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고 동작 중에 빠라다(Parada:멈춤)와 빠사다(Pasada:건너감)가 있다. 남자가 다리로 여자의 진로를 가로막아 못 가게 하면 여자는 잠시 정지했다가 남자의 다리를 넘어서 지나간다. 여자가 남자의 다리를 넘어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넘어가기에 앞서 망설임이 길 수 있다. 망설이다 못해 뒤로 잠시 한 걸음 물러났다가 큰 맘 먹고 넘어갈 수도 있다. 넘어가면서 남자의 다리를 제 다리로 쓰윽 훑을 수도 있다넘어가고 나서는 지나간 일에 대해 미련을 털어버리듯이 다리를 좌우로 한번 휘젓고 나서 착지할 수도 있다. 아니면 처음부터 남자의 다리 같은 것은 길가의 돌부리만도 못하다는 듯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훌쩍 건너가 버릴 수도 있다.

 

요약하면 단순한 사건이다. 남자가 막았으나 여자는 지나갔다는. 그러나 음미하면 할수록 이 사건은 결코 단순한 종류의 사건이 아니게 된다. 어쩌면 세상에 벌어지는 일 가운데 가장 불가사의한 사건일지 모른다. 남자는 왜 여자를 막았을까. 여자는 왜 망설였을까. 망설이다 지나갈 때 왜 남자의 다리를 슬쩍 쓸었을까. 모른다. 진실은 오로지 그들의 다리 사이에 있을 테니까. 빠라다와 빠사다를 배우면서 이 동작이야말로 더없이 '고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고스럽다'는 게 뭐냐면,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땅고스러움'이란, 다음에 나오는 중국의 옛이야기 같은 것이다.

 

이것은 중국의 옛이야기인데 가끔씩 되새겨 음미해볼 만하다. “한 선비가 기녀를 사랑하였다. 기녀는 선비에게, 선비님께서 만약 제 집 정원 창문 아래 의자에 앉아 백일 밤을 지새우며 기다린다면 그때 저는 선비님 사람이 되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흔아홉 번째 되던 날 밤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팔에 끼고 그곳을 떠났다.” 이렇게 짧고 깊은 이야기. 롤랑 바르트는 이것을 <사랑의 단상>에서 '기다림'에 관해 말하는 대목 끝에다 적어두었는데, 그저 그러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저런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유리로 지어진 집과 같아서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다 깨뜨리고 나오게 되니까. 그 집 안에 빛나는 진실 하나가 숨어있는 것 같아 애가 닳아도 그냥 유리 밖에서 고요히 안을 들여다보기만 해야 좋다. 진실의 실루엣 같은 게 얼핏 보여도 경박한 문장들로 옮겨 적지 않는 게 좋겠다. 어떤 진실은 내성적이고 연약해서 그저 그렇게 도사리기만 할 뿐 말해지지 않는다-김소연 시집, <눈물이라는 뼈>(문학과지성사) 135쪽 신형철의 해설 中에서     

 

해설 말미에 신형철은 이렇게 말한다. “왜 선비는 아흔아홉번 째 날 밤에 기녀의 정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기녀는 알았을까. 선비라고 알았을까. 그냥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 마음이 저지른 일을 마음이 이해하는 과정이 삶이라면, 모든 문학은 결국 그렇게 된 일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러니까 마음의 소이연을 더듬고 또 더듬는 일인 것인가. 그러나 시의 길은 산문의 길과 다른 것이어서 (...) 시인의 일이란 언제나 그 소이연을 묻고는 충분히 대답하지 않는 일, 섬세하고 아름답게 대답을 유보하여 그 진실을 잘 보존해두는 일이다.”

 

땅고도 그런 것 같다. 땅고를 추는 동안 빠라다와 빠사다 같은 동작들이 쉼없이 이어지며 둘만의 소이연이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대해 우리 자신도 무어라 충분히 대답할 수가 없다. 한 딴다가 끝나면, 그저 서로의 가슴에 각자의 진실을 잘 보존한 채로 헤어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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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는 어디서부터 춤일까. 춤을 잘 춘다고 할 때의 그 춤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걸까. 모호하다. 유튜브 구경하다 보면, 땅게라가 살아 움직이는 매 순간이 모두 춤에 포함되는 것 같다. 단지 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의 동작 뿐만 아니라, 체형, 자세, 눈빛, 표정, 발산하는 에너지, 여유와 자신감, 인사드릴 때의 태도, 아브라소 할 때의 신중함, 플로어에 입장하고 퇴장할 때의 걸음걸이 등등 이 모든 요소들이 춤인 것 같다. 서 있을 때, 앉아있을 때, 걸을 때, 매 순간 매 상황 속에서 존재 자체가 이미 춤이라고 해야 하겠다. 땅고는 흔히 여자들은 배우기 쉽다고 하는데 글쎄. 제대로 된 땅게라가 되려면 가히 존재론적 혁신(?)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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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 출 때는 정말로 온힘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 것 같다. 집중해야지만 춤이 춰진다. 특히 리드가 섬세한 고수 땅게로하고 출 때는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스텝이 금방 흐트러져 바로 표가 나버린다. 상대의 호흡과 걸음을 감지하려면 뒷덜미가 땀으로 축축해지도록 집중, 또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땅고는 참으로 미세하고도 미묘한 춤 같단 생각. 미묘함 때문일까 이 춤은 꼭 같기도 하고. 이것도 고수 땅게로하고 출 때만 느끼는 건데, 이 춤은 정말이지 둘이 함께 몸으로 쓰는 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사적인 게 아니라 정말로, 이것이 시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시적인 춤. 땅고는 스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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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서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새로운 사회에서 새로운 춤을 배우고 있자니 스윙판에서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다시금 스물스물 생각이 난다. 이 바닥에 오래 머문 이 치고 마음의 상처 하나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또 부지불식간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준 적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마는. 소규모 부족사회 같은 이곳 춤판에선 언제나 뒷말이 무성하고, 그 뒷말 속에 오해와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고, 그러다보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이들과 더불어 춤추며 살기 위해서는 그 또한 견뎌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초연해지기가 쉽지 않다.

 

사실 초연해지기는 커녕 무슨 구설수 공포증 같은 게 생겨버린 것 같다. 경거망동했다가 자칫 구설수에 휘말려 이슈메이커가 되고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면, 춤추고 싶어서 춤판 갔는데 정작 춤을 추고 싶어도 못 추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것을 눈물로 밤잠 설치며 깨달은 지라, 더 이상 옛날에 스윙 막 입문했을 때의 그 철없던 시절처럼 오픈마인드가 안 된다. 조심성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극소심해졌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두려움이 크다. 또 예전처럼 상처 받을까봐. 신뢰할 만한 유대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는 경계심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춤판에서 늘 처신이 중요하고 인간 관계가 쉽지 않다는 걸 뼈아프게 깨달은 뒤로는 사람을 향한 마음에 뭔가 단단한 껍질이 한층 생겨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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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16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땅고 음악 중에 까를로스 디 살리(Carlos Di Sarli)의 <tu, el cielo y tu>. 이 곡으로 유투브 검색하다 발견한 동영상. 춤도 물론 멋지지만 오직 춤을 위해 마련된 아르헨티나 특유의 이런 공간도 더없이 근사해 보인다. 천장에는 팬이 돌고, 플로어 가장자리에는 벨벳 식탁보를 두른 테이블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곱게 단장한 채 그곳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광택이 도는 헤링본 마룻바닥, 그리고 벽에는 크고 작은 액자들이 옹기종기 걸려있는 공간.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정갈하고 맵시있는, 새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정성들여 관리해온 태가 나는, 구석구석 세월의 손때가 묻은 공간.

 

무엇보다도 이 공간은 춤과 일상이 양지에서 공존하는 공간이리라. 유투브 구경하다 보면 땅고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이런 공간에 대한 판타지도 동시에 자라나는 것 같다. 왜 땅고에 미친 이들이 직장을 작파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가서 그곳의 공기를 마시며 춤을 추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국내 땅고인들이 그토록 훈고학파적인 열정으로 아르헨티나 현지 밀롱가 인테리어를 애써 재현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노인과 젊은이, 여자와 남자, 춤과 음악, 술과 맛좋은 식사, 따스한 조명과 다정한 포옹이 다함께 어우러진 이런 생활 공간을 어찌 누군들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

 

 

Tú…el cielo y tú

그대, 하늘 그리고 그대

 

Tibio está el pañuelo, todavía 손수건이 아직도 식지 않았어
que tu adiós me repetía 그대 내게 또 다시 이별을 말하네
desde el muelle de las sombras. 그림자 진 부두로부터.
Tibio, como en la tarde muere el sol, 열기는 남았어, 어두워질 때 태양이 지듯
mi sol de nieve, sin esperanza 눈 내린 나의 태양은, 희망도 없이
y sin alondras. 행복(종달새)도 없이.
Tibio guardo el beso que dejaste 아직 따뜻해, 그대 입맞춤을 간직해.
en mis labios al marcharte 그대 떠나면서 내 입술에 남긴
porque aún no te olvidé. 아직 그대를 잊지 못했으니까.

Tú, 그대
yo sé que el cielo, 나는 하늘을 알아
el cielo y tú, 하늘과 당신
vendrán a mí para salvar 내게 돌아올 거란 걸
mis manos, presas a esta cruz. 이 십자가에 묶인 내 두 손을 구하러
Si esta mentira audaz 만일 두려움 없는 이 거짓말이 (그대가 돌아올 거란)
busca mi pena, 내 고통을 찾는다면
no la descubras tú 당신 그걸 밝히지 말아
que me condena. 그건 내게 유죄를 선고하는 거야
Guárdala en ti, 당신 안에 그걸 간직해줘
que es mi querer 바로 내 사랑이니
desengañarme así 그렇게 내게 진실을 깨우쳐 주는 건
será más cruel. 더 잔인할 테니.

No… 아니
no me repitas ese adiós… 이렇게 자꾸 내게 이별을 말하지 마
que esto lo sepa sólo Dios, 그걸 아는 이는 오직 하늘 뿐이야
el cielo y tú… 하늘과 당신

 

*http://blog.naver.com/blondefish 

출처는 여기. 도도님이 번역하신 그대로 긁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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