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세계 - 유배지에서 성스러움이 가능할까?
이종영 지음 / 울력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이란 걸 처음 접했던 게 수유너머가 해체되기 전 해방촌에서 수업 들으면서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삶에 대한 의문과 배우려는 의지와 열망으로 가득했던, 뇌가 가장 순수하고도 말랑말랑하던 시절이었다. 들뢰즈의 영향을 받은 선생님들로부터 니체와 스피노자를 배웠고 딱히 어떤 신앙이나 사상도 아는 게 없던 순수 백지 상태였던 나에게는 그게 일종의 최초의 철학적 각인이었다. 눈 뜨고 처음 받아들인 것이 내재성의 철학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내재성의 철학에 대한 (가히 모태신앙에 가까운) 어찌할 수 없는 믿음이 있다. 만일 그때 해방촌에서 불교 철학을, 바울 신학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허풍을 좀 떨면 아마 거기서 도둑질을 가르쳐줬어도 나는 철썩 같이 믿어버렸을 것이다. 뭐 그런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 개인적인 이력 때문에, 자아와 영혼(=영성)을 분리하고, 이 생을 유배로, 환각으로, 영혼의 소외 속에서 자아의 환상에 사로잡힌 이들이 벌이는 무지의 아수라로, 환상적 관념이 만들어낸 세계로, 궁극적으로는 빠져나와야 할 비실재로 여기는 저자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조하기는 어려웠다. 내재성 철학의 각인을 당한 나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 모든 초월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설령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무명(無明)의 아수라 속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기 안에 스스로 그에 버금가는 가치를 창안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 말미에 저자가 인용한 <레 미제라블>의 비엥느뷔 주교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성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예외이다. 그러나 의인이 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이다. 방황하라, 죄를 지으라, 무너지라, 그러나 의인이 되라, 죄를 최소화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법률이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 그것은 천사의 꿈이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죄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죄라는 것은 일종의 중력이다.” -295쪽

 

이 책은 불교 철학과 교차하면서 라캉의 실재계 개념을 좀 더 종교적으로 육박해 들어가고 있고 그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마음의 성질에 대한 통찰 역시. 그러나 내게 기독교 신앙이 없어서인가. 이 삶을 순례나 유배로 보는 관점 자체에 대해서는 글쎄. 내 생각에,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순례나 유배를) 떠나 온 게 아니다. 그저 여기, 이 "허무의 왕국"이 우리의 근거지일 뿐이다. 여기서 났고 여기서 소멸할 것이다. 전인권 말대로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도덕적 자세는 영성을 추구하기보다 투철하게 지옥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테뉴와 사르트르와 루쉰의 자세를 존경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 역시 퍽이나 답답한 듯. 성스러움에 다가가기 위해 자아 및 자아가 쌓은 관념을 버려야 한다면서도 끝내 결론부에 이를 때까지 선악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기독교 진리 안에 머무는 이 책의 저자한테서 답답함을 느낀 것 만큼이나.

 

하지만 여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종교적 수련을 통해서든 최면과학의 도움에 의해서든 일시적으로 실재계적 상태를 체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적인 관조, 자아를 놓아버리고 몸을 초월한 경험 -그 또한 역설적이게도 몸을 통해 경험해야 하겠지만- 이후에는 모종의 각성과 회심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어쩔 것인가? 높은 고도를 비행하고 돌아오면 우리 앞엔 여전히 치열하게 헤쳐나가야할 상징계적 현실이 주어져 있다. 우리가 걸려든 이 그물망 안에서 우리는 그저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적극적으로 이 기만적인 세계에 빠져들어서 이토록 감각적인 지옥을 사랑하고 지옥을 한결 더 끔찍한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며 더욱 더 지옥 같이 된 지옥을 다시금 열렬히 사랑하고 지옥에서 춤추고 지옥의 대지에 눈물의 입맞춤을 하는 것. 이 안에서 기꺼이 치욕스런 겁간을 당하는 것. 다시는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온갖 능욕을 다 겪고 싶다. 이것이 회로 안에 갇힌 자의 윤리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