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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ㅣ E. M. 포스터 전집 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이탈리아는 영국의 반댓말이다. 그 곳에서, 베토벤을 연주할때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루시와 지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과묵한 조지, 두 사람은 살인이라는 극적인 경험을 공유하게된다. 그러나
진짜 사건 ㅡ 그게 정확히 무엇이건 ㅡ 이 일어난 곳은 로지아가 아니라 강둑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앞에서 경황없이 행동하는 거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걸 두고 대화를 나눈 것, 대화를 지나 침묵하고, 침묵을 지나 공감에 이른 것은 잘못이었다. 놀란 감정 하나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마음 전체가 함께 저지른 잘못이었다. 둘이서 함게 어두운 강물을 내려다 본 일, 눈길 한번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채 동시에 숙소를 향해 돌아선 일은 분명히 비난받을 소지가 있었다(그렇다고 그녀는 생각했다).(90쪽)
애초에 루시는 왜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는가. (물론, '작가가 거길 갔었으니까', 라는 것이 정답이긴 하지만~ 하핫~) 루시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막연했다.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은 두고두고 논쟁거리이다. (듣자하니, 그런 억압된 사회구조때문인지 어둠의 경로를 통한 변태적인 성행위와 동성애가 역사적으로 가장 활성화되던 때라고들 하던데...쿨럭!) 그녀는 이탈리아의 자연과 태양 아래에서 내면이 변화하지만, 빅토리아 시대라는 온실 속에서 자랐던 까닭에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기엔 너무나 미숙했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실이었고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그들은 약혼하게 된다. 세실은 그녀가 자신을 떠올릴때 넓은 야외를 생각했으면하지만 그녀는 그를 생각하면 전망 하나 없는 답답한 방이 떠오를 뿐이다. (조지가 지적하기 전까지 루시에게 세실은 -약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피상적인 이미지의 하나였지만 무의식중에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에머슨씨가 말한 영혼이든 뭐든 간에.) 조지는 스스로 생각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루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루시는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랑한다고해도 조지와 그의 아버지가 괴짜들이기때문에 자신의 가족들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것임을 알고있다. 하지만, 조지의 아버지인 에머슨씨의 말마따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되는 일이 얼마나 드문가...!
책을 통해 본 조지는 더욱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개성넘치고 내성적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표현에 적극적인 그런 복합적인 인물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남성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제와서 이런 말하긴 참으로 미안스럽지만) 그래서 줄리안 샌즈는 진정한 미스캐스팅이었다!! 그런 바람둥이 타입의 외모를 가진 배우가 조지역할을 했다니!! 이렇게 멋진 조지를말야!!! (게다가 조지는 원래 검은머리라구!!) 오히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체격을 만들어서 조지역을 하는 편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실의 샌님스러움도 책을 통해 만나면 그만의 독특한 유머감각덕분인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와 비교해보면 원작은 작가가 남성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부드러웠는데, 영화가 백점이라면 책은 백만점쯤된다.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던 사람이라면 책을 통해 그 감동을 수백배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영화를 보며 미소지었다면 책을 읽으며 스무번도 넘게 키득거릴수 있다. 이 작가가 이토록 귀엽고도 유쾌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것은 정말 의외의 소득이었는데, 예상치못했던 유머와 재치때문에 더 즐거웠다, 푸훗!
나는 그렇게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고 사랑에 넘쳐있었다, '방이 없는 전망'을 읽기 전까지는.
'방이 없는 전망'이라는 짤막한 뒷얘기를 읽지않았다면(그리고 너무나 개인적인 애정사까지 자세히 나열된 연보도!!) 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 짧은 다섯쪽짜리 글, 그 글때문에 동화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환상은 깨어졌고 나는 내내 슬프다. 물론 며칠이 지난 지금 슬프기만 한것은 아니지만 왠지 작가의 심술에 한방 먹은것같은 기분이다. (물론 작가는 그들이 그런 고난에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존재이길 바랬던 것이겠지만) 내가 로맨스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은 그 '대책없는 해피엔딩'과 '후일담 내맘대로 상상하기'때문이건만 작가는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후일담을 통해 내 환상을 박살 내버렸다. 어느 정도의 현실성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는 도저히 힘들다. 나는 그들이 1차대전이나 2차대전따위와는 관계없는 존재들이기를 진심으로 바랬고 믿었다. 게다가 그 안타까운 윈디코너의 운명이라니! 가족의 반대나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는 애교고만!! 쳇!
번역도 참으로 맘에 들어 무지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으나, 단 한가지.....
말줄임표가 느무 많았다......................... 특히 조지와 에머슨씨의 고백 씬에서 왜이리 말줄임표가 남발되었는지!!! (아니, 뭐, 트집을 잡자는 것이 아니라 원서엔 없기도할뿐더러 조지가 너무 소심해보이잖슴까!! ..........그래욧! 개인적으로 말줄임표를 극히 싫어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