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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의 삶과 문학
박해현.성석제.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3월
평점 :
나도 기형도를 앓았었다. 한자로 된 시어를 읽기 위해 옥편을 구입했었고, 시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물어다 여백에 주석처럼 달아놓기도 했었다. 밤늦게 엎드려 누워 <기형도 전집>을 펼쳐놓고 몇 가지 시와 산문들을 베꼈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카뮈를 추억함>과 <일상적 삶>은, 그가 대구로 가는 여행길에 챙겨든 책이 아니었더라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았을 책들이다. 시인의 20주기 기념 문집인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기형도 전집>을 다시 꺼내 펼쳐본다. 밑줄과 메모와 무수히 접힌 페이지 따위로 나의 <기형도 전집>은 꽤나 요란한 편이고,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 시인은 여전히 스물 아홉이다. 내후년이면 이제 우리는 동갑이다.
'그가 요절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그를 그토록 열렬히 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내가 좀 더 나이 들어 그를 만났더라도'라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마찬가지의 질문처럼 우문이겠으나, 그럼에도 그의 범상치 않은 죽음의 정황은 어쩔 수 없이 시의 연장으로, 연장된 텍스트로 읽히는 점이 있다. "그로 인해 그의 시는 일정한 부가가치를 얻은 대신 문학으로서는 갇힌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나희덕) 이 점과 관련하여 책 앞부분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이 읽은 기형도>라는 꼭지의 대담에서는, "기형도 시 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이미지를 자기실현적 예언이나 예감처럼 읽는 독해 방식이야말로 기형도의 삶과 관련된 이런저런 정황에 지나치게 경도된, 그로 인해 시 텍스트 자체를 읽는 데 소홀한 독해일 수 있으며"(조강석), 사실상 "그가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 시적 사건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시 세계 내부에서 '죽음'이 (객관적인) 시적 사건으로 추구되었다고 봐야 하고"(하재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을 실존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알레고리로 대하는(알레고리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태도가 기형도 시의 핵심인 것 같다(심보선)"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이 책 2부에 수록된 지인들의 회고담에 따르면, 시인은 그가 남긴 시와는 다르게 한없이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나를 포함한 주위의 친구들에게 그의 시는 과장이거나 상상적 허구였고 현실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자신의 모습을 배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검은 활자를 먹어치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란색 연필로만 밑줄을 그었다던 사람, 자신이 썼던 모든 시를 줄줄이 기억했다던 사람, 좋은 시를 읽을 때나 기막힌 미인을 거리에서 발견하면 "죽여준다. 죽여줘."라고 했다던 사람. 지인들이 들려주는 생활인으로서의 시인은 시적 화자로서의 시인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생경한 모습조차도 나에게는 여전히 '기형도'라는 텍스트를 감싸는 또 한 겹의 아우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