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 바닥에서 물결을 따라 힘차게 요동하는 실지렁이, 타는 여름 매미의 그악스런 울음, 바람 불 적마다 일제히 소리치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들, 아기새처럼 고개를 쳐들고 정오의 햇살을 꿀떡꿀떡 받아먹는 해바라기, 과녘을 주시하는 궁수의 형형한 눈빛... 코나투스, 권력의지, 자기보존욕망, 생명욕동, 양태를 지속하려는 성질 등 이 모든 딱딱한 말들은 결국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관념어가 아닐까. 철학적 표현이든 서정적 표현이든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실체를 언어화하려는 각기 다른 방식의 노력이 아닐까.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그것'의 존재를 감지하고 만끽하려 하는 모습 또한 생명 가진 것들의 열렬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몸짓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