서 하나의 수익모델로서 ‘인간 수용소’가 출현한 셈이다. (...) 수용소가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자본의 수익과 관련 있는 산업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p.181~182

 

3 그런데 책을 왜 이렇게 맥아리 없이 만들어 놨는지. 불필요한 띠지와 책싸개를 없애버리고 책표지 하나만 빳빳한 걸로 붙여놨어도 좋았을 텐데. 내구력이 너무 떨어진다. 시간을 쪼개 며칠간 여기저기 갖고 다니면서 읽다보니 금새 헌책 같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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