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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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이제는 박완서 선생님 글도 뭔가 예스럽게 느껴진다. 어투도 그렇고 등장하는 물건들과 생활상이 까마득하다. 물론 나에게는 여전히 한국어 글쓰기에 있어서의 부동의 전범이자 교본이며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테지만.

대학 시절 이 분이 한 번 우리 학교에 오셨었다. 실제 모습을 뵌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무슨 강연이었던가는 기억 안 난다. 지나치게 수줍어하며 시종 몸 둘 바를 몰라 하시던 모습만 선명하다. 서늘하리만치 날카롭고 깐깐하던 글 속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그날 대중 앞에 서게 된 상황이 못내 부담스럽고 불편하셨던 것이다. 미처 거기까진 헤아리지 못하고 그때는 그저 어쩌다 우연히 마스크 벗은 이웃의 낯선 모습을 봤을 때처럼 뜨악하기만 했었다. 글 속의 인물이 글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얼마나 생경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최초의 아연한 체험이었달까.

그 후로도 운 좋게 몇 번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글 속의 인물은 글 속에서만 만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다. 글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형태다. 독자의 관념 속에서 일방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된 후 제멋대로 확고하게 완결이 되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서, 글 속의 위인을 글 밖에서 재차 만난다고 해서 딱히 무슨 생산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그저 대상에 대한 인식을 재조정해야 하는 구차스런 일만 생긴다.

다른 차원으로 옮기지 말아야 되는 게 있다. 함부로 손 뻗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둔 채로 바라보는 편이 더 나은 그런 경우. 글이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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