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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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진국들에게 도의적인 각성을 촉구하면서 인도주의적 대안 몇 가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는데, 그런 제안은 실현 가능성도 희박할 뿐더러 불필요한 사족 같다. 권력과 힘들의 작용으로 부단하게 운동하는 세계의 한 면을 학자적 시선으로 정치하게 분석하여 기술한 것으로 이 책은 이미 그 소임을 다 한 것 같고, 굳이 어설픈 도덕적 제스처로 온화한 결말을 꾸며내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난할 문제도 아니고 분개하고 항의할 문제도 아니다. 오로지 인식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차라리 이 책이 좀 더 마키아벨리 스타일로 씌어졌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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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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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중세 이후 유럽 풍속사라 해도 무방할 것 같고 크게는 근대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당혹스러운 점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본주의 역사가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을 무렵에 돌연 끝나버린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역사를 바로 알려줄 것 같은 책이지만 사실 이 책은 무려 1936년도에 씌어졌으며 저자는 1968년에 사망해서 더 이상 증보판도 안 나올 듯하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무턱대고 본문부터 읽었다가는 제대로 낚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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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카스텐 - 국카스텐 [Re-recording Album]
국카스텐 (Guckkasten) 노래 / 미러볼뮤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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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에 맞추어 트랙들이 마치 저마다 하나의 악장처럼 이어져 있는 것 같은 음반. 그래서 딱히 호불호를 가릴 수 없게 모든 트랙이 다 좋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국카스텐이 이 음반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러가지 스타일이나 시도나 실험들이 EP앨범에 수록된 <붉은 밭>에 와서 절정에 달하고 있는 것 같다. 원곡과 어쿠스틱 버전 모두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감전이 된다. 이 앨범 못지 않게 EP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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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1-07-05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EP가 더 낫다는 느낌이었습니다. CD는 LP나 테입과 달라 앞뒷면 없이 계속 플레이되기 때문에 너무 많은 수의 곡을 듣다보면 긴장감이 떨어지더군요. 전체를 이끌어가는 강한 내러티브가 있는 건 아닌 듯하니...투시디로 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입니다.기획력이 좀 아쉬운 앨범이죠. 곡들은 좋았습니다. 붉은밭 대단하죠^^
서광사 판 스피노자 에티카를 살까 가늠질하며 리뷰들을 보다 들렀습니다.^^

수양 2011-08-10 22: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2CD를 내도 괜찮았을텐데요... 붉은밭 듣고 있으면 정말, 마음 속에 붉은밭이 지평선까지 펼쳐져서 마구마구 이글대는(?) 기분이 들어요ㅋㅋ
 

1 냉소적인 사람보다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 더 좋다. 냉소와 허영 둘 다 핵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혹은 핵심에 진입하지 못한, 여실하지 못한 감정이라는 점에서는 진배없지만, 허영심이 강한 사람에게는 냉소적인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순정한 면이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허영의 전화(轉化) 가능성을 믿는다. 허영은 때로는 하나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소한테서는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다. 냉소는 노회한 감정이다. 동요하지 않고 소진되려 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우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감정이다. 사태에 뛰어들지 않으면서 사태를 점유하려는 교활한 감정이다.

 

2 신념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것이 사람을 열렬히 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광신도가 부럽다. 니체는 어쩌면 틀렸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자들이야말로 그리스도 교도들이 아닐까. 그들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다. 대단히 견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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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국가권력을 넘어서 - 책세상총서 책세상총서 19
로버트 롤 볼프 지음, 임흥순 옮김 / 책세상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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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철학적 에세이. 이 책에서 저자가 아나키즘을 옹호하기 위해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은 칸트적 주체다. 칸트적 주체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무는 자율에 대한 의무이며, 자율의 의무란 행위에 관해 자신이 스스로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의 체계 내에서 국가의 권위가 정당하다는 것은 개인의 행위에 대한 최종적 결정을 국가가 내리도록 허락하는 것이므로 자율적인 개인의 의무는 본질상 국가의 권위와 상충된다, 는 것이 저자의 논리이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 인간은 결코 이성의 선택과 자유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위하는 칸트적인 주체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욕망과 격정과 경향성에 따라 행위한다. 또, 자율적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기도 한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자율에의 의무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 선택이 오히려 윤리적 행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적 주체가 도덕적으로는 결국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논리적 귀결이 내게는 흥미롭게 읽힌다.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과 국가의 정당한 권위를 조화시킬 만한 제도로 저자가 유일하게 꼽는 정치제도는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이다. 오직 만장일치의 경우에만 사회 구성원 누구나 윤리적 주체로서 자신이 제정한 법에 스스로 따르는 상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경우다. 저자는 자율성과 권위가 참으로 양립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철학적 아나키즘을 수용하고 모든 정부를 정당하지 못한 체계로 간주함으로써 정부가 명령할 때마다 그 명령에 복종하기 전에 그것을 평가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영역에서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어떤 형태이든 그 시점에서 가장 정의롭고 인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부 형태를 암묵적인 약속 하에 따르는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이러한 현실순응적 전략(?)을 수용하게 되면, 실제 삶의 행동양식이나 문화적인 선호에 있어서 아나키즘을 지향할지라도 정치적으로는 (예를 들어)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사민주의를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현실정치에 있어서는 큰 정부를 지지하는 상황이 결코 역설적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아나키즘을 표방하면서 현실정치에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야말로 칸트적 자율성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노예화를 자초하는, 다분히 반-아나키즘적 행동일 수 있겠다.

저자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국가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도덕적 자율성을 포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칸트적인 기준에서는 죄(-_-)라고 말한다. “사람이 현실적 불가피성에 의해 다른 사람의 지배를 아무런 생각 없이 기꺼이 수용하고 준수한다면 그는 어린 아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다른 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면, 나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거가 되는 자유와 이성을 버리는 것이 된다. 이것은 바로 칸트가 말하는 자의적인 타율의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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