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친다

 

제주도 여행 도중 들렀던 이중섭의 생가에는 빈방 벽에 덩그러니 이런 시가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삶은, 종내에는 어찌할 수 없이 그리운 것이라던 이 화가는 나이 마흔에 간염과 영양실조로 요절했다. 시신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사흘이나 방치되었다. 기쁘게 몸 받아 다만 흉터와 옹이 몇 개 새기고 돌아가는 게 어쩌면 우리에게 내정된 섭리인 것일까. 맑고 고요한 심연에 단단한 옹이를 거느린 사람들한테서는 언제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기품이 느껴진다. 눈밭을 걷는 목이 긴 사슴처럼 우아하고 의연한 사람들. 표표한 걸음마다 깊은 향이 여운으로 남는 그런 사람들을 앞에서는 그저 숙연해질 수밖에. 생의 그 모든 비린 것들이 눅진하게 발효되기까지 나는 얼마나 더 많이 고함치고 울부짖고 날뛰어야 할까. 찰진 밥이 되기 위해 얼마다 더 오랜 동안 뜸이 들어야 할까.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나는 얼마나 더 모진 것들로부터 겁간을 당해야 할까. 가슴 환히 헤치고 끝내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곰삭혀야 할 날들이 아직은 아득하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