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책의 세계라는 것을 접하였을 때는 그 방대한 규모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급기야 온갖 도서 분야를 두루 섭렵하여 마침내 백과사전적 지식을 갖추고야 말겠다는 터무니없는 결심을 품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어나가면 갈수록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하는 일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지고 차라리 가장 본질적으로 여겨지는 분야의 고전적인 저작들을 공들여 독파해 나가는 편이 훨씬 의미가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데, 요즘 들어 춤의 세계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추는 춤이 소셜댄스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드는 의문은 과연 춤을 다양한 사람들과 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은 해피데이에도 플로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잘 추는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인다. 예전에는 온통 잘 추는 사람들밖에 안 보여서 해피데이 출빠가 두려울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춤 추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사가 빠진 것처럼 몸의 중심을 못 잡고 들썩이는 사람, 화려하게 추는 듯 하지만 텐션이나 모멘텀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로 추고 있는 사람, 제멋에 겨워 추는 사람, 춤이 아니라 운동을 즐기고 있는 사람 등등. 물론 내가 이런 말 할 계제는 아니다. 내가 추는 춤도 동영상으로 찍어보면 틀림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게 될 테니. 그러나 여기서의 핵심은 내가 해피데이의 전반적 수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니 넘어가자.

 

아무튼 요는, 춤 실력이 예전에 비해 월등하게 향상됨에 따라 제너럴 현장에서의 나 자신의 선호가 점차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곡을 추더라도 나와 스타일이 맞는 상대를 만나 그 곡을 멋지고 아름답게 예술적으로 완성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 무척 파트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판의 아나키스트라고 자위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거의 범동호회적 왕따나 다름없는 현재의 내 처지를 고려할 때, 나와 스타일도 수준도 딱 맞는 그런 100%의 파트너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파트너만 구해져도 내 춤인생에 대격변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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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 늦어져 지금 가면 한 시간도 채 못 출 거 같았는데도 기어코 갔다. 30분 만이라도, 딱 30분 만이라도 춤출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겠단 생각으로. 한 40분 정도 추고 온 것 같다. 춤이라는 건 참, 화려하고도 허망하다. 무상하고도 찬란하다. 그래서 눈이 부신 나머지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이 춤에 빠져들었다가 결국 허무감 때문에 발길을 끊게 되고 그러다가도 이내 또 미련과 그리움 때문에 다시 춤판을 기웃거리고... 가슴 벅찬 환희와 공포에 가까운 허무를, 열광과 환멸을, 충만과 결핍을, 의미와 무의미를,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과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쓸쓸함을,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춤! 참으로 알 수 없는 춤! 헛되고 헛되다며 치를 떨다가도 지하철에서 내려 스윙빠가 가까워져 오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난생처음 스텝이란 걸 밟았을 때처럼. '명랑한 허무주의'를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춤판에 버금가는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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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절은 채로 빠 나오면서 더 이상 여한이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윙감에 있어서 날마다 최고치 경신 중. 이 얼마만에 만끽하는 지복의 체험인가. 살아있었다. 나는 오늘 정말로 살아있었다.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었다. 스윙아웃 할 때의 느낌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점성이 붙고 있다. 갈수록 걸쭉해짐을 느낀다. 스텝은 더욱 더 경제적으로 구사되고 왼손은 구심력에 힘입어 저절로 뮤지컬리티 같은 게 이루어진다. 이 모든 변화가 점도의 상승 그리고 구심력의 증가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내 몸이 하나의 채찍이 된 기분. 더 탄력있고 더 낭창낭창하고 더 야무진 채찍이 되고 싶다. 요즘은 정말 춤 출때 너무너무 즐겁고 상대방도 행복해 하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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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뤄로서 리더의 리딩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유머가 필요한데, 이것은 단순히 춤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성격의 문제 내지는 삶의 방식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부분이 내 한계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유머를 몹시 좋아한다는 것. 나 스스로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일단은, 춤출때 여유를 잃지 말자. 이것저것 염두해둘 점들은 많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추진 말자. 서로 함께 즐거우려고 추는 게 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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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한 일인데, 확실히 스윙은 쉰다고 해서 그 실력이 퇴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한 번 깨우친 것을, 몸은 몇 달이 지나도 놀라우리만치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 구체적인 패턴이 아니라, 커넥션과 모멘텀, 균형 감각을 기억하는 것이다. 멈출 때와 가야할 때를 알고 적시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 균형 잡힌 턴을 할 줄 아는 것. 정중동과 동중정. 원초적이고 동물적이고 감각적인 앎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부분들은 일단 습득을 하고 나면 반드시 '체화'가 된다. 신기해라.

 

 

사실상 리더가 백이면 백 가지의 바운스와 백 가지의 커넥션과 백 가지의 스윙아웃이 있는 셈인데, 각각의 리딩에 대해 최적으로 반응한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 그렇고 남의 깊은 속을 헤아리는 일이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예전보다는 확실히 다양한 스타일의 리딩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듯. 예전에 리더의 리딩을 읽는 화소가 10이었다면 지금은 한 100정도로 그 감도가 확장된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섬세해지려면 아직도 멀었다.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귀 기울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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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인 풋워크를 지양할 것.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 데 꼭 쓰리스텝일 필요는 없는 거다. 호 그리면서 갈 수도 있고 슬라이드 하면서 갈 수도 있는 거다. 좀 더 자유로워져 보자. 좀 더 변화를 줘보자. 자유. 변화. 표현. 이런 것들이 다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습관에 안주하지 말고, 조금씩 꾸준히 새로운 걸 시도해 보자. 아울러 늘 명심할 것- 수용, 이해, 배려, 조화, 다정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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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가 보여주는 간지의 비결은 무엇일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몸매와 비율 때문인가 하면 꼭 그런 거 같지도 않다. 국내 유명 고수 팔뤄 아무개 몸매도 카라처럼 마른 듯 날씬한 체형이지만 춤사위에서 나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아무개 팔뤄의 춤이 익살맞고 신명나다면 카라는 좀 더 단정하고 절제된 듯한 춤사위를 보여준다. 유독 견고해 보이는 상체 프레임도 그렇고, 확실히 카라의 춤에서는 어떤 절도 같은 게 느껴진다. 가령 이 여자는 아무리 웃긴 이야기를 들어도 결코 의자에서 뒤집어질 정도로는 웃지 않을 것 같다. 깔끔하고 차분하고 우아한 가운데 반짝이는 센스와 세련된 위트. 확실히 리더든 팔뤄든 춤추는 걸 보고 있으면 그 사람 성격이 어느 정도는 짐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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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프리다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프리다의 춤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기예에 가까워 보인다. 기예적인 춤은 멋지고 대단해보이기는 하지만 예술적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샤론이나 카라 같은 팔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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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4-07-1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놓은 블로그에서 오래 전 일기들을 다시 읽었다. 반가워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