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거의 모든 것 -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81가지
김병훈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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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그 무언가에 대해 정성들여 쓴 책을 읽고 나면, 알 수 없는 따스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설령 실용서라도 그와 같은 독서 체험은 가능하다. 이 책이 그렇다. "자전거를 사라, 만약 네가 살아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경구로 시작되는 이 책은, "우리 땅이 좁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다면, 꼭 한번 자전거로 이 땅의 속살을 깊숙이 파고드는 강변길을 달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땅이 얼마나 아름답고 무구한 역사를 가진 풍경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라는 저자의 제언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정말로, '자전거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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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널 경멸해왔다. 요즘도 이따금 네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을 읽을 때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이 역겨운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 대한 관심을 확 끊어버릴 수 없는 까닭은 네 글에 면면히 흐르는 섬세한 지성 때문이리라. 그래, 너는 재기가 있고 명석하다. 그래서 너는 아름답지. 아, 차라리 네가 시시하기라도 해버렸다면! 그렇다면 나는 당초에 너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을 텐데. 이 점이 나를 얼마나 곤혹스럽게 하는지 너는 영원히 모르겠지.

 

왜 나는 너를 혐오하는가. 너는 얄팍하다. 피상성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얄팍하지. 하지만 얄팍한 가운데서도 주어진 조건 안에서 눈물겨울 만큼 정직하고 겸허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있어. 그러나 너는 얄팍하면서 오만하다. 얄팍한 주제에 권위적이고, 얄팍한 주제에 어른 행세를 하려 든다. 네 역량을 갉아먹는 너의 가장 큰 폐단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그 특유의 교만함이다. 네 교만이 너로 하여금 너무도 쉽게 정의와 진리를 확정짓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너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쉽게 그럴싸한 참된 것을 발견해 내어서는 그 뭣도 아닌 앎을 전시하고 계몽하려 한다. 아, 거기서 오는 역겨움을 대체 어쩔 것인가. 구제불능의 그 끔찍한 지적 속물주의를 어쩔 것인가.

 

네가 추구하는 정의라는 것은 내가 볼 땐 순 나이브하기 짝이 없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너는 깊이 고민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너는 너 자신과 맹렬하게 싸우지 않는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 자신에 대해 모질게 회의하려고 하지 않아. 모르지. 속으로는 열심히 회의하는지도. 그러나 너는 설령 너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회의하더라도 그것을 좀처럼 글로 적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회의한 것을 글로 쓰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거의 다 헛소리고 개소리다. 그런 것은 그저 다 매캐한 연막 같은 것에 불과하단 말이다. 하지만 너는 특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영원히 그 연막을 걷어내지 못하겠지.

 

사회적 능력, 인간관계, 지적 경험, 네가 갖춘 교양과 지식 등 갖가지 방면에서 너는 무의식적으로 끝없이 너 자신을 스타일링하려고 한다. 좀 더 파고들어도 모자랄 시간을, 자기를 예쁘게 연출하고 포장하는데다가 다 써버린다. 너의 글을 보면 마치 집 앞 슈퍼에 나갔다 올 때도 화장을 하는 여자들이 떠오른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취향의 강요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대체 그 화장이 무슨 소용이냐. 그 화장 좀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냐.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내가 볼 때 네가 하는 화장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그러더라. 자세를 필요로 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하여튼 너는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으니 이건 뭐 희한한 태생적 기질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질 않는다.

 

너는 대체 너의 민낯을 한번이라도 정직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들여다보고 울어본 적은 있느냐. 운 것을 글로 써본 적은 있느냐. 써놓은 것을 보고 역겨워서 더 크게 울어본 적은 있느냐. 너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다. 영원히 없을 거다. 그게 바로 너의 한계다. 네가 영영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너의 끔찍한 한계다. 너는 너 자신을 심지어 스스로에게조차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아. 왜일까. 그건 네가 늘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지. 근본적으로 너는 너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별로 없는 거야. 오로지 자존심만 있지. 그래서 너의 에고이즘은 견고하지 못하다. 애처로울 만큼 위태롭다.

 

자기 자신에게 투철하지도 않으면서 타인으로부터는 끝없이 인정과 선망을 얻고자 애쓰는 너의 끊임없는 자기 연출, 나이브함, 허술한 에고이즘, 어설픈 소녀 취향의 정치적 올바름, 속물성과 허영기... 아, 나는 정말이지 네 등짝이야말로 발로 차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도무지 네 밉상스런 글을 쉽사리 끊질 못하는 것일까. 네 글에서 나의 일면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너를 혐오하기에는 우리가 꽤나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저 술 먹고 네 생각이 나서 떠들어댔다고 해두자. 역시 나는 너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불쾌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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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책의 세계라는 것을 접하였을 때는 그 방대한 규모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급기야 온갖 도서 분야를 두루 섭렵하여 마침내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추고야 말겠다는 터무니없는 결심을 품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어나가면 갈수록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하는 일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고 차라리 가장 본질적으로 여겨지는 분야의 고전적인 저작들을 공들여 독파해 나가는 편이 훨씬 의미가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 요즘 들어 춤의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는 춤이 소셜댄스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드는 의문은 과연 춤을 다양한 사람들과 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은 해피데이에도 플로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잘 추는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인다. 예전에는 온통 잘 추는 사람들밖에 안 보여서 해피데이 출빠가 두려울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춤 추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사가 빠진 것처럼 몸의 중심을 못 잡고 들썩이는 사람, 화려하게 추는 듯 하지만 텐션이나 모멘텀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로 추고 있는 사람, 제멋에 겨워 추는 사람, 춤이 아니라 운동을 즐기고 있는 사람 등등. 물론 내가 이런 말 할 계제는 아니다. 내가 추는 춤도 동영상으로 찍어보면 틀림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게 될 테니. 그러나 여기서의 핵심은 내가 해피데이의 전반적 수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니 넘어가자.

 

아무튼 요는, 춤 실력이 예전에 비해 월등하게 향상됨에 따라 제너럴 현장에서의 나 자신의 선호가 점차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곡을 추더라도 나와 스타일이 맞는 상대를 만나 그 곡을 멋지고 아름답게 예술적으로 완성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 무척 파트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판의 아나키스트라고 자위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범동호회적 왕따나 다름없는 현재의 내 처지를 고려할 때, 나와 스타일도 수준도 딱 맞는 그런 100%의 파트너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파트너만 구해져도 내 춤인생에 대격변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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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 늦어져 지금 가면 한 시간도 채 못 출 거 같았는데도 기어코 갔다. 30분 만이라도, 딱 30분 만이라도 춤출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겠단 생각으로. 한 40분 정도 추고 온 것 같다. 춤이라는 건 참, 화려하고도 허망하다. 무상하고도 찬란하다. 그래서 눈이 부신 나머지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춤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허무감 때문에 발길을 끊게 되고 그러다가도 이내 또 미련과 그리움 때문에 다시 춤판을 기웃거리고... 가슴 벅찬 환희와 공포에 가까운 허무를, 열광과 환멸을, 충만과 결핍을, 의미와 무의미를,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과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쓸쓸함을,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춤! 참으로 알 수 없는 춤! 헛되고 헛되다며 치를 떨다가도 지하철에서 내려 스윙빠가 가까워져 오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난생처음 스텝이란 걸 밟았을 때처럼. '명랑한 허무주의'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춤판에 버금가는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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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절은 채로 빠 나오면서 더 이상 여한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윙감에 있어서 날마다 최고치 경신 중. 이 얼마만에 만끽하는 지복의 체험인가. 살아있었다. 나는 오늘 정말로 살아있었다.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었다. 스윙아웃 할 때의 느낌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점성이 붙고 있다. 갈수록 걸쭉해짐을 느낀다. 스텝은 더욱 더 경제적으로 구사되고 왼손은 구심력에 힘입어 저절로 뮤지컬리티 같은 게 이루어진다. 이 모든 변화가 점도의 상승 그리고 구심력의 증가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내 몸이 하나의 채찍이 된 기분. 더 탄력있고 더 낭창낭창하고 더 야무진 채찍이 되고 싶다. 요즘은 정말 춤 출때 너무너무 즐겁고 상대방도 행복해 하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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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뤄로서 리더의 리딩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유머가 필요한데, 이것은 단순히 춤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성격의 문제 내지는 삶의 방식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부분이 내 한계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유머를 몹시 좋아한다는 것. 나 스스로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일단은, 춤출때 여유를 잃지 말자. 이것저것 염두해둘 점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추진 말자. 서로 함께 즐거우려고 추는 게 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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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한 일인데, 확실히 스윙은 쉰다고 해서 그 실력이 퇴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 번 깨우친 것을, 몸은 몇 달이 지나도 놀라우리만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구체적인 패턴이 아니라, 커넥션과 모멘텀, 균형 감각을 기억하는 것이다. 멈출 때와 가야할 때를 알고 적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 균형 잡힌 턴을 할 줄 아는 것. 정중동과 동중정. 원초적이고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앎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부분들은 일단 습득을 하고 나면 반드시 '체화'가 된다. 신기해라.

 

 

사실상 리더가 백이면 백 가지의 바운스와 백 가지의 커넥션과 백 가지의 스윙아웃이 있는 셈인데, 각각의 리딩에 대해 최적으로 반응한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 그렇고 남의 깊은 속을 헤아리는 일이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예전보다는 확실히 다양한 스타일의 리딩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듯. 예전에 리더의 리딩을 읽는 화소가 10이었다면 지금은 한 100정도로 그 감도가 확장된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섬세해지려면 아직도 멀었다.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귀 기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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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인 풋워크를 지양할 것.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데 꼭 쓰리스텝일 필요는 없는 거다. 호 그리면서 갈 수도 있고 슬라이드 하면서 갈 수도 있는 거다. 좀 더 자유로워져 보자. 좀 더 변화를 줘보자. 자유. 변화. 표현. 이런 것들이 다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습관에 안주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새로운 걸 시도해 보자. 아울러 늘 명심할 것- 수용, 이해, 배려, 조화, 다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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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가 보여주는 간지의 비결은 무엇일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몸매와 비율 때문인가 하면 꼭 그런 거 같지도 않다. 국내 유명 고수 팔뤄 아무개 몸매도 카라처럼 마른 듯 날씬한 체형이지만 춤사위에서 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아무개 팔뤄의 춤이 익살맞고 신명나다면 카라는 좀 더 단정하고 절제된 듯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유독 견고해 보이는 상체 프레임도 그렇고, 확실히 카라의 춤에서는 어떤 절도 같은 게 느껴진다. 가령 이 여자는 아무리 웃긴 이야기를 들어도 결코 의자에서 뒤집어질 정도로는 웃지 않을 것 같다. 깔끔하고 차분하고 우아한 가운데 반짝이는 센스와 세련된 위트. 확실히 리더든 팔뤄든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사람 성격이 어느 정도는 짐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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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프리다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프리다의 춤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기예에 가까워 보인다. 기예적인 춤은 멋지고 대단해보이기는 하지만 예술적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샤론이나 카라 같은 팔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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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4-07-1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놓은 블로그에서 오래 전 일기들을 다시 읽었다. 반가워서 가져왔다.
 
여성 영웅의 탄생 - 융 심리학으로 읽는 강한 여자의 자기 발견 드라마
모린 머독 지음, 고연수 옮김 / 교양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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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여성 영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 여정은 여성성의 분리가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①자기 안의 여성성을 억압하고 배제시킨 여성 영웅이 ②남성성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③이내 성공이라는 허황된 열매를 얻게 되지만 ④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적 메마름을 느끼고 ⑤까마득한 하강의 시간을 거쳐 궁극적으로는 ⑥영적 각성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여성성과 남성성의 통합을 이룬다는, 그리고 이러한 자기 확장→내적 침잠→양성 통합의 과정이 반복된다고 하는, 기나긴 환상(環狀)의 여로를 이 책은 제시하고 있지만

 

정반합의 여로 자체가 진부한 것은 둘째 치고, 이를 '여성 영웅의 탄생' 과정으로 일반화하기에도 섣부르게 느껴진다. 남성적 시각에 의한 서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왜 자신의 여성성을 내면의 깊숙한 지층에서 뒤늦게 발굴해야 하지. 나는 고유의 여성성을 처음부터 적극 계발하여 저돌적이고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여성 영웅들을 많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과정이 왜 여성 영웅 신화의 초기 필수코스가 되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상징 질서에의 편입을 강하게 욕망한다는 점에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차라리 여성의 탈을 쓴 남성 영웅의 그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생의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이 공감가지 않았던 데는 저자가 설정한 여성 영웅의 캐릭터, 즉 자신의 여성성을 자진하여 거세하고 어머니와는 불편한 관계를 이루는 가운데 아버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의 딸’이라는 캐릭터가 나와 공유하는 지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리라. 돌이켜보면 나는 살아온 평생을 미끄덩거리는 물고기처럼 아버지로부터 포획되지 않기 위해 가히 신경증적으로 날뛰었으면 날뛰었지 한번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분투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 그렇다면 나는 여성 영웅이 아니었던 모양인가. 착각이었나. 그, 그럴 리가.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영웅이란 무엇인가. 당초에 여기서부터 나와 이 책은 그 견해가 엇갈린다. 여성성과 영웅에 대한 저자의 인식에서 느껴지는 남성중심적이고 보수적인 태도가 이 책을 몹시 지루하게 만든 큰 요인이 되었다. (덧붙임: 그야말로 성취지향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페미니즘인 듯. 유럽식 페미니즘에 대한 책은 없을까. 만약 그런 하위장르가 있다면 어쩐지 그쪽이야말로 심오한 고단수 여성학의 색다른 진경을 보여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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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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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철학자'를 작가는 목매달아 자살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교수형을 시켜버린 셈인데, 일말의 애증조차 없는 그 결연함이 매섭다. 골방철학자를 목매달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가 싶을 정도로. 우화적으로 처형시켜버리는 것과 수다스런 후일담을 늘어놓는 것- 과거의 트라우마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남녀 차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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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7-0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기철, 위기철..어디서 듣긴 들었는데..아, 바로 그 '무기 팔지 마세요'의 저자! 시네요.
아홉살 인생, 무기 팔지 마세요, 모두 초등학교 필독목록에 10년 넘도록 지겹도록(?) 권장되고 있는 책이예요(뭐 그런 책이 한 둘이 아니지만)-잠시 딴 얘기를-

'트라우마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 여자들은 '수다스런 후일담을 늘어놓는' 쪽이라 하셨는데,
좀 더 부연설명을 해주셨으면 해요..^^


수양 2014-07-04 08:51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이책을... 작가가 공지영 소설가 전남편이라고 하기에.... 그러니까 다소 가십적(?)인 이유로 읽게 된지라.. ㅎㅎㅎ 괜히 비교를 해보게 되었네요;;;

<무기 팔지 마세요>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은 걸요..^^

2014-07-04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가 살인을 막는 건가요..ㅎㅎ / 골방철학자를 처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능가..라니 재밌는 생각이십니다.

수양 2014-07-04 17:22   좋아요 0 | URL
작가가 골방철학자를 너무나 결연하게 처형시켜버리는 바람에 내심
뭐야 죽여버릴 것까진 없자나... 실종 정도로 처리할 수도 있자나..
생각했네요...

그러게요.. 수다가 살인을 막을 수도 있겠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