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en Souza - Essentials
카렌 수자 (Karen Souza) 노래 / 씨앤엘뮤직 (C&L)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자. 아, 수자. creep을 이토록 '데카당'하게 부를 수도 있구나. 재즈 편곡된 creep에는 쉬 런런런- 하는 절정부가 빠져있다. 뇌쇄적인 목소리의 그녀는 절규하기에는 너무도 나른한 걸까. 노래의 마지막 가사인 i don't belong here는 중의적으로 들린다. don't는 실은 want이기도 하며 will이자 will not이기도, should이자 shouldn't이기도 할 것이다. 정확히는 그 사이 어디 쯤일 것이다. 혼돈과 불안과 자조로 범벅이 된, 종잡을 수 없는 그 사이 어디 쯤의 미묘함일 것이다. 역시 데카당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레닌
볼프강 베커 감독, 다니엘 브륄 외 출연 / 영화인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투철한 인민정신으로 무장한 주인공의 어머니는 그 자체로 동독의 상징이다. 쇠약해진 그녀의 건강을 보전하기 위한 명목으로 주위 모든 혈육과 이웃이 총동원되어 벌이는 끝없는 조작과 기만적 연출. 눈물겹다 못해 차라리 희극적인 거짓말의 향연 속에서 어머니는 내내 정신 못 차리다 결국 한줌 재가 되어 폭죽으로 화(化)하고. 한 편의 요란한 부조리극 속에서 동독은 패망했지만 동독이 꿨던 꿈은 그렇게 밤하늘에 흐르는 별이 되었다. 동독에 바치는 애틋한 송가 같은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1888~1889) 책세상 니체전집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승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비극적 예술가는 자신의 무엇을 전달하는 것인가? 그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것과 의문스러운 것 앞에서의 공포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 상태 자체가 지극히 소망할 만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알고 있는 자는 이것에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그가 예술가라면, 그가 전달의 천재라면, 그는 그 상태를 전달하며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강력한 적수 앞에서, 커다란 재난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문제 앞에서 느끼는 용기와 자유- 이런 승리의 상태가 바로 비극적 예술가가 선택하는 상태이며, 그가 찬미하는 상태이다. 비극 앞에서 우리 영혼 내부의 전사가 자신의 사티로스의 제의(祭儀)를 거행한다; 고통에 익숙한 자, 고통을 찾는 자, 영웅적인 인간은 비극과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찬양한다- 오직 그에게만 비극 시인은 그런 가장 달콤한 잔혹의 술을 권한다. -163쪽

 

니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삶이 비극으로 느껴지는가? 비극이란 가장 달콤하고도 잔혹한 술이다. 맛보라. 견뎌보라. 견디면서 음미하고 즐겨보라. 쾌감을 느껴보라. 승리감에 도취되어보라. 너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너를 강하게 할지니, 네게 비극을 권한다. 서서히 입안 가득 퍼져나가는 고통과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로소 얻어지는 황홀한 승리의 무아경을 만끽해보라.

 

고통을 신성화하며 마치 독주에 취하듯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의 비극성에 응하는 강자적 방식이라면, 반대로 분노와 원한 감정에 젖어 비극적 삶의 배후 원인을 추적하고 책임을 추궁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약자적 태도다. 비난하는 일 그러니까 궁핍한 모든 악마를 욕하는 일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한 행위가 다소간의 권력의 도취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심리, 그리하여 복수욕의 대상을 찾으려고 하는 심리- 그 이면에는 이렇게 은밀한 쾌락을 얻고 권력에의 도취를 만끽하려는 교활한 충동이 깔려있다.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자와 그리스도교인들이야말로 이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데카당들이다. 전자가 자신의 고통스런 삶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면, 후자는 원죄 개념을 창안하여 그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 전자가 '사회'를 유죄 판결하고 비방한다면, 후자는 '세상'에 유죄 판결을 내리고 비난한다. 전자가 꿈꾸는 복수의 최종 목표 지점이 '혁명'이라면, 후자가 꿈꾸는 복수의 최종 지점은 '최후의 심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1888~1889) 책세상 니체전집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승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가지 과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모두 고급 문화이다. 보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평정과 인내 그리고 자극의 수용력을 기른다는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개별적인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다루어보고 포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성을 위한 첫 번째 준비 교육이다. 특정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제하고 격리하는 본능을 통제 아래 두는 것[잘 제어하는 것, 가볍게 함부로 끌려다니지 않고, 내 쪽의 균형과 중심축을 유지하면서 잘 drive해나가는 것,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비철학적 용어로 강한 의지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거기서 본질적인 것은 결정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바로 그럴 능력이다. 비정신적인 것, 천박한 것은 모두 특정 자극에 저항할 수 없는 무능력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반응해야만 하며, 개개의 자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런 당위가 벌써 병이고 하강이며 쇠진의 징후이다. 반응하지 못하는 생리적 무능력이야말로 '악덕'이다. 

 

보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서둘지 않게 되고 불신하게 되며 저항하게 된다. 사람들은 적의 어린 평정 상태에서 모든 종류의 낯설고 새로운 것을 자기에게 다가오게 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손을 뒤로 뺀다. 모든 문을 열어 개방하는 것, 온갖 사소한 사실 앞에서도 엎드리는 것,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사물들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와는 반대로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대학에서조차, 심지어는 철학을 진정 배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이론과 실천과 작업으로서의 논리가 사멸해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춤을 배우려고 하듯 생각하는 것도 배우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이 춤의 일종이라는 것을 더 이상은 희미하게라도 상기시켜주지 않는다. 정신의 가벼운 발이 모든 근육으로 옮기는 그 정교한 전율을 지금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독일인이 누가 있단 말인가!

 

정신적인 동작의 뻣뻣한 무례함, 파악할 때의 굼뜬 손- 이것이 독일적이다. 독일인은 뉘앙스를 타진할 손가락이 없다. 독일인들이 그들의 철학자들을, 그리고 특히 위대한 칸트라고 하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 중에서 가장 기형적인 개념의 불구자를 참아왔다는 사실이 독일적 온화함에 대해 알게 해준다. 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이든 고급 교육과 분리될 수 없다. 다리를 가지고 춤출 수 있지만, 개념들과 말을 가지고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 펜을 가지고서도 춤출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도 말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런 글쓰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138~140쪽)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양 2015-02-0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조는 그대로 했으나 문장들이 원문과는 차이가 있다. 구미에 맞게 몇몇 문장들은 빼거나 고치고 문단도 자의로 나누었다. 니체는 흰소리와 망발이 지나쳐 때로는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간혹 가다 이런 말을 할 때에는 더없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고병권 선생님이 쓴 책 <생각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 제목을 이 부분에서 따온 모양이다.

비로그인 2015-02-0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왔어요.. 재밌는 글이네요..수양님.. 니체 아저씨요..ㅋㅋ전 그분을 잘 모르지만, 독일인에 대한 저 비판은 충분히 일리있으면서도, 한켠 왜 물은 산이 아니냐 하는것 같아서 ..~~^^
거리를 걷다보면 ˝너희는 도무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제 입에서도 ^^

수양 2015-02-09 15:40   좋아요 0 | URL
탁월하게 생각되다가도 어쩔 땐 진짜 일베충 같고 근데 또 듣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온갖 복잡한 심사에 휩싸이게 만드는(그것이 그의 연극적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참으로 희한한 작자 같아요 니체는...

2015-02-08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9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입] Gone Girl (나를 찾아줘)(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20th Century Fox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발뒤꿈치에 들러붙은 껌처럼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무의식 깊은 곳에 밀봉해둔 우리들의 오래된 의심과 불안과 공포를, 이 영화는 흡사 무슨 날카로운 핀셋 같은 것으로 콕 집어내어 섬뜩하게 현시한다. That's marriage. 영화를 압축하는 명대사다. 비단 결혼 생활뿐이랴사회적 승인을 통과하고 규준과 질서와 제도 아래 단단히 포박된 모든 문명적 삶의 형태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속울음을 삼키며 뒷짐 진 두 손을 달달 떠는 와중에도 또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그런 필사적이고도 희한한 포즈 없이는 도무지 유지될 수 없는, ‘알고 보면 스릴러’인 것이겠지. 악몽 같은 영화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양 2016-07-14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다시 봤다. 앞으로 또 볼 지도. 사이코패스 아내 캐릭터가 아주 마음에 든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인물이다. 물론 현실에 맞게 순화를 시켜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