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천공의 성에서부터 풀피리까지-전통에 관하여



요즘 일본 그림들을 보면서 몇 가지 영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녀 이상하게 외롭다. 그것은 영상, 그 자체가 주는 것이기도 하고,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다 풀려버려 이전의 모습을 도통 모르겠는 뜨게옷 같은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천공의 성 라퓨타>를 처음 본 것은 국내 극장 개봉도 하지 않은 1991년이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작품이었으니까 아마 일본 개봉은 8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1년! 그러고 보니 내겐 참 많은 일이 벌어졌었구나. 내가 컴퓨터를 구입한 게 대학에 입학한 1993년이니까 아마 이때는 천리안이나 하이텔 등의 통신 동호회가 뜨기도 전일 것이다. 학교 밖에서 만난 한 친구의 집에는 도스 프로그램으로 구동되는 컴퓨터가 한 대 있었다(나는 타자기를 쓰고 있었다). 녀석은 그 컴퓨터에 팩스를 연결하여 나라 밖 소식을 들고오곤 했는데(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내가 기억하는 녀석은 컴퓨터 천재였다), 어느날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기가 막힌 애니메이션을 소개해주었다.

"으악! 진짜 멋지다. 저 돌멩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것 좀 봐!"

우리는 어른들 몰래 포르노를 훔쳐 보는 사춘기 애들처럼 입을 헤벌리고 넋을 놓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시는 일본 문화, 영상물을 접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였다. 이러한 금기는 금서처럼 더 보고 싶다는 열망을 부추기기도 했다. 일본어 자막이 도착하고, 아는 사람을 총동원하여 얼렁뚱땅번역을 마치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고3이었는데 대학에는 뭐하러 가나 결정하고 나니 의외로 할 게 참 많았다) 연세대에 작은 공간을 빌려 이 애니메이션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하나만 올리자니 명목이 안 서는 관계로 아예 판을 좀 벌리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그해 여름은 '고등학생 문화학교'라는 타이틀로 일주일간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무엇보다 제도교육에서 튕겨져 나오고 싶어서 안달인 친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 진지한(진짜 진지했다) 토론도 해볼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이런 모임 한다고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겠지만, 그때는 그야말로 살 떨리는 쫓고 쫓기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연세대에만 들어가만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지나가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팔짱도 껴보고 애써 안 무서운 척 당당하게 걸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참 우습다. 그때 우리가 상연작으로 올린 영화는 <닫힌 교문을 열며> <파업전야> 등이 아니라 <천공의 성 라퓨타>,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아아, 그 신음소리에 관해서도 우리는 진지하게 토론했다. 하하하) 등이었는데... 그때 만났던 녀석들이 갑자기 와르르 쏟아지는 별빛처럼 그리운 날이다.



(금각사, 저런 식으로 조그만 성 하나가 섬인 곳이 진짜 일본에 있다. 섬 사진 대신)


그리고 벌써 십 년 하고도 또 몇 년이 더 지난 요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를 나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독재와 기계문명을 비판하던 '천공의 성'은 그만의 상상력이 아니라 일본에 실제 있는 섬( 하나의 성으로 이루어진 섬, 섬 이름을 모르겠다. 나중에 떠오르면 추가해야지)인 풍경에서 나왔다는 것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카오나시(얼굴 없는 귀신)나 강의 신 등도 그들의 토착종교(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에서 나왔다는 것을. 또한 쌍둥이 자매인 유바바와 제니바는 일본의 천지창조신화의 한 가닥인 국생신화에 나오는 이자나기, 이자나미를 떠올리게 한다. 유바바의 아들 보우는 '호오리'가 금기(보면 안 된다는)를 깨는 바람에 수치심 속에서 태어난 '우카야후키아에즈'로도 볼 수 있다. 우카야후키아에즈가 누군가? 일본 최초의 신화적 천황으로 불리는 진무 천황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러면 보우는 인간과 신화의 세계가 단절된 이후 금기를 지키지 않은 수치심 속에서 태어난 천황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천황은 머리와 몸이 1:1 비율인 먹보이자 울보이다. 그리고 그는 제니바의 주술에 걸려 뚱뚱이 새앙쥐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치히로라는 이름을 빼앗긴 센이 '누군가를 위해' 길을 떠나면서 보우도, ('쓸쓸해'를 외치다 '다 먹어버릴 거야'를 외치게 된) 카오나시도 스스로 마법의 열쇠를 찾아 돌아온다는 점이다. (일본 신화 부분은 아직은 그냥 가정만... 올해 최대, 최악의 책읽기가 될 것 같은데 일본 <고사기>를 읽는 것이 내 목표다. <고사기>를 통해 재미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그 외에도 내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고 있는 '하쿠가 종이학에게 쫓기는 장면'은 17세기 화가이자 서예가였던 타와라야 소타츠의 <학도하회화가권>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뿐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림들은 역시 에도시대 만화로도 유통되었던 우키요에의 판화가 주는 깨끗한 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안도 히로시게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평면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우울한 풍경은 그대로 미야자키에게 투영되어 영상으로 재연되었음을 보게 된다.



 ('하쿠가 종이학에게 쫓기는 장면' 스틸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다카히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대작전>을 보면 단지 미야자키뿐 아니라 일본 내 많은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이 무엇에 빚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인간들에 의해 살 곳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너구리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헤이안 시대 궁중화가들이 다양하게 제작한 <조수인물희화>와 닮았다.



 

<폼포코 너구리대작전>에 나오는 너구리들은 단지 인간의 대치물이 아니다. 그들은 일종의 둔갑술로 그들이 인간보다 한 수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 파괴에 대처하는 그들의 치밀한 작전은 그들이 갖고 있는 마력(영적인 힘, 더 나아가서 인간의 양심, 자연으로부터 받은 근원적인 힘)으로 빛을 발한다. 이것은 저 헤이안시대의 <조수인물희화>를 보며 내가 느낀 우화적인 세계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요괴인 '이누야샤'를 통해 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현대 작가들에 의해 어떤식으로 재탄생하는가를 볼 수 있다. 기계문명이 도를 지나친 21세기, 그들의 세계는 포켓 '몬스터'를 탄생시키게도 한다.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장난감과 놀이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제는 정령이나 지켜야 할 가치 등이 '몬스터'(귀신, 요괴, 정령)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사회라고 규정해본다. 그것도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정도로 작아지고 휴대할 수 있는 편리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단서도 넣어본다.




그들의 전통은 현대에도 국제 경쟁력을 갖을 정도로 세련된 무언가가 있다(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얼마나 연구하고 끊임없이 파헤치고 있는가의 증명이기도 하다). 또 그것들이 향유되고 이어져오면서 더욱 폭넓게 해석되고 재탄생되었다는 역사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척 맨지오니의 <산체스의 아이들>을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강하다가도 구슬픈 목소리를 닮은 트럼펫이 아니라 쇳소리가 섞인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태평소 소리였다. '아, '산체스의 아이들'을 이렇게도 들을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전통은 '현대에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는 탁석산식 정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전통은 내 몸에 이어진 실과 같아서 나를 감았다 풀었다 하는 기억과도 닮았다.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끌고 와야만 되살아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그러했을 때 좀더 폭넓은 지평을 갖게 된다는 면에도 그렇다. 또한 한번 끊어버리면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다시 이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탁석산의 발언은 위험하다. 다만 어떠한 전통을 이어받을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겠지. 나는 풀피리 소리의 전통을 이어받고 싶다. 풀피리가 담고 있었던 자연과 호흡하는 전통이 담아내는 세계는 넓고 아름다울 것이라 소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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