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물리 - An Overview of the New Physics
게어리 주커브 지음, 김영덕 옮김 / 범양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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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이 보여주는 철학적 함축은 소쉬르 언어학의 진술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경험론에서 시작해 구조주의로 뻗어가는 인식론의 흐름에 공교롭게도 양자역학 역시 아름답게 포개어진다. 무슨 사전합의라도 있었던 양. 이 놀라운 장관에 비하면 양자역학이 동양의 선(禪)사상과 상통한다는 견해는 차라리 상투적으로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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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쳐 - 양자와 시공간, 생명의 기원까지 모든 것의 우주적 의미에 관하여, 장하석 교수 추천 과학책
션 캐럴 지음, 최가영 옮김 / 글루온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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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악평은 삼가고자 한다. 사납게 짖다 보면 제 소리에 취하기 십상이나 지나놓고 보면 가소로운 헛똑똑이 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좋은 것만 음미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아닌가. 악담을 퍼붓느니 눈을 감는 편이 낫겠다, 책이든 뭐든. 이 책도 응당 그래야만 하는데 거의 조작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만큼 지나친 상찬 일색의 리뷰들을 보니 의분이 치밀어 그만 또 다짐을 저버리게 생겼다.

 

그 명성에 비하면 내용이 퍽이나 실망스럽다. 거의 사기당한 기분. 과대포장된 정도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못지않다. 표지와 목차만 보면 철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심오한 이야기를 풀고 있을 듯하나 낚이지 마시라. 방대한 주제를 겉핥기 식으로 다루다 보니 이도저도 시원치 못하다. 하나만 물고 늘어지기에도 어려운 주제들을 넓고 얕게 간지럼 좀 태우다 끝난다.

 

간지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으려나. 하지만 간지럼을 당하면 성질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라면 호불호가 갈릴 만한 책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목침만 한 분량에 거창한 제목을 달고서는 방대한 주제를 섭렵하려 드는 책은 일단 그 과욕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의도는 좋으나 그 말도 안 되는 의도로 인해 필연적으로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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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chi 2024-01-2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양서는 교양서로 봅시다. 아니면 리처드 파인만 로저 펜로즈의 책을 읽으면 좋겠지요.

수양 2024-01-22 22:21   좋아요 0 | URL
저자 추천 감사합니다. 읽어보겠습니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대화
일리야 프리고진 & 이자벨 스텡거스 지음, 신국조 옮김 / 자유아카데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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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뉴턴의 등장 이래 서구 과학의 인식론이 변천해온 양상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고전동역학이 보여주는 기계론적/결정론적/무시간적/가역적인 세계, 2부는 19세기 산업시대에 등장한 열역학이 새롭게 열어젖힌 확률성/비가역성/시간성/불안정성/복잡성의 세계, 3부는 동역학적 세계와 열역학적 세계의 모순없는 양립의 가능성을 규명하고 존재(있음 being)와 생성(됨 becoming)의 종합을 모색하는 현대과학을 다룬다. 어렵다. 읽었다고 할 수가 없다. 더듬어본 수준.

인상 깊은 것은 '소산구조'에 대한 현대과학의 발견이다. 소산구조는 엔트로피가 계를 반드시 죽음과 소진과 해체로 이끄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요동'이 일어나는 불안정한 비평형상태에서 때로 엔트로피는 (돌이킬 수 없는 뜻밖의 사건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자생적 조직화를 이루어낸다. 무질서 속에서 우연히, 예측불가능한 선택의 연속에 의해 질서와 구조와 생명 현상이 창발한다. 이것이 바로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인 것. 소산구조의 존재는 혼돈과 질서에 대한 이분법적 개념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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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선택 - 세계를 가르는 두 개의 철학과 15가지 쟁점들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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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에서 유구하게 반복되어온 '통합'과 '해체'라고 하는 두 가지 상반된 경향성이 15가지 주제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생각해볼 것은 이 책이 취한 '철학의 선택'이다. 이 책에서는 현대에 이르러 철학 사조의 무게중심이 실재론-합리론-관념론 계열에서 유명론-경험론-분석철학 계열로 이동했다고 보고, 흄에서 비트겐슈타인으로 이어지는 해체적 흐름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상대적으로 헤겔, 후설, 하이데거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 지젝이나 바디우 같은 사람들로 대별되는 일군의 철학적 입장에 대해서는 키치라고 폄하하거나 별 언급이 없다. 그러나 중세의 오컴 역시 당대의 주류는 아니었듯이, 심지어 이단이었듯이, 키치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사망 선고를 내릴 만한 철학이 과연 있을까. 우리에게는 오로지 재발견되어야 할 철학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 7~8장에서는 이념이 어떻게 당대의 예술 양식에 반영되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런 의문도 든다. 이념이 무릇 예술에 반영되는 것이라면 메인스트림 주변의 서브스트림 역시 비록 희소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현대 예술 사조에 (결코 키치적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는) 엄연한 이념적 지분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미술사에서의 혁명적 성취는 언제나 당대의 주류적인 흐름을 찢고 나온 이단이 아니었던가. 철학과 예술이 호응하는 양상에 대해 이 책과는 반대로 비주류적 관점(?)에서 조망한 책이 있다면, 이를테면 현대예술에서 해체주의 너머를 모색하는 모종의 맹아적 기미를 포착함으로써 철학의 (시대착오적 회귀가 아닌) 새로운 복권을 기도하는 그런 책이 만약, 정말로, (이 책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있다면, 상보적 독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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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달콤한 독약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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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혹은 키치적인 것이란 무엇이며 그 악덕과 해악은 어떠한지, 키치가 출현하게 된 철학사적 배경, 키치에 대한 도전과 투쟁으로서의 현대 예술의 면면, 아울러 현대예술이 철학과 어떻게 교호 관계를 이루고 있는지까지 폭넓게 살피고 있다. 그 어떤 현대인이 키치의 혐의로부터 감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독자의 정수리에 죽비를 내려친다. 가차없고 통렬하다. 팝아트가 키치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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