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Memento)
기타 (DVD)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허탈하고도 진지한 실소를 자아내는 영화. '정상인'과 '단기기억상실 환자'와 '미친놈'의 차이란 대저 얼마나 미미한 것이냐. 그것은 단지 정상인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분류한 것일 뿐, 원거리에서 보면 그놈이 그놈 아닌가. 더없이 부실하고 허술한 한 인간이 세계를 파악하고 자기를 인식하기 위해 벌이는 이 치열한 고투. '앎'이라는, '인식활동'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삽질. 도저한 희극. 잔혹한 코미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우리 자신이 아닐까. 인간이라고 하는 이 자신감 넘치는 종족 말이다. 

"나는 무엇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남들보다 늘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대신에 나에게는 곰곰이 끈덕지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으니 이것을 내 장점으로 삼아도 될 것이다. 또 나는 깨우친 것을 금방 잊어버리기도 잘 하지만, 내게는 생각한 바를 글로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한편으로 니체에 따르면 그때그때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능력이라고 하므로 기실 걱정할 바가 못 된다."

 

어제 나는 문득 대단한 걸 깨달은 양 기쁨에 들떠 위와 같은 글까지 적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미 영화의 주인공이 내뱉을 만한 대사를 진지하게 읊고 있었더란 말인가. 여기서 나의 진지한 실소는 정점을 찍는다. <메멘토>는, 영화란 으레 피자나 씹으면서 반쯤 널부러진 자세로 침 좀 흘리면서 보다가 지루하면 그대로 자버리면 되는 거라는 신조를 가진 나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세를 고쳐 앉고 침을 닦고 참회하게 만든다. 놀란 감독의 영화는 앞으로 절대 방심한 채로 보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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