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1888~1889) 책세상 니체전집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승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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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가지 과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모두 고급 문화이다. 보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평정과 인내 그리고 자극의 수용력을 기른다는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고 개별적인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다루어보고 포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성을 위한 첫 번째 준비 교육이다. 특정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억제하고 격리하는 본능을 통제 아래 두는 것[잘 제어하는 것, 가볍게 함부로 끌려다니지 않고, 내 쪽의 균형과 중심축을 유지하면서 잘 drive해나가는 것,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비철학적 용어로 강한 의지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거기서 본질적인 것은 결정을 유예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바로 그럴 능력이다. 비정신적인 것, 천박한 것은 모두 특정 자극에 저항할 수 없는 무능력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반응해야만 하며, 개개의 자극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런 당위가 벌써 병이고 하강이며 쇠진의 징후이다. 반응하지 못하는 생리적 무능력이야말로 '악덕'이다. 

 

보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서둘지 않게 되고 불신하게 되며 저항하게 된다. 사람들은 적의 어린 평정 상태에서 모든 종류의 낯설고 새로운 것을 자기에게 다가오게 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손을 뒤로 뺀다. 모든 문을 열어 개방하는 것, 온갖 사소한 사실 앞에서도 엎드리는 것,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사물들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와는 반대로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대학에서조차, 심지어는 철학을 진정 배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마저 이론과 실천과 작업으로서의 논리가 사멸해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춤을 배우려고 하듯 생각하는 것도 배우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이 춤의 일종이라는 것을 더 이상은 희미하게라도 상기시켜주지 않는다. 정신의 가벼운 발이 모든 근육으로 옮기는 그 정교한 전율을 지금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독일인이 누가 있단 말인가!

 

정신적인 동작의 뻣뻣한 무례함, 파악할 때의 굼뜬 손- 이것이 독일적이다. 독일인은 뉘앙스를 타진할 손가락이 없다. 독일인들이 그들의 철학자들을, 그리고 특히 위대한 칸트라고 하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 중에서 가장 기형적인 개념의 불구자를 참아왔다는 사실이 독일적 온화함에 대해 알게 해준다. 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이든 고급 교육과 분리될 수 없다. 다리를 가지고 춤출 수 있지만, 개념들과 말을 가지고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 펜을 가지고서도 춤출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도 말해야 할까? 사람들이 이런 글쓰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138~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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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5-02-0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조는 그대로 했으나 문장들이 원문과는 차이가 있다. 구미에 맞게 몇몇 문장들은 빼거나 고치고 문단도 자의로 나누었다. 니체는 흰소리와 망발이 지나쳐 때로는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간혹 가다 이런 말을 할 때에는 더없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고병권 선생님이 쓴 책 <생각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 제목을 이 부분에서 따온 모양이다.

비로그인 2015-02-0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을 머뭇거리다가 다시 왔어요.. 재밌는 글이네요..수양님.. 니체 아저씨요..ㅋㅋ전 그분을 잘 모르지만, 독일인에 대한 저 비판은 충분히 일리있으면서도, 한켠 왜 물은 산이 아니냐 하는것 같아서 ..~~^^
거리를 걷다보면 ˝너희는 도무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제 입에서도 ^^

수양 2015-02-09 15:40   좋아요 0 | URL
탁월하게 생각되다가도 어쩔 땐 진짜 일베충 같고 근데 또 듣고 있으면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온갖 복잡한 심사에 휩싸이게 만드는(그것이 그의 연극적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참으로 희한한 작자 같아요 니체는...

2015-02-08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9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입] Gone Girl (나를 찾아줘)(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20th Century Fox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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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뒤꿈치에 들러붙은 껌처럼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무의식 깊은 곳에 밀봉해둔 우리들의 오래된 의심과 불안과 공포를, 이 영화는 흡사 무슨 날카로운 핀셋 같은 것으로 콕 집어내어 섬뜩하게 현시한다. That's marriage. 영화를 압축하는 명대사다. 비단 결혼 생활뿐이랴사회적 승인을 통과하고 규준과 질서와 제도 아래 단단히 포박된 모든 문명적 삶의 형태라는 게 근본적으로는, 속울음을 삼키며 뒷짐 진 두 손을 달달 떠는 와중에도 또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그런 필사적이고도 희한한 포즈 없이는 도무지 유지될 수 없는, ‘알고 보면 스릴러’인 것이겠지. 악몽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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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6-07-14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다시 봤다. 앞으로 또 볼 지도. 사이코패스 아내 캐릭터가 아주 마음에 든다. 롤모델로 삼고 싶은 인물이다. 물론 현실에 맞게 순화를 시켜야겠지만.
 
사라 브라이트만 - Dreamchaser
사라 브라이트만 (Sarah Brightman)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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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어떤 모임에서 누가 불쑥 이러는 거였다. 저는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음악은 안 듣습니다. 오호, 일리 있군. 일리 있는 고집이야. 음악 본연의 순결한 경지에 대한 결벽이랄까 추상성에 대한 집착이랄까 하여튼 그의 단호한 어투에서 그런 게 느껴졌고 그래서 힐끗 그의 얼굴을 쳐다봤을 때 과연 그 말을 하고 난 그는 이전보다 사뭇 달라보였다. 하지만 결연하던 그가 이 음반을 듣는다면? 참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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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프로포즈
김지연 (Kim Chee-Yun)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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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하면 옛 신림동 친구네 자취방이 생각난다. 술에 취해 CD장을 기웃거리다 핑크빛으로 점철된 자켓 디자인이 눈에 띄어 틀어본 게 <김지연의 프로포즈>라는 앨범이었다. 장소와 시간 그리고 알콜이 가미된 정신상태의 특별함이 더해져서였겠지만, 실로 중력을 허물어 버리는 연주였다. 시무룩하게 구겨져 있던 친구네 자취방이 점점 핑크빛으로 부풀어오르더니 이윽고 열기구처럼 둥실 떠올라 마지막 트랙이 끝날 때까지 한참동안 유유히 밤의 공중을 날았던 기억. 지금은 친구도 사라지고 친구네 자취방도 사라지고 심지어 음반은 절판되어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는 것인데 그러고 보면 내가 그 친구네 자취방에서 이 음악을 들었던 게 아마도 전생의 일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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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 (1888~1889) 책세상 니체전집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백승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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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6에서 니체는 실제로 투병 중이거나 아니면 은유적인 차원에서 투병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유용할 만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먼저 병들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원한에 찬 상태라고 전제하고 병자는 오직 하나의 위대한 치료책만을 갖고 있을 뿐이라면서 이를 일컬어 러시아적 숙명론이라 칭한다.

 

러시아적 숙명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행군이 너무 혹독하면 결국 눈 위에 쓰러지고야 마는 러시아 군인의 무저항의 숙명론이다. 혹독한 행군 속에서 러시아 군인은 저항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견딘다. 죽을 때까지 견딘다. 니체에 따르면 이 같은 자세는 단지 죽음에의 용기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역설적으로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가장 치명적인 상황 하에서 삶을 유지하게 한다. 마치 극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동물이 신진대사를 감소시키고 겨울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이치로.

 

원한이라는 격정에 의해 사람들은 가장 신속히 자기 자신을 불살라버린다. 노여움, 병적인 예민함, 복수할 수 없는 무기력, 쾌락, 복수에 대한 갈망, 모든 의미의 독살- 이런 것은 소진되어버린 자에게는 확실히 가장 불리한 반응 양식이다. 이것은 신경에너지의 급격한 소모나 해로운 배설의 병적 증가를, 이를테면 위에서 담즙의 병적인 분비 등을 발생하게 한다. 원한은 병자에게는 그 자체로 금물이다.”(342)

 

원한은 병자의 생존에 있어 생리학적으로 유해하다. 살아있는 것조차 가까스로 해내고 있는 병자에게는 원한 감정을 불태우는데 기력을 소진하는 행위야말로 목숨을 위협하는 사치이며 낭비다. 자신을 병자로 만든 치명적 환경 및 그러한 환경을 야기한 모든 원인에 대하여 일체의 원한을 철회하라. 이는 도덕의 명령이 아니라 생리학의 명령이다.

 

루쉰이 말했듯 절망은 무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 어디 절망과 희망 뿐이랴. 분노와 원한, 복수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신경에너지를 급격히 소모시킬 뿐인 일체의 그 모든 격정적 반응들이 풍부한 본성의 소유자에게는 (부러 고딕체로 강조까지 하면서)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극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그렇다면 러시아적 숙명론의 태도야말로 유일한 섭생법이다. 궁극의 자기 보존 조치이다. 무서우리만큼의 무반응. 조용히 온몸으로 견디는 것. 스스로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다른자기 자신을 원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그런 상황들에서는 위대한 이성 그 자체. 요근래 나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사뭇 병자 같다고 느껴져서였을까, 니체가 말하는 이 러시아적 숙명론이란 것을 여러 번 곱씹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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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