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 우리 시각으로 다시 보는 서양미술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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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조곤조곤 살뜰하게 서양미술을 이야기하던 이주헌씨가 그간의 이야기들을 한권에 압축했다.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17년간의 강의내용을 압축했다고 말한데서 알 수 있듯이

책의 내용은 대단히 명쾌하고 정리가 잘되어있다.

마치 시험직전에 보는 적중 정리용 문제집같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는 서양미술의 특징을 3가지로 압축한다.

인간중심의 미술, 사실주의미술, 감각주의 미술이 그것이다.

이런 3가지의 특징을 풍부한 도판을 통해 조곤조곤 얘기해가는 것은 이전의 책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번 책에서 약간 다른 점은 한국미술 또는 동양미술과의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인 듯 보이는데 원래 어떤 논리나 설명에서도 비교라는 수단은 아주 효용적이다.

즉 비교를 통해 나를 상대화시킬수 있을 때 그 고유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양의 인간중심 미술의 특징을 간단히 보면

최고의 미술 장르로 역사화를 위치시키고, 인물의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며 이것이 기술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원근법의 발견이다.

원근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나라는 주체가 바라보는 세계이다.

즉 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양화에서는 자연은 내가 바라보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 자연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대상화시킬 수 없는 자연이다.

이렇게도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은 다르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주의의 발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그리스의 역사와 사회의 특징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서양미술의 역사는 '나'라는 주체가 대상을 얼마나 잘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실제와 가깝게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르네상스미술이든 바로크든 로코코든 표현법의 차이일뿐 본질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감각주의라는 것 역시 온 몸의 감각 특히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사실주의와 맞닿아있다.

이러한 서양미술의 전통은 그들의 철학의 발달, 합리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위치와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했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할 수 있겠다.

 

반면 우리 미술에서는 지나친 사실적 표현은 외형묘사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게 되어 사물의 본성을 통찰하고 표현하는 일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이며 개인적 사회적 취향의 문제일뿐,

이것이 문화의 우월성으로 판단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문화의 간극은 깊고도 넓다.

 

이주헌씨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문화적 전통이라는것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동양화의 여백을 보면서 저절로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서양화의 꽉찬 화면을 보면서 가끔씩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다.

또한 한국화의 그림들을 보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림의 의미가 확 와닿을때가 많은데 서양화는 끊임없이 설명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 대부분인게 이렇게 생래적인 문화의 차이때문이구나 싶기도 하다.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을 아마도 서양인들은 동양화에서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전에 봤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가 생각났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루시를 보러왔다가 우씨!! 하게 될줄이야..."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툴툴거리며 나왔던 기억이다.

 

요즘 동양사상이나 문화에 관심을 표하는 서양인들이 많은듯한데 뤽 베송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서양의 과학이 돌파하지 못하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동양적 사유들을 통해 풀어보려했다는 느낌.

그런데 그들이 표현하는 동양적 사유란게 왠지 어설퍼 그것도 역시 서양의 논리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해하려 했던게 아닐까싶다.

논리의 영역이 아닌 것을 죽어도 논리로 풀어내고자 하는....

오랜 세월동안의 문화적 차이가 만들어낸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꼈다.

그것은 결국 내가 서양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참으로 쉽지 않으리라는 것으로 통하리라.

 

그래도 이주헌씨의 책은 이 방면에서 늘 친절한 안내자역할을 한다.

서양미술을 접하면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차이의 간극을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고,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명쾌한 안내자.

서양미술에 대해 입문서적인 책을 읽고 싶다면 이 책은 최고의 책일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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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12-1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글 읽다가 루시 우씨!가 눈에 들어오니 웃음이 납니다....ㅎㅎ

오늘은 도서관에서 김선우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시집 읽고 있어요.
딱정벌레의 시체놀이를 보면서 내 일상과 연관지어 들려주는 솔직, 담백한 시가 좋으네요^^

바람돌이 2014-12-12 09:35   좋아요 0 | URL
아주 가끔이지만 학교에서 책을 볼 때 아 이 직업이 좋구나 싶어요. 어느 직장에서 근무시간 중간에 책을 볼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세실님이나 저랑은 복받은 것 같아요. ^^