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전집 4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절판


참으로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였다. 루시는 격분해야 했다. 하지만 때로는 화를 내는 일이 화를 참는 것만큼이나어려울 때가 있다. 루시는 발끈할 수 없었다.-38쪽

하지만 비브목사는 모데나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거기서는 여종업원이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거침없는 목소리로 "Faniente, sono vecchia(걱정마요, 난 늙었으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ㅎㅎㅎ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하고 많이 비슷한듯!!)-53쪽

그런 일을 겪고도 저렇게 명랑한 걸 봐! 사람한테는 누구나 다 칭찬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아무리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말이야.-55쪽

이런 일은 그녀가 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숙녀답지 못하니까. 도대체 왜? 왜 이 세상의 대단한 일들은 대부분 숙녀답지 못한 걸까? 언젠가 샬럿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건 여자가 남자보다 못나서 그런 게 아니다. 그냥 여자와 남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임무는 직접 나서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도와주는 것이다. 여자는 재치있는 언행과 깨끗한 이름으로 간접적으로나마 큰 성취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직접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덤비다가는 처음에는 비난을, 다음에는 경멸을, 마지막으로는 무시를 당하게 된다. 많은 시가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중세 여인은 불멸의 요소를 지니고 사악한 용들은 사라지고 기사들도 종적을 감추었지만, 이 여인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녀는 빅토리아 초이 시절의 수많은 성을 지배했고, 많은 빅토리아 초기 시절 노래에 여왕으로 등장했다. 틈틈이 그녀를 보호하는 것은 기쁜 일이고 또 우리에게 멋진 식탁을 마련해 주는 그녀를 찬양하는 것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존재는 점점 타락해 가는 것을! 이 여인의 마음속에도 낯선 욕망이 솟구쳐 오른다. 그녀도 거센 바람과 장대한 풍경, 광막한 초록 바다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이 세상의 왕국을 관찰해왔다. 그 안에 가득한 부와 아름다움과 전쟁을. 핵심부에 불길을 품은 채 빙글빙글 돌면서, 물러서는 하늘을 향해 다가가는 빛나는 지표를. 남자들은 그녀 덕분에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고 당당히 밝히면서 그 표면위를 유쾌하게 움직인다. 그러면서 가장 즐거운 모임인 남자들과 가진다. 하지만 그들이 즐거운 것은 남자라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석이 끝나기전에 그녀는 <영원한 여인>이라는 장엄한 호칭을 떼버리고 그냥 한 시절을 살다 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61-62쪽

둘은 이미 펜션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 그녀는 강둑 난간에 두 팔꿈치를 기댔다. 그러자 그도 그렇게 했다. 같은 자세가 된다는 것은 때로 마술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것은 영원한 우정을 암시하는 일들 가운데 하나다. -68쪽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그걸 기억했다. 그녀가 알리나리 가게에서 산 사진들에 묻은 피를 기억하듯이. 한 사람이 죽은 것만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그들은 이제 인격이 입을 여는 상황, 유년이 문을 닫고 젊음의 갈림길이 열리는 순간에 이르러 있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네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불안을 느끼고 그에게 무슨 뜻인지 물었다.
하지만 그의 대다은 더욱 수수께끼 같았다. "저는 아마도 살고 싶을 겁니다."-69쪽

그동안 그는 그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소망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는 것 같았고, 그것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
진짜 사건 ㅡ 그게 정확히 무엇이건 ㅡ 이 일어난 곳은 로지아가 아니라 강둑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앞에서 경황없이 행동하는 거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걸 두고 대화를 나눈 것, 대화를 지나 침묵하고, 침묵을 지나 공감에 이른 것은 잘못이었다. 놀란 감정 하나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 마음 전체가 함께 저지른 잘못이었다. 둘이서 함게 어두운 강물을 내려다 본 일, 눈길 한번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채 동시에 숙소를 향해 돌아선 일은 분명히 비난받을 소지가 있었다(그렇다고 그녀는 생각했다).-90쪽

약혼이라는 것은 몹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행복하 ㄴ엄숙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간 뒤에는 비브 목사뿐 아니라 프레디 마저 다시 약혼을 비판적으로 바라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안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 그리고 서로가 서로 앞에 있을 때 그들은 진실로 유쾌했다. 그것은 몹시 신기한 힘이다. 우리 입술뿐 아니라 심장까지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막강한 힘을 다른 막강한 힘에 비교해 보자면, 가장 비슷한 경우는 낯선 종교의 사원에서 느끼는 히일 것이다. 사원 바깥에 서 있으면 그 종교를 조롱하거나 반대할 수 있고, 기껏해야 미약한 감정만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사원 안에 들어가면 그 신과 성인들을 모를지라고 진정한 신자들만 곁에 있다면 우리 역시 진정한 신자가 되고 만다.-139쪽

그녀는 잠시 생각해보고나서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정말 그래요. 아무래도 제가 시인인가 보네요. 당신(약혼자)을 생각하면 배경은 언제나 방 안이예요.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기분이 상한것 같았다.
"응접실입니까? 바깥 전망이 보이지 않는?"
"네, 전망이 없는 방이에요. 그게 뭐 문제인가요?"
"나는 당신이 나를 생각할 때 이런 넒은 야외를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그가 질책하듯 말했다.
"세실,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156쪽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평등이란 것은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햇빛같은 것이었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인생에 대한 기존의 관점은 사라졌다. 그녀의 인식은 확장되었다. 그녀는 절대로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란 없다는 것과 사회적 장벽이란 없앨 수는 없지만 그 높이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느꼈다. 그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아펜니노 산맥에서 올리브를 키우는 농부의 밭으로 뛰어드는 일만큼이나 간단하다. 그러면 농부는 우리를 반겨 맞을 것이다. 그녀는 전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돌아왔다.-161쪽

그녀가 이 사교계에 어울릴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존재라면, 그녀에게 어울릴 사교계는 이 세상에 없고, 그녀를 만족시킬 것은 오직 개인적 관계뿐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반항적이었지만, 그것은 그가 이해하는 종류의 반항은 아니었다. 그녀의 반항은 더 넓은 삶의 공간을 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와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반항이었다. 이탈리아는 그녀에게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재산을 안겨 주었고, 그것은 바로 그녀의 영혼이었다.-162쪽

바이스 부인은 친절한 성품이었지만,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런던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았다. 많은 사람들 틈에 살려면 강인한 머리가 필요했기 깨문이다. 지나치게 거대한 인생의 궤도가 그녀를 압박했다. 그녀는 자기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계절과 너무 많은 도시, 너무 많은 남자를 만났기 때문에, 세실을 대할 때도 자못 무덤덤한 태도를 취했다. 마치 세실이 한 명의 아들이 아니라 <아들 집단>이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177쪽

"목사님, 저걸 좀 보세요." 프레디(루시의 동생)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옷장 꼭대기 가장자리 부분에 능숙하지 않은 필체로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새로운 옷이 필요한 일은 신뢰하지 말라.>
"나도 봤단다. 재미있구나. 내 마음에도 드는 말이야. 아마도 아버지 쪽이 써놓은 것 같은데."
"특이한 사람이네요!"
"내가 뭐라던?"
하지만 프레디는 어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가구를 망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181쪽

그날 저녁, 그리고 밤이 지나가는 동안 물은 계속 흘러나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연못은 본래의 크기로 돌아갔고 전날의 눈부심도 모두 잃었다. 그날의 연못은 식은 피와 느슨해진 의지를 일깨운 외침이 되었다. 그것은 기도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진 축복이었고, 성스러움, 마법, 그리고 젊음을 위한 찰나의 성배였다.-193쪽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루시가 조지 에머슨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의 입장에 선다면 그게 그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정리하기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살기는 혼돈스러우며, 우리는 언제나 <신경>이라든가 다른 피상적인 말들로 내면의 욕망을 가려 덮으려고 한다. 그녀는 세실을 사랑했다. 조지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누가 그녀에게 두 문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 줄 것 인가?-206쪽

"인정이 가득할 수 없는 건 세상에 빛이 가득할 수 없는 거랑 비슷해요." 그(조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람이 서 있으면 그림자가 지죠. 햇빛을 가리지 않겠다고 이리저리 옮겨봐야 소용없어요. 그림자도 계속 따라오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서 있어도 피해가 가지 않는 곳을 선택해야해요.... 맞아요. 되도록 피해가 적은 곳을 선택해야 해요. 그리고 거기서 태양을 향해 혼신을 다해 서 있어야지요."-219쪽

조지는 샬럿의 인사에 답하지 않았다. 젊은 청년이 대개 그러하듯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을 뿐이다. 샤프롱은 분명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를 것이다. "저기... 이따가 갈 수 있으면 테니스 치러 가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조지가 무슨 행동을 했어도 루시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설픈 행동은 루시의 가슴에 곧장 다가왔다. 남자도 신이 아니었다. 그들도 여자처럼 인간이고 또 서툴렀다. 남자들도 정체 모를 욕망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그녀가 받은 교육과 그녀가 걸어가는 인생행로는 남자도 약하다는 진실을 일러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피렌체에서 조지가 사진을 아르노 강에 던져 넣었을 때 이미 그것을 짐작했다.-221쪽

조지가 서브를 했고, 그녀는 이기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 놀랐다. 그가 산타크로체 교회의 무덤들 틈에서 이 세상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한숨짓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이탈리아 남자가 죽은 뒤 아르노 강둑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 <저는 아마도 살고 싶을 겁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생각났다. 그는 지금 살고 싶어 했고, 테니스 경기를 이기고 싶어 했고, 태양을 향해 혼신을 다해 서 있고 싶어 했다..... 천천히 저물어 가는 태양은 그녀의 눈 속에서 빛을 뿜었고, 그는 이겼다.-225쪽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보다는 제 사랑의 방식이 더 낫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맞아요... 제 방식이 더 낫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 품에 안겨서도 당신 자신의 생각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루시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루시, 머뭇거리지 마요..... 이렇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지난 봄에 그랫던 것처럼 그냥 나한테 달려와요. 그런 뒤에 내가 예의를 갖추고 모든 걸 설명할께요. 나는 그 남자가 죽은 뒤로 계속 당신을 좋아했어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부질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하고 결혼할 여자인걸.>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이 세상이 온통 물과 햇빛에 감싸여 눈부시게 반짝일 때 다시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이 숲에 들어왔을 때 나는 달리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외쳤어요. 살고 싶어서, 내 인생에 기쁨을 줄 기회를 잡고 싶어서."-241쪽

당신(약혼자)미술과 책과 음악에 둘러싸여 내게도 그런걸 강요하려고 했어요. 나는 음악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런 것에 숨 막혀 죽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사람이 그 보다 훨씬 아름다우니까요.-249쪽

"나(조지의 아버지)는 녀석에게 항시 사랑을 믿으라고 가르쳤어요. <네가 사랑을 느끼면 그건 진실이란다>라고 말요. <열정은 장님이 아냐. 열정이야말로 눈이 밝지.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는 네가 진실로 이해하게 될 유일한 사람이란다>라고도 말했어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285쪽

"아가씨가 그리스로 달아나도, 다시는 녀석을 안 봐도, 그 이름조차 잊어도 조지는 죽을 때까지 아가씨 마음속에 있을 거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헤어질 수 없어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요. 사랑을 비틀고 무시하고 혼탁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걸 떨쳐 버릴 수는 없어요. 경험을 통해서 나(조지의 아버지)는 시인들의 말이 옳다는 걸 알아요. 사랑은 영원합니다."
루시의 눈에 분노의 눈물이 솟구쳤다. 분노는 곧 사라졌지만 눈물은 남았다.
"다만 시인들이 이걸 좀 말해줬으면 좋겠어. 사랑은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야. 몸 자체는 아니지만,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아! 우리가 그걸 인정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고통이 줄어들까! 그런 작은 솔직함이 우리 영혼을 해방시킬 텐데! 아가씨의 영혼말이에요, 루시양! 나는 영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말을 둘러싸고 퍼부어지는 미신들 때문에 말요. 하지만 우리에겐 영혼이 있어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있어. 그리고 아가씨는 지금 그 영혼을 억누르고 있어요. 그걸 가만 두고 볼 수가 없구려. (중략) 하지만 우리 아들놈이랑 결혼해요.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또 사랑이 서로 응답하는 일이 얼마나 드문지를 생각해보면.... 아들놈하고 결혼해요. 이세상은 다 그런 일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요."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로 막연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동안 어둠은 한 겹 한 겹 물러갔고, 그녀는 자기 영혼의 밑바닥을 보았다.-293-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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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8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룸 2006-02-2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53쪽에 <>로 썼더니 안보인것이었어요!! 지금 막 따옴표로 수정을 하였슴당...^^;;;; 그런걸 잡아내어 주시다니 역시 님은!!!!!!! >ㅂ<)b
자, 여세를 몰아 열씨미 읽으시고 오타적발을!!!!!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