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속도의 경이, 시공간의 재배치

근대는 시간을 재구성했다.
근대의 시간은 철도와 함께 왔으면 기차를 닮았다.
오직 출발점과 목적점만이 존재하며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해버리는.....
근대의 시간은 속도의 문화를 낳았고 그것은 화폐화된 시간의 단선성을 표상한다.
화폐화된 시간의 단선성은 우주와 자연과 인간사이의 수많은 주름을 단번에 펴버린다.
이제 밤도 잠도 동양사상의 우주적 변이와 사유의 이동도 모두 부질없는것, 그야말로 폐기처분되어져 버린다.

이렇게 탄생한 근대적 시공간은 '사이성'이 사라진, 대상간의 위계관계가 확연한 공간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주인은 이제 인간이다.
우주와의 공명은 없어졋고 다만 그 우주를 소유하고자하는 욕망만 남는다.

단선적 시간개념은 세상을 진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게 하며, 그 진보는 양적으로 계량화될 수 있다.
기차의 세계관 - 진화론은 이제 세계를 생존경쟁의 틀로 파악한다.
우승열패의 신화가 탄생한다.
이제 경쟁이다. 경쟁만이 진보를 승리를 생존을 보장한다.
역사는 그러한 승리의 기록이 되어야 한다.
현재가 과거보다 나았고, 미래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는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도록  재구성되어야 한다.
(옛적에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일본 역사논문이나 서적들을 읽으면 그 앞뒤 분명한 논리성과 일관성에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그 도식성에 갑갑한 면이 많았는데 아마도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의 근대성 수용이 이렇게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수학공식처럼 정리되는 역사라니 웃기지 않는가 말이다.)

시간의 유목주의는 가능한가? - 속도에 대한 신앙체계를 전복할 것. 속도는 빠른 것과 다르며 느림 역시 느리지 않다. 느림 또는 시간의 유목주의란 이 '얼빠진' 근대의 일정표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코드화된 방향을 벗어나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것
삶과 지식의 새로운 배치를 구성하고,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이질적인 집단들의 네트워크를 만들 때
속도, 균질화, 화폐의 삼중주는 깨어진다.
느림 또는 느리게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런 조급증과 결별하여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들을 구성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
 
(음~~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말들. 요 말도 나비일려나?)

 

내적 오리엔탈리즘 - 근대적 시간개념이 낳은 사생아. 현재를 척도로 이전의 시간들을 다 저급한 시간으로 매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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