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널 경멸해왔다. 요즘도 이따금 네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을 읽을 때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이 역겨운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 대한 관심을 확 끊어버릴 수 없는 까닭은 네 글에 면면히 흐르는 섬세한 지성 때문이리라. 그래, 너는 재기가 있고 명석하다. 그래서 너는 아름답지. 아, 차라리 네가 시시하기라도 해버렸다면! 그렇다면 나는 당초에 너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을 텐데. 이 점이 나를 얼마나 곤혹스럽게 하는지 너는 영원히 모르겠지.

 

왜 나는 너를 혐오하는가. 너는 얄팍하다. 피상성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얄팍하지. 하지만 얄팍한 가운데서도 주어진 조건 안에서 눈물겨울 만큼 정직하고 겸허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있어. 그러나 너는 얄팍하면서 오만하다. 얄팍한 주제에 권위적이고, 얄팍한 주제에 어른 행세를 하려 든다. 네 역량을 갉아먹는 너의 가장 큰 폐단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그 특유의 교만함이다. 네 교만이 너로 하여금 너무도 쉽게 정의와 진리를 확정짓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너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쉽게 그럴싸한 참된 것을 발견해 내어서는 그 뭣도 아닌 앎을 전시하고 계몽하려 한다. 아, 거기서 오는 역겨움을 대체 어쩔 것인가. 구제불능의 그 끔찍한 지적 속물주의를 어쩔 것인가.

 

네가 추구하는 정의라는 것은 내가 볼 땐 순 나이브하기 짝이 없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너는 깊이 고민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너는 너 자신과 맹렬하게 싸우지 않는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 자신에 대해 모질게 회의하려고 하지 않아. 모르지. 속으로는 열심히 회의하는지도. 그러나 너는 설령 너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회의하더라도 그것을 좀처럼 글로 적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회의한 것을 글로 쓰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거의 다 헛소리고 개소리다. 그런 것은 그저 다 매캐한 연막 같은 것에 불과하단 말이다. 하지만 너는 특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영원히 그 연막을 걷어내지 못하겠지.

 

사회적 능력, 인간관계, 지적 경험, 네가 갖춘 교양과 지식 등 갖가지 방면에서 너는 무의식적으로 끝없이 너 자신을 스타일링하려고 한다. 좀 더 파고들어도 모자랄 시간을, 자기를 예쁘게 연출하고 포장하는데다가 다 써버린다. 너의 글을 보면 마치 집 앞 슈퍼에 나갔다 올 때도 화장을 하는 여자들이 떠오른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취향의 강요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대체 그 화장이 무슨 소용이냐. 그 화장 좀 안 하면 안 되는 것이냐.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내가 볼 때 네가 하는 화장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그러더라. 자세를 필요로 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하여튼 너는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으니 이건 뭐 희한한 태생적 기질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질 않는다.

 

너는 대체 너의 민낯을 한번이라도 정직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들여다보고 울어본 적은 있느냐. 운 것을 글로 써본 적은 있느냐. 써놓은 것을 보고 역겨워서 더 크게 울어본 적은 있느냐. 너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다. 영원히 없을 거다. 그게 바로 너의 한계다. 네가 영영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너의 끔찍한 한계다. 너는 너 자신을 심지어 스스로에게조차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아. 왜일까. 그건 네가 늘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지. 근본적으로 너는 너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별로 없는 거야. 오로지 자존심만 있지. 그래서 너의 에고이즘은 견고하지 못하다. 애처로울 만큼 위태롭다.

 

자기 자신에게 투철하지도 않으면서 타인으로부터는 끝없이 인정과 선망을 얻고자 애쓰는 너의 끊임없는 자기 연출, 나이브함, 허술한 에고이즘, 어설픈 소녀 취향의 정치적 올바름, 속물성과 허영기... 아, 나는 정말이지 네 등짝이야말로 발로 차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도무지 네 밉상스런 글을 쉽사리 끊질 못하는 것일까. 네 글에서 나의 일면을 발견하기 때문일까. 너를 혐오하기에는 우리가 꽤나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저 술 먹고 네 생각이 나서 떠들어댔다고 해두자. 역시 나는 너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불쾌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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