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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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시절이 돌아왔다.
마치 그 자리에 그대로 늘 있었던 것처럼.....

하루종일 무엇이든 돼 주었던 골목길.
그건 아주 작고 좁은 골몰길에 불과했지만 어렸던 나에게는 언제나 너무나도 넓은 공간이었다.
하루의 태반을 보내고도 모자라 달밝은 밤이면 동네아이들이 모두 몰려나왔던 그길.
이지누씨처럼 나 역시 그 골목길을 떠나고 몇년후 다시 갔을때는 그 길이 어찌나 작던지.....

어느집이고 문이 잠겨있는 법은 없었다.
그냥 아무때고 찾아가서 "00아 노올자" 소리지르면 친구가 튀어나오고....
우리집은 새로지은 슬레트집이라 마당이 없었지만,
굳이 우리집이 아니어도 좋았다.
마당은 지천으로 널려있었고, 늘 찬기운이 올라오던 우물도,
여름이면 엄마를 대신해 우물에 물을 길러나르던 기억도 다시 돌아왔다.
밖에서 놀고있으면 그냥 집 마루문을 열고 엄마가 소리지른다.
"00아 밥묵고 놀아라"
길가쪽으로 나있던 그 마루문은 요즘말로 하면 밖으로 전망이 튀여있는 통유리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거였는데 폼은 전혀 안났다.
하지만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이 모두들 한 번씩 앉았다 가는곳.
때때로 집에서 혼나고 ?겨난 날은 그 문이 닫혀버렸다.
문앞에서 찔찔 짜고 있으면 온 동네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어떤 날은 집에서 ?겨났다는 걱정보다도 그 사실을 온 동네 사람들이 안다는게 더 부끄러웠던 것도 같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 어린시절과 겹치는 대목들이 한가득이다.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까지 같이 실려.....
다른 모든 것들을 젖혀두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어때야 되는지....
갑자기 골목에만 나가도 늘 차조심을 해야 하는 우리집 아이들이 안스러워진다.
온 동네가 놀이터고 온 천지가 장난감이었던 내 어린시절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어린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때때로 우리집은 그냥 잠만자는 여관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저녁 7-8시쯤 돼야 들어오는 집.
하루종일 닫혀있던 문덕분에 약간은 쾨쾨한 분위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빨리 씻고 일찍 자야지 소리를 늘 듣는 아이들.
사람의 냄새보다는 부재의 냄새에 더 익숙한 집.
이런 집이 아이들에게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까?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요즘 부쩍 서구의 귀족같은 분위기를 잔뜩 내는 아파트 광고들이 판을 친다.
거기엔 비뚤어진 욕망과 과잉소비만 판을 칠뿐 삶의 냄새는 없다.
집이 내가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라, 이후의 투자가치로 선택되어지는 세상에서 이지누씨의 글은 낮지만 그건 아니라고 속삭인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던 것은 비단 그가 나의 어린시절을 일깨워줘서만은 아닐게다.
그가 말하는 집이란 곳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어서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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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7-03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이 책은 너무 즐거워서 진도가 팍팍.....
역시 사람들은 참 다르죠? 그래서 세상이 좀 즐거워지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